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의 본질과 그것의 자식들

[양규헌 칼럼] 지금도 날마다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현재의 역사

한라섬에 드리운 그림자

1948년 4월3일 토요일 새벽 2시. 어둠을 가르는 한발의 총성에, 한라산의 봉우리마다 붉은 봉화가 타올랐다. 그것은 당당한 선전포고였다. 저항과 항거의 거대한 불길에 놀란 미군정과 이승만은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일제가 남기고 간 구식무기와 농기구는 신식 무기인 미제총탄의 세례를 당해낼 수가 없다. 무장대는 게릴라 전법으로 용감한 싸움을 이어나가지만 미제와 그 주구들이 뿌려대는 총탄의 빗줄기는 한라섬에 깃든 생명이란 생명은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할 기세로 흘러내린다. 섬은 초토화 되었고 잿더미에 사체가 쌓여갔다. 독수리들은 너무 흔해진 먹잇감에 여유로운 날갯짓으로 땅에 내려앉아 시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것은 거대한 자본주의 나라 미국과 이제 막 식민지에서 해방된 약소국인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조그만 섬의 노동자 민중 간에 치러진 해방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미군정이 2주 만에 끝낼 수 있다던 호언장담을 무색케 하며 이덕구 대장이 산화해 갈 때까지 1년여 이상을 장렬하게 싸웠다. 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거치며 끈질기게 투쟁을 한 잔류부대가 완전히 소탕당하기까지 8년여 동안이나 한라산을 지켰다고 하니 ‘해방전사’에 금자탑으로 길이 남을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사와 한국사가 언급을 꺼리고 그것의 정당함을 평가하는데 인색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분명히 민중이 주인되기 위해 치른 전쟁이었음을 언젠가는 당당하게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제주도 4.3사건을 볼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반란이냐, 항쟁이냐 이름 붙이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 라는 것이다. 이것은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일어난 제주 민중들만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일제치하의 억압에서 풀려난 해방공간의 한반도 전체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치의식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36년간 식민지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친일파 인간을 빼놓고는 다 같은 민족적 염원을 몸에 새길 수밖에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4.3의 성격이 공식적으로는 모호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결국 규정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이란 없다. 다만 지배계급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이용하는 통치술이 있을 뿐이다.

반란이나 항쟁이라는 말이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배계급의 속성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 그것은 지배계급 자체를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구조로 인식하게 하는 오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에 반란(항쟁)을 일으켰던 제주도민이니 미군정과 이승만에도 반란(항쟁)을 일으킨 것이다'. 라고 규정해버리면 조선왕조나 미군정은 같은 의미쌍이 되어버린다. 즉 그들에게 반란이나 항쟁의 대상이 되는 권력의 속성은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4.3사건은 그것의 성격규정보다는 그것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꼭 짚어보고 싶었다.

