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 2주년 반정부 시위격화...40여명 사망

"무르시정권은 혁명 이행에 실패"...범야권 총선참여여부 가를 5대 과제 요구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혁명 2주년 기념일인 25일, 이집트 민중 수십만은 집권 후 혁명의 요구를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고하며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에 맞섰다.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이집트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갔고 정부청사, 경찰서, 여당인 자유정의당과 무슬림형제단 사무소는 불길에 휩싸였다. 시위대 해산을 위해 경찰은 최루탄과 사냥총을 투입했으며 실탄 사용 의혹도 제기됐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가운데 사망자가 발생했고 특히 지난해 포트사이드 축구장 참사로 구속된 21명에 대한 사형선고가 알려지며 희생자는 크게 늘었다. 25일에만 부상자는 476명으로 밝혀졌으나 이 수는 이후 크게 증가했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양일간 모두 4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무르시 대통령은 아프리카 경제회의 참석을 위해 예정됐던 에티오피아 방문을 취소했다. 주요 야권 세력인 혁명수호전국전선은 무르시정부에 대해 5개의 요구사항을 밝히고 실현되지 않을 경우 총선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흐람 온라인>은 성난 시위대가 거리를 강타하며 정치적 혼란, 불안정과 양극화가 이집트를 덮쳤고 전국적으로 최소 40명이 지난 양일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출처: http://english.ahram.org.eg 화면 캡처]

25일 타흐리르 광장에는 오전에 이미 10개의 텐트가 세워졌고 광장 중앙에 1월 25일 혁명 순교자들의 벽화가 전시됐다. 오전부터 소규모 시위가 시작됐고 집회는 정오기도회 후 바로 진행됐다. 여러 개의 행진이 타흐리르 광장을 향해 이어졌고 사람들은 카이로 집결지에서 대통령궁을 향해 행진하기도 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불어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1시경부터 최루탄을 투입했다. 경찰의 진압에 맞서 사람들은 불타는 헝겊을 던졌고 포장도로를 부수고 돌맹이를 던졌으며 최루탄을 주어 다시 경찰에 던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또한 지난 12월 설치된 소위 무르시 산성을 밧줄로 엮고 무너뜨리고자 시도했다.

<아흐람 온라인>은 시위대가 “빵, 자유와 사회적 정의”등 2011년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무르시에 대해 “이르할(irhal, 떠나라)”을 외쳤으며 “민중은 정권의 전복을 요구한다”고 소리쳤다. 또한 이슬람 주도의 제헌의회가 구성한 “대표되지 않은” 헌법 철회와 재비준, 공식적 최저 및 최고임금 도입을 요구하는 한편 물가 상승을 비판했다.

카이로 슈브라지역에서 시작해 타흐리르광장으로 향한, 노동권을 초점으로 “사회적 정의를 위한” 행진이란 이름의 행진에는 유명한 노동운동가와 독립노조 지도부가 선두에 섰다. 이들은 “1월 25일 혁명 기간 살해된 이들에 대한 복수”와 “노동자와 학생들이 대통령의 착취에 맞서자”고 외쳤다. 이들은 발코니에 선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무슬림형제단 건물 주변에서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돌과 유리를 던진 시위대에 책임을 전가했다. 이들은 약 2만명 규모로 타흐리르에 도착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의사단체는 부상당한 시위대를 치료했다. 이들은 또한 경찰의 최루탄 양이 위험한 수준이어서 사람들을 질식사하게 할 수 있다고 중단을 촉구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또한 여성 참여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보고되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카이로 지하철 일부 구간은 수백명의 시위대가 철도를 점거하면서 운행이 정치됐다. 카이로의 6번째 10월 교각 위 교통도 시위대가 양쪽 끝을 모두 차단하며 운행이 정지됐다.

[출처: http://english.ahram.org.eg/ 화면 캡처]

정부청사, 경찰서, 여당 당사, 무슬림형제단 사무소 타격

시위는 카이로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베헤이라, 아슈우트, 가르비야, 샤르끼야, 이스마일리아와 수에즈 등 이집트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났으며 경찰과 시위대간 충돌로 이어졌다.

지난해 포트사이드 한 축구장에서 축구 경기 종료 후 난동으로 74명의 목숨을 잃게 한 21명에 대한 사형선고가 알려지며 최소 30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다쳤다. 포르트사이드 군중은 기소된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감옥에 진입하려 했고 경찰은 최루탄으로 방어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전력회사를 공격해 일부 지역의 전기가 차단되기도 했다.

수에즈에서는 3개의 행진이 상징적인 알 아라비엔 광장으로 이어졌고 시위대는 “우리의 요구는 여전히 같다. 빵, 존엄과 사회적 정의”이라고 외쳤다. 수에즈 시위대는 경찰과의 대치 중 정부 중앙청사에 진입했다. 수에즈 청년단체에 참여하는 아흐메드 크하파기(Ahmed Khafagi)는 그들이 중앙청사에 들어가자마자 사망한 시위대의 포스터를 달았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정부청사와 무슬림형제단 청사를 공격하고 불을 지르며 충돌했고 이때문에 9명이 사망하며 군대가 다시 투입됐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위대는 순교자들의 권리를 요구했고 특히 지난 11월 경찰 발포로 사망한 16세의 ‘지카’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말했다. 경찰은 경찰서를 폐쇄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중에 발포했다. 경찰과 시위대는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맞섰다. 알렉산드리아의 한 경찰서 앞에서 저항하던 시위대는 칼로 무장한 사람들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 당국에 따르면 최소 30명이 충돌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심에서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직접 발포했다.

