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20. 용산 유가족의 멈춘 시간

용산참사 열사 4주기 추모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려

1월 20일, 용산참사(학살)가 일어난 지 꼭 4년이 되는 날이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시민, 사회단체 회원 200여명이 이날 12시 용산철거민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에 모였다.

망루 화제사건으로 5명의 철거민 열사들이 운명을 달리 한 그 날 묘소 앞에서 참가자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묘소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용산참사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 구속자 사면 등을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가족 전재숙 씨는 “아직도 2009년 1월 20일로 시간이 멈춰있다. 힘없는 철거민들이 4년째 추운 감옥에 갇혀있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며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했다. 유가족 김영덕 씨도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추모제 참석자들이 “앞으로도 용산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두 아이와 함께 오지 못한 유가족 유영숙 씨는 발언 내내 눈물을 흘렸다. 유영숙 씨는 “아빠의 죽음 4년, 두 아이가 묘소에 오기 싫다고 해 참석하지 못했다. 친구 같은 아빠였는데, 나도 남편의 죽음이 아직까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냐”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유영숙 씨는 이어 “두 아이와 함께 아빠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간 것이라고 하며 같이 운다. 아이들의 아빠를 테러범으로 몬 이 정부가 싫다”며 “책임자가 처벌되고 진실이 밝혀질 때, 그 때 아이들이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이곳에 같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가족 권명숙 씨도 “어젯밤 꿈에 남편이 찾아왔었다”며 “우리는 짓밟힐수록 단단해지고, 유가족들과 함께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진실이 승리하는 날, 진상규명되는 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나갈 것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는 “1, 2년이 지나면 대체로 잊히기 쉬운데 용산참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다만 현 정권만 용산학살에 대해 어떤 답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희주 공동대표는 “적어도 학살 당사자가 임기 내에 매듭지고 물러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재차 꼬집으며, 박근혜 당선자측이 용산참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태순 전국철거민연합 대외협력국장은 “4년의 세월이 참 길었다”고 말문을 열며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감옥에 있는 6명의 구속자가 석방될 때까지 싸울 것이며, 열사 묘역에 서며 다시 투쟁을 결의한다”고 전했다.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전 대표는 "뜻을 새기며 지금까지 왔다. 악랄한 벙법으로 살인진압을 해도 한 명도 처벌되지 않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절망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희 전 대표는 또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사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철거민들이 쫓겨나지 않고 주거의 자유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김승호 전태일노동대학 대표는 “죄스러운 마음에 며칠 전 남일당을 돌았는데, 용산은 아직도 재개발되지 않고 있었다”며 “재개발이 꼭 필요해서 강제 진압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학살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명훈 추모연대 의장은 묘소 앞에서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명훈 의장은 “책자를 만들 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용산학살을 용산참사로 바꿔달라고 했는데, 항상 이렇게 우둔해 열사들 앞에 죄송하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제대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인간인가,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
- 용산참사 4주기에 부쳐 -

김선우

2009년 1월 20일 아침 6시
서울 도심 용산 4철거구역 남일당 건물
살아 보려고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이
산채로 철거당했다.
소각로에 집어던져진 폐품처럼
소각 당했다.
학살 당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나.
설마, 망루로 올라간 철거민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무서운 진압이 가능했을까.
그날 이후 악몽이 계속되었다.
밥 먹던 숟가락을 놓고 창문을 내다볼 때
불에 탄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진실이 은폐된 장막 너머에서
누군가에 의해 자꾸만 죽임 당했다.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본이 고용한 공권력에 의해
죽임당한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을
권력의 지휘봉은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아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간에 대한 단 한 뼘의 예의라도 존재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불 타 버린 식구의 그을린 주검을 끌어안고
살아남은 식구들이 피눈물 흘리며 울부짖을 때
입 가진 자들이여, 이 죽음에 대해 설명해 보라.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
학살이 있었는데 학살을 지휘한 책임자는 없다!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여기 사람이 있다!
연옥의 문을 열어젖힌 채 불길하게 치솟던 그날의 검은 연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망루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나.

이 땅의 민주주의는 철거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서민들의 생존권은 철거되기 시작했다.
냉혹하고 발 빠르게
우리들의 인권은 철거되어 냉동고에 방치되기 시작했다.
도시는 싸늘한 마천루에 둘러싸여 돈을 세고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은 끊임없이 망루로 절벽으로 내몰렸다
살기위해 위해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자들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심판받아야 할 자들이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는데,
불에 그을린 다섯 구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던 피해자들이
졸지에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히는
이 해괴한 지옥도에 대해 권력자들이여, 말해보라.

악몽과 피눈물의 낮밤들,
잠들 수 없었던 4년이 흐르는 동안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여기는 인간의 마을인가. 우리는 인간인가.
2009년 1월 20일 아침 6시
서울 도심 용산 4철거구역 남일당 건물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대신하여 우리는 말해야한다.
불에 타 오그라든 가여운 이웃들의 입술로 우리는 말해야 한다.
이 학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입을 열라.
부디 들으라. 새로 출범하는 정부여.
사회대통합은 용산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로부터,
참혹한 비극을 겪어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로부터,
죄 없이 죽어간 원통한 영혼들에게 안식을 주는 일로부터,
구속된 철거민을 석방하고 사면하는 일로부터,
그렇게 시작되어야 함을 기억하시라.

이봐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봐요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이봐요 여기 사람이 있다구요!
용산, 우리들의 십자가
용산, 고통 속에 잉태된 거룩한 슬픔의 성소
용산, 딛고 일어서야 할 절망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밑바닥
우리는 인간인가. 그렇다면
인간의 마을을 포기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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