당시 4.3사건을 다룬 언론들은 4.3학살의 근본적인 해결의 방법으로 제주를 연구하여 제주도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조선 사람이라는 우리겨레의 마음으로 돌아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무슨 난처하고도 순진한 주장인가? 물론 인민 유격대와 군, 경의 대치 상황은 후반으로 갈수록 폭력과 폭력이 부딪치는 상황이었고 그 사이에 낀 제주도 민중의 삶과 목숨은 학살의 생지옥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도, 혈연적으로도 인민유격대(그들은 다 제주도 출신 청년들이었다)를 도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어쩌지 못하니 그들의 상호유대관계를 끊기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갓 태어난 어린아이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고 나서의 이유가 빨갱이라고 둘러대면 모든 게 묻히는 ‘광란의 도살장’이 되어갔다. 그런 현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겨레의 따뜻한 마음으로 해결하자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항쟁과 전쟁, 그리고 어린아이까지도 빨갱이 딱지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해결을 찾자고 해놓고 근본적인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닐뿐더러, 역사의 지평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근시안을 갖는 것이며 올바르지 못한 역사의 반복을 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그때 그 참혹한 사건의 진실을 축소 은폐하고자 했던 하와이안 갱인 이승만 권력과 미군정의 본질을, 세월이 훌쩍 지나 분단이 고착화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는데 오히려 퇴행을 반복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4.3항쟁의 주역들이 외친 건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는 생활의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당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은 그때보다 더 엄혹하다. 4.3의 승리로 미국자본주의는 38선 이남을 새로이 식민지화하기 시작했고, 미국식 자본주의 사고를 인격으로 고착화시켜온 이 마당에 그들은 또 한국 민중의 이익에 반하는 한미 FTA 협약으로 영구식민화를 획책하고 있다. 또 4.3의 참화가 아직도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며 아름다운 바위와 생물들과 친지가족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다. 이들이 그 당시 한말들을 아직도 제주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승만은 '제주도민 30만을 다 없애도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고 미군정은 제주사건의 원인이 뭔지 알 필요가 없다며 '그들이 빨갱이라면 그냥 죽이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악하고 간악한 역사의 시발점이 지금 우리에겐 분단으로 고착화 되어있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은 모조리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가고 있다. 노동조합을 해도 빨갱이, 조금 진보적인 글을 써도 빨갱이, 심지어는 같은 보수 세력인 정치세력들에게도 상대 진영이면 빨갱이 딱지를 부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돈 많이 드는 부적을 부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역사의 퇴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성의 확장과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은 점점 더 좁아져가는 것 같다. 돈의 영토화로 인해 돈이 없는 대다수 노동자 민중은 상시적으로 생존을 위협 받는다. 현장의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고립, 파편화 시켜내어 어떤 전선조차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오히려 4.3시절의 전평노동자들보다 더 처참한 상태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전도된 생각마저 든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학살조차도 정당화되는 이데올로기

미군정은 미국 자본가 정권이 부리는 깡패집단이었다. 이승만은 원래가 독립운동가 행세를 할 때부터 동포들의 피 같은 돈을 착취해 왕자 행세를 하던 자로써 그냥 사기꾼일 뿐이었다. 미국 자본가들이 간택한 이승만은 그들이 숨어 있어도 그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줄 아주 충성스런 개였지만 한국의 민중에겐 아주 뻔뻔스럽고 잔혹한 갱에 불과했다. 5.10 단독선거로 미군정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이승만은 조금만 거슬리기만 하면 다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사회주의 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고 독립운동을 한 우익도 자기보다 똑똑해 보이거나 민중에게 사랑을 받으면 다 빨갱이였다. 미국과 이승만은 철저하게 한국 노동계급과 노동 운동가들을 피의 탄압으로 굴복시켰다.

그들의 권력이란 노동자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가권력이다. 그들이 부르짖는 민주주의는 자본에 대한 무한한 자유를 뜻하는 것이며 민중에 대한 자유가 절대 아닌 것이다. 민중의 정당한 외침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세워 학살하고 거짓말을 유포해 자본가의 철학을 자유주의 철학인 냥 유포시킨다. 철학이란 자기 토대에서 나오면 신념이지만 누군가가 유포한 걸 주입받으면 이데올로기가 된다. 마약처럼 외부에서 주입받은 것은 사람을 식민지화 시킨다. 자신의 두뇌와 신체가 자기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닌가. 이것은 자기를 끊임없이 배반하게 하거나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 때문에 작금의 신자유주의가 더욱 공포로 다가온다.

그렇긴 해도 4.3의 집단 학살 집행자들은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들이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라서 그들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쨌든 외부에서 세뇌 받은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자신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것은 선악을 떠나고 양비론도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무조건 빨갱이는 나쁘다거나 죽여야 한다는 논리는 자본가의 논리일 뿐이지 사람들 전체의 일반화 논리는 아닌 것이다. 자신의 계급적 토대가 노동자 대중이라면 그는 당연히 빨갱이가 되어야 올바른 것이다.

미군정이나 이승만이 빨갱이 소탕작전을 하느라 빨갱이인 제주 민중을 죽였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관점의 상태와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서 벌인 전쟁이므로 이것은 계급전쟁이 되는 것이다. 사상의 대리전이란 없다. 빨갱이 사상이란 곧 민중 자신의 생존 이념이기 때문에 외부가 주입한 이데올로기와는 좀 거리가 있다. 전쟁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그 집단에서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행위라면 나라와 나라사이가 아닌 같은 나라 안에서 일어났다 해서 그것이 전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즉 4.3사건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미국을 위해 식민지 국가의 군, 경과 민중이 대치한 전쟁이었다. 이것은 외세에 저항하는 전쟁이기도 했지만 민중권력과 자본권력과의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에 계급전쟁의 성격이 강한 사건이었다.

