KBS 기자협회, 대선 목전에 ‘제작거부’ 결의

후보검증 프로그램에 친여당 이사들 “박근혜에 불리” 추궁

KBS 기자들이 대선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나섰다. KBS 이사진의 ‘박근혜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대선을 열흘 가량 앞둔 시점에 기자들이 대선방송 제작을 거부하는 일은 처음이다.

KBS 기자협회는 6일 밤 긴급 총회를 열어 ‘대선 공정방송 수호를 위한 제작거부 의결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결과 투표에 참여한 183명 중 174명, 95.1%라는 압도적인 찬성 비율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KBS 기자협회는 비상대책위 체제로 돌입해 제작거부 시기와 방법 등을 비대위에 일임한다. 제작거부 돌입시기와 방식은 7일 밤 열리는 비대위 첫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 [출처: KBS 화면 캡쳐]

이번 사태는 지난 4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을 KBS 이사회의 여당추천 이사들이 “편파적”이라고 문제삼은 데서 시작됐다. 방송 다음날인 5일 열린 이사회에서 여당추천 이사들은 길환영 KBS 사장에게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이 들어가 편파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대선후보검증단장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이사회의 지적에 길환영 사장도 “검증단이 만든 프로그램에 편파성의 소지가 있고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길 사장은 또 “사전심의를 강화해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사회 이후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은 보직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휴가를 떠났다.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지난 8월, 언론노조 KBS 본부가 파업에서 복귀할 당시 노사합의로 만들어진 기구다. 대선보도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했다. <시사기획 창-‘대선 후보를 말하다’ 편>도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방송 이전에 심의실의 심사까지 거쳤다.

전체 3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된 1부 방송에서는 전국 성인 남녀 2,900명을 대상으로 우선 검증 항목을 여론 조사한 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 등 5개 재단과 5.16 등 역사관을 집중 검증했다. 문재인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FTA, 제주해군기지, 부산저축은행 조사 무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검증했다.

이사회가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에 압력을 행사하고 사장이 이를 수용하는 사태에 대해 기자협회 뿐 아니라 언론노조 KBS 본부 등 KBS 구성원들은 일제히 이사회와 길환영 사장의 사과 및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함철 KBS기자협회장,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 홍진표 KBS PD협회장(왼쪽부터) [출처: 언론노조]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한 차례 연기 끝에 나간 프로그램인데 이번에는 단장을 세워놓고 편파성을 운운하며 책임 추궁하며 사퇴 압력을 가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진실검증단을 문제 삼아왔고, 그들이 추천해준 이사들이 움직인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함철 KBS기자협회장도 “이사회의 개입은 KBS 대선 보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기도가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서는 여당에 불리한 보도는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다”고 밝혔다.

김의철 보도국 라디오뉴스 제작부장도 “길 사장은 회사 공조직의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완벽히 거쳐 방송된 프로그램에 방송의 편파성을 제기함으로써 조직 전체 구성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김의철 제작부장은 이어 길환영 사장에게 “최근의 사태를 불러 일으킨 이사회에서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과 “다시는 보도와 프로그램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공정언론공동행동도 7일 성명을 발표해 이사회 여당추천 이사들과 길환영 사장의 편파방송 발언은 “진실과 공정성 및 공영방송의 기본책무 등을 모두 내던지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고자 하는 잘못된 충성심 또는 그로부터 뭔가 득을 보려는 추악한 욕심이 빚어낸 결과이자, 시청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하며 길환영 사장과 여당추천 이사들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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