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 배불리는 용산개발과 코레일 구조조정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24) 정부의 분식회계와 민주적 통제

용산개발 부도 불똥, 코레일 구조조정으로 옮겨 붙나

지난 한 주, 신문과 TV 경제면은 온통 용산개발 부도사건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년전부터 사업성이 없어 청산 날짜만 기다리던 일이 확인된 것이죠.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용산사업을 공영개발로 전환하겠다고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모든 실익을 내려놔야할 민간출자사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문제의 핵심이 용산개발 주도권을 누가 잡는가일까요?

문제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용산개발의 시작은 코레일의 부채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KTX 고속철도 건설비용로 부터 이전된 4조 5천억 원의 부채를 코레일이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를 팔아서 메우려고 했던 것이 용산개발의 출발이었습니다. 여기에 전시성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재개발 이익의 환상이 얹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규모가 불어난 것입니다. 이제 이 사업은 무산되었고, 많은 주민들의 고통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제의 출발점이었던 코레일의 부채문제가 되돌아온 것입니다.

용산사업 좌초로 코레일 자본구조 악화 예상,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 무디스, S&P
코레일 채권발행 한도 늘려 우회 지원, 코레일에 고강도 구조조정 요구 - 국토해양부 철도정책관


코레일은 장부상 잡아놨던 용산사업 부지 예상처분이익(6조 8000억 원)을 몽땅 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더구나 이 중에서 2조7000억 원은 이미 받은 돈이라 장부상에 있는 숫자를 지우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시 토해내야 하는데 이미 다 쓰고 없을 터라 새롭게 회사채를 발행해서 메울 것이라 보입니다. 그래서 용산개발 1차 부도가 나자마자 코레일의 채권발행 한도를 자본금 대비 현재 2배에서 4배로 늘리겠다고 국토부에서 언급한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철도공사법 개정과 함께 국회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코레일의 고강도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국토부의 요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이 문제를 KTX 민영화를 재추진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의 재정지원과 정책지원이 없으면 존립하기 힘든 공기업이 바로 코레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이 용산개발의 주도권을 잡고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발상은 두 가지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강남불패마저 꺾인 부동산 시장을 용산은 뚫을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다른 하나는 용산개발의 사업주체인 드림허브가 파산할 시 이후 사업실패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액션이거나 말이죠. 차라리 두 번째이기를 바랄 뿐 입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 그런데 그게 다 빚이라니

그런데 작금의 이러한 코레일의 재정위기를 모두 공기업의 부실경영이나 비효율적인 인력운영으로 평가내릴 순 없습니다. 2006년 부동산 폭등기 시절 용산개발의 과욕을 부리다 나자빠진 코레일의 행태는 충분히 비난 받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영화론’자들의 ‘공기업 때리기’의 논리에 말려들 순 없지 않겠습니까?

코레일의 4.5조 빚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십년 넘게 진행된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투자된 18.4조 원의 일부가 넘겨진 빚입니다. 더구나 몇 년 전엔 공항철도를 떠안으면서 1.2조원의 부채까지도 넘겨받은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매년 이자비용만 4000억 원이 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부모로부터 자식이 수 억 원의 집 한 채를 물려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돈이 모두 대출금이었던 것이죠. 부모랑 같이 살고 있는 자식은 집을 팔수도 없고 매일같이 이자 갚느라 허리가 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코레일이 KTX 차량을 몽땅 팔아서 빚을 갚는다고 하면 모두들 웃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상 코레일이라는 존재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코레일이 갖고 있는 빚은 일종의 계획된 부채입니다. 일반 기업처럼 영업하다가 발생하는 빚이 아니라, 저렴한 화물운송이나 여객기능의 공공성을 위해 국가가 투여해야 하는 부분을 빚의 형태로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빚 독촉을 받는 코레일은 자꾸 수익사업에 뛰어들게 되고 용산개발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공기업의 부실경영으로만 몰아 부칠 순 없는 것입니다.

이제 코레일로 하여금 용산개발에 뛰어들도록 채찍을 가한 원인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서 십 여 년 전 ‘국민의 정부’부터 시작된 철도민영화 정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도민영화 정책의 골자는 기반시설 부문과 운송사업 부문을 분리하여 완벽한 ‘상하분리’를 이룬 후에 운송사업 부문은 다시 지역과 기능별로 분할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운송사업(차량, 역사, 관제)은 코레일이, 기반시설(선로)은 철도시설공단이 맡는 ‘상하분리(말 그대로 위쪽인 차량과 아래쪽인 철로를 분리)’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마치 한집에 살던 자식들을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으로 만든 꼴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 빚까지 떠넘겨서 말이죠.