다만후르의 나일 델타 시에서는 2개의 자유정의당사가 습격됐다. 다만후르의 델타 시의 세무소가 습격받았고 가구와 전기기기가 도난 당했다. 목격자 아흐메드 밀라드는 다만후르가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시위는 5시에 끝났다며 “이는 단순히 반달리즘(문화예술품이나 공공건물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시위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카프르엘셰이크 주에서도 수백명이 정부청사를 습격했다. <아흐람 온라인>은 이때 경찰이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아스완에서도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 충돌에서 칼이 사용되며 많은 부상자를 냈다. 이스마일리아에서 시위대는 정부중앙청사를 포함해 여러 개의 정부 기관에 몰아쳤다. 마할라에서 시위대는 “마할라는 타흐리르와 함께 한다”를 외쳤다.

상황은 무바라크 시절보다 악화돼...야권, 실제적 정치적 대안 건설해야

국제 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범야권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24일 트위터에 “혁명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자”고 기록했다. 그는 또한 모든 야권에 “혁명은 지속되고 있으며 끝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자”며 “모든 것이 성취될 때까지 중단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카이로에서 싸웠던 한 청년은 “나는 이곳에 혁명 기간 죽은 나의 형제와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자 왔다. 나의 형제는 1월 25일 모하메드 마흐모우드 거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그를 위한 정의를 얻고자 한다. 나의 부모와 나는 타흐리르에 텐트를 쳤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를 얻을 때까지 머물 것이다”고 말했다.

카이로에서 한 소년은 “갑자기 그들은 우리에게 최루탄과 사냥용 산탄을 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단지 평화롭게 도착했을 뿐이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했을 때 우리는 대응했고, 상황은 이렇게 지속되고 있다”며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켰다.

시민에 대한 군사재판 반대 공동 설립자인 모나 세이프(Mona Seif)는 “나는 시위가 터져 나온 것을 좋게 본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적 정의를 위한 요구가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에서 또 다른 이는 “나는 이곳에 무르시 퇴진을 위해 나오지는 않았다. 그가 선거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 민중에 대한 의무를 상기시키기 위해, 야권을 탄압하고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2010년 경찰의 구타로 사망한 크할레드 사이드(Khaled Said)의 누이는 “나는 정의와 질서를 원한다. 나는 무슬림형제단이 물러나길 원한다. 나는 지난 6달 동안 일어난 모든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바라크의 30년 보다 더 나쁘다. 그들 모든 선거는 부패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인들의 이해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 자신만을 위한다. 우리는 이제 대화의 시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사이드의 모친은 “나는 크할레드와, 우리 모두는 크할레드 사이드라고 말하며 자신의 어머니처럼 나를 생각하는 모든 젊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에 섰다. 왜 무슬림형제단은 그들은 무슬림이고 우리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가? 왜 기독교인과 우리를 분리시키고자 하는가? 나는 신에게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퇴진을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쌈 엘레안(Essam El-Erian) 자유정의당 부대표 “오늘 시위는 혁명이 성공했다는 증거다”라며 “이집트는 이제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를 가졌다”고 이날 시위에 대해 밝혔다. 무슬림형제단의 핵심인물인 그는 현재 논란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 또는 선거뿐이라는 입장이다.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활동가로 잘 알려진 레밥 엘마흐디(Rebab El-Mahdi)는 현 정권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민중의 실제적인 요구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상황은 2011년 1월과는 다르다. 이집트의 다양한 광장에서 시위와 연좌는 정권을 넘어뜨리거나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확신시키지 못할 것이다. 혁명세력은 민중과 이들의 일상적 투쟁이 혁명의 정치적 요구와 함께 맞물리는 실제적 대안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라고 아흐람 온라인에 말했다.

혁명수호전국전선, 총선 참여 여부 놓고 5대 과제 요구

혁명수호전국전선(NSF)는 5대 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실현되지 않을 경우 총선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요구 사항은 △25일 희생자 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중립적인 조사위원회 설치 △왜곡된 헌법 수정과 조문에 대한 의견을 합의할 중립적 법위원회 형성 △혁명적 요구, 특히 이집트인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킨 대통령과 내각의 정책 이후 사회적 정의를 구현할 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구제정부 구성 △사법적 독립성 억압과 검사를 해고한 전제군주적 헌법 선언 중단 △아무런 법적 제도적 근거 없이 거의 1년 간 국가 행정의 주요 요소가 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법적 제재로 구성됐다.

26일 이들은 오후 25일 살인을 낳은 책임자 처벌과 혁명 요구 실행을 요구하며 계속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또 다음 주 금요일 “타당하지 않은” 헌법 무효화와 1971년 헌법 일시 도입을 위한 집회를 예고했다.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FJP)는 지난해와는 다르게 축하행사와 시위 참가를 자제할 것이라며 24일부터 2월 5일까지 무상 건강서비스와 공공수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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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 북아프리카혁명 , 1월 25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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