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노출 범칙금과 유신의 추억

[새책] 유신을 말하다 (배성인 외, 나름북스, 2013)

과다노출에 범칙금을 물리는 내용의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무회를 통과했다. 소식이 알려진 후 인터넷에선 종일 논란이 일었다. 미니스커트도 단속 대상이라는 등 개정안 내용이 와전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가수 이효리 등 일부 연예인까지 가세해 며칠 동안 ‘과다노출 범칙금’은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다.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경찰이 적극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에선 “유신의 부활”이라며 반발했다.

미니스커트나 배꼽 노출 등은 단속 대상이 아니지만, 과다노출을 처벌하는 조항은 그 자체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과다노출 처벌 조항은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3년에 생겼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이 선포된 다음 해인 1973년엔 여성의 미니스커트나 남성의 장발을 단속하고 처벌하도록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했다.

박정희의 유신 시절, 국가는 개인의 외모나 신체까지 규율하고 재단했다. 이번 논란을 대하는 네티즌의 유난스러운 우려는, 유신을 집단적으로 경험한 한국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무의식적 거부감일 수 있다. 또한 유신의 그늘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회에 새겨진 유신의 자국을 2013년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본 책이 출간됐다.

각 분야 전문가 8명이 함께 쓴 <유신을 말하다>는 유신을 절대악으로 비난하기보다 박정희 정권과 유신의 탄생과 배경 그리고 그 유산을 다각도에서 파고들었다. 박정희는 어떻게 정치 주역으로 떠올랐는지, 왜 아직도 대중은 박정희를 그리워하는지, 새마을 운동은 단순한 국가 동원 운동이었는지 등을 재조명한다.

상반된 유신의 기억과 박근혜의 탄생

  <유신을 말하다>, 나름북스
‘과다노출 범칙금’ 논란에서 보듯 유신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이만열은 “유신 때에 크게 성장한 재벌은 오늘날 정부 못지않게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유신 때에 재벌과 함께 성장한 대형교회 또한 많은 국민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유신 때에 변질되어 거대 집단으로 성장한 언론공룡과 군부세력도 유신의 반면을 비춰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싫든 좋든 여전히 유신은, 현재 한국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의식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이 박정희와 유신을 모두 같은 기억으로 공유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누군가에겐 악몽으로 남았다. 한길석의 지적대로 누군가는 박정희 시대 개발과 성장의 역사에서 정체성 및 실존을 확인했고, 그들은 조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인생이 빛나고 있음을 경험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던 나라에서 단기간 동안 경제를 일으킨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못 먹고 못 배운 자신들이 오직 육체의 근면과 성실을 통해 이 커다란 업적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한길석)

2013년을 사는 많은 시민이 ‘과다노출 범칙금’에서 박정희와 유신의 악몽을 떠올리며 파르르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51.6%도 동시대에 산다. 박근혜 시대를 맞게 된 건 이런 상반된 기억의 공유와 무관하지 않다. 또 박정희 향수와 박근혜 시대의 도래는 신자유주의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박정희 신드롬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가 유발한 빈곤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놓여 있다... 박정희 앓이의 심층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내면화된 개발 및 성장주의적 사고방식, 자기 생존의 생활양식이라는 ‘연가시’가 존재한다.”(한길석)

“박정희의 유산은 뿌리가 깊어서 노동의 배제, 사회적 약자 희생, 국가주의, 토건주의, 반공주의, 성장주의 등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기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노선과 함께 번창해 온 것이다.”(배성인)

박근혜 시대, 과거와 차분히 대면해야

<유신을 말하다>에서 이승원은 박정희를 하루아침에 정치무대의 단역에서 주역으로 등극시킨 기원을 추적한다. 또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정치행위인 군사쿠데타로 탄생한 권력에 왜 대중이 자발적 지지를 보냈는가를 새롭게 분석한다.

“박정희가 정치무대의 주역으로 갑자기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스스로 쿠데타 이전에 쿠데타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 했는가와 별개로, 그와 쿠데타 세력이 군인이었기 때문이고, 당시 군인은 유일하게 부패하지 않은 집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고, 당시 한국의 2천7백만 대중은 자신들이 더는 굶어 죽거나 맞아 죽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정치부패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패청산’이라는 미완의 혁명과제를 매개로 대중과 혁명군은 서로 동일시할 수 있었다.”(이승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채 한 달이 안됐다. 박근혜 정부의 면면에서 애써 권위주의로의 회귀 징후를 포착하려고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다만 역사학자 카(E. H. Carr)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우리는 그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유신을 말하다>는 박근혜 시대를 사는 오늘날 우리를 박정희 그리고 유신 시대와 차분히 대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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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박정희 , 박근혜 , 경범죄 , 과다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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