그림에서 보다시피 철도기능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걸 공기업으로 전환시켜 놓고,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사업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국가부채로 잡혀야 할 것을 분식회계 처리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죠. 문제는 이 모든 부채의 이자비용이 코레일의 철도운영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철도요금을 대폭 올린다는 건 철도의 공공기능을 고려했을 때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더구나 철도시설공단의 경우는 특별한 운영수익이 없기 때문에 코레일로부터 매년 6000억 원의 선로이용료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빡빡한 살림의 형이 동생한테 용돈 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 돈으론 이자비용 충당하기에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공기업 분리, 정부의 분식회계...금융자본만 배불리는 짓

이런 상황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부채구조에 대해선 눈감은 채, 각종 구조조정과 민영화만을 추진한다는 건 문제의 핵심을 전혀 잘못 짚은 발상입니다. 지금과 같은 부채구조에서는 채권시장의 큰 손들만 배불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현재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이자비용만 연간 1조 1000억 원입니다. 여기에 이번 용산개발 부도로 인해 코레일이 토해내야 할 2조 4000억 원이 있습니다. 이것도 채권발행으로 조달한다면 이자비용은 또 불어날 것입니다. 더구나 부도난 용산개발을 코레일 주도의 공영개발로 재추진한다고 했을 때 5조 원에 이르는 자본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서 또 한 번 대량의 채권을 발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채권시장에서는 대량의 코레일 채권이 예상보다 높은 이자율로 발행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소화하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국가가 보증하는 채권이니 부도위험은 낮고, 예상보다 높은 이자율로 발행된다면 이 채권을 사는 것이 훌륭한 금융투자라 쏙닥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코레일의 채권은 국가보증이니 사실상 국채를 발행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공기업으로 분리해 놓고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둥, 민영화를 통해 부채절감을 해야 한다는 둥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제2철도공사 설립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철도 민영화의 포석을 깔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벌리는 것이 ‘민영화론자’들이 말하는 효율성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군요.

이번 용산개발의 실패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교훈은 좀 더 사업 감각을 갖췄으면 하는 코레일의 경영능력에 대한 아쉬움이 아닙니다. 각종 수익사업에 무분별하게 뛰어든 공기업들의 현실입니다. 수년전부터 확인된 LH공사의 실패를 보십시오. 이번 용산개발 실패로 사면초가에 몰린 코레일과 뭐가 다릅니까? 자본금의 10배인 100조를 부채로 지고 있는 LH공사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국민임대주택사업과 같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의 부채 8조를 대신 짊어진 수자원공사도 당장 수변시설에 대한 투자로부터 수익을 챙기지 못하면 이자비용 때문에 부채가 더욱 가중되는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국민행복증진과 거리가 먼 수익사업, 금융부채와 이자비용의 증가, 사업실패에 따른 자본금 조달과 정부보증, 그리고 고강도 구조조정과 공공성 후퇴... 이제는 이러한 공기업 실패의 사슬을 한방에 날려버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구조조정 반대’, ‘민영화 반대’ 수준을 넘어서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기본기능에 충실하고 민주적 재정 통제를 받는 공기업의 ‘민중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간산업 재원조달 방안과 민주적 통제 논의의 필요성

허나 벌써부터 용산개발의 실패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는 엄포성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산개발 사업은 다른 방식으로든 재추진되어야 한다고들 떠들어 댑니다. 또한 서울시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사업재추진을 위해서 공유지 무상제공, 용적률 상향과 같은 특혜를 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실책을 비판하는 논리가 현 서울시의 책임론으로 둔갑되고 있는 거죠. 혹자는 국토부가 개입해서 사업주체들을 교통정리 시켜줘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국토부는 코레일이 손 떼기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헛된 미망에 사로잡히다 보니, 2010년에 약삭빠른 삼성이 사업에서 발을 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업성이 없다는 건 수 년 전부터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만약에 코레일이 자선사업한다는 심정으로 토지 값은 받지 않고 건물 값만으로 대규모 임대아파트를 지어준다면 용산개발은 가능할 것입니다. 오히려 온 국민이 환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지를 팔아 부채를 갚아야 하는 코레일의 입장에서는 현실 불가능한 상상 속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만약 철도구조개편이 이뤄지기 전처럼, 용산 철도 부지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현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철도 부지를 활용한 임대주택 보급’을 용산에서부터 시범삼아 추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수 년째 터만 닦아놓고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는 용산 철도 부지는 그 자체로 자원 낭비일 뿐이며 매년 수천억 원의 금융비용만 잡아먹는 계륵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 용산개발 부도사태를 통해 얻어야 할 교훈은 기간산업의 재원조달과 재정통제의 필요성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적 재정통제는 결코 비효율이 아닙니다. 한정된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 기간산업의 특성상, 무리한 개발 사업으로 인한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국가적 수준의 복지사업을 훨씬 적은 조달 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는 효율적 장치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분식회계처럼 숫자놀음에 빠진 국가부채와 공기업 부채 간의 가려진 현실을 들춰내고, 민주적 통제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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