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노동현안 외면하면서 따뜻한 자본주의 강조

자신의 행보와 모순되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5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시장 만능주의에 치우친 자본주의는 안 된다며 성찰을 강조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개별 기업 노사관계 불개입 원칙을 내세우며 쌍용차 국정조사를 완강하게 반대해 국정조사를 무산시킨 이한구 원내대표의 그간 행보와는 전혀 정반대의 말을 한 셈이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은 ‘일자리 늘지오’ 정책 약속대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늘리고, 지금 있는 일자리를 자연스럽게 지키며,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끌어 올리겠다”며 “탄력적이면서도 안정적 고용시장을 만들기 위해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한구 대표는 이어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도와 비정규직 차별 금지, 사내 하도급 개선, 정년 60세 의무화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일자리의 질을 올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성숙한 자본주의, 원칙 있는 자본주의를 구현해야 한다”며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유럽의 재정위기로 확산된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성찰 위에서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아직까지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느냐는 분명치 않지만, 시장 만능주의에 치우쳐 무한 탐욕, 약육강식의 정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공정경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화된 자본주의, 성숙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한구 대표는 “성숙한 자본주의, 원칙있는 자본주의는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번영하는 상생 자본주의, 윤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실천하는 도덕 자본주의, 기후와 환경을 생각하는 자연 자본주의, 나눔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는 박애 자본주의”라며 “기업 단위로 보면 주주, 근로자, 소비자, 지역 주민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이익 균형이 실현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며, 주주의 단기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과거형 주주 자본주의는 사회 전체의 미래는 물론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편법 증여나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 지원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법집행으로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하며, 소비자나 거래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자위권 보장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 대기업의 횡포를 확실하게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은 전반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국민행복시대의 경제민주화 등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내용이었지만 보수언론인 조선일보가 2011년 8월에 기획시리즈로 제안한 ‘자본주의 4.0을 열자’의 주요 내용과 비슷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한국 자본주의를 젊은 층에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불임 자본주의, 편법 상속과 반칙의 근친상간 자본주의, 양극화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정글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경쟁과 배려가 공존하는 자본주의 4.0을 제안했다.

하지만 24명의 노동자와 가족 등의 죽음을 부른 쌍용차 문제나 탐욕적 이윤추구로 정리해고와 손배가압류 문제를 일으킨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 외면은 상생의 자본주의와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연설을 두고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집권여당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통합적 비전을 제시하는 대국민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며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은 ‘잘 살아보세’와 ‘국민행복시대’로 대표되는 박근혜 새 정부의 메시지 대독 수준이었다”고 혹평했다.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도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위기를 강조하며 국민과 야당의 협조만을 이야기할 뿐, 국민이 겪는 고통과 위기를 야기한 새누리당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반성의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며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늘 연설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부디 반성하고 자중하기 바란다”고 혹평했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원내대변인도 “이한구 원내대표 연설은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 도시서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처럼 들렸다”며 “쌍용차, 한진중공업, 현대차 등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손배가압류, 비정규직 차별 등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