4.3은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인민유격대와 제주도 민중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 내부에서 생겨난 신념이라는 걸 말해준다. 이승만 정권이 소련의 지원이나 북조선의 지원으로 제주도 봉기를 허위 날조했지만 그것은 자기가 미국의 주구임을 감추고 싶어서 만들어낸 허위 날조선전이었다. 그것은 자기의 부도덕성을 약한 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전형적인 모리배의 전술이다. 물론 남로당이 독자적으로 제주에서 활동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되며 남로당과 민중이 함께 움직인 것은 당시의 정세로써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제주도 민중이 함께 일하고 같이 잘 살자는 노선을 지향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정치조직이었으니까.

‘잠들지 않는 남도’에 나오는 제주민중학살의 진상을 보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아무것도 아니다. 학살의 참상을 놓고 비교하는 게 불편하게 느껴 질수도 있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오고도 밥을 먹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실존을 한탄하는 어느 시인의 시를 본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제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유대인 학살보다 더한 일들이 제주도에 있었다는 사실(제주도민 10%이상을 학살)을 과연 알기나 할까 하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자리한다. 아우슈비츠는 세계인이 다 아는데 제주도 학살은 자국의 사람들도 잘 모른다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4.3이라는 날짜에 한정해서 사건이 일어났고 또 어느 시점에 무마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며 다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4.3은 뚝 떼어서 설명되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일제 수탈의 기간에 일어난 해녀투쟁과 관리들에 대한 횡포와 억압으로 일어난 농민 봉기 그리고 총파업 등 수많은 내전의 상황이 반복되어 나타난 일련의 민중 봉기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미국과 그 앞잡이들이 벌인 해방전쟁이라고 봐야 한다. 해방이후 민중들이 처음부터 미국의 본질을 깨달은 건 아니었다. 미군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 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4.3은 일제와의 독립해방전쟁의 연장이고 6.25까지 이어지는 한국전쟁의 한 고리라는 것이다. 해방이후 미국은 끊임없이 이승만을 내세워 한국의 민중들과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한국전쟁을 통하여 한반도 이남을 새로운 식민지 영토로 승인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는 생존해 있는 동시대 우리들이 매일 겪어내는 일들이다. 노동자가 빨갱이인 나라. 반공이데올로기만으로 대통령을 배출하는 나라. 수많은 재산을 편법으로 유산 상속하는 자본 공화국의 나라. 무능하고 부패한 우익들이 삼권 분립의 정점에 앉아있는 나라. 완전한 분단의 나라. 남과 북이 갈라져 있기도 하지만 자본가와 노동자가 완전히 외계인인 대한민국. 별들의 전쟁에는 외계인과 지구인이 싸운다. 외계인과 지구인은 자본가와 노동자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원통히 죽어간 영령들의 속삭임

4.3전쟁의 본질은, 세계 자본가계급이 세계 민중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착취하면서도 어떻게 그것들을 축소시키고, 은폐, 왜곡, 고립화 시키는지를 뼈저리게 보게 해주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악랄한 반동 세력들이 해 온 일들의 역사는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지금도 전 지구를 탈탈거리며 세계 노동자 민중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노동자 민중은 미국과 초국적 자본가들과 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자본가들과 대면할 때 늘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노동계급을 어떻게 얌전하게 굴복시킬 것인가를 연구하는 족속이란 걸 자각해야 한다.

상시 전쟁이 공존하는 게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고 4.3은 좀 더 먼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먼저 치른 계급전쟁이었을 뿐인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다 벗겨 먹어 산에 나무가 허옇게 벌거벗었다는 모습이 도처에 산재하던 그 시절. 그 헐벗음을 겪어내고 해방된 나라에 대한 꿈에 얼마나 부풀어 올랐을까? 우리 선조들은. 그 소박하고 절실한 생존과 행복에의 꿈을 짓밟은 미국과 이승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영원한 우방이며 피를 나눈 군사동맹의 대상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이 나라 건설의 국부라는 걸 말할 수 있을까.

이제 또 다시 현실이다. 일상으로 비가 내린다. 자본이 뿌려대는 횡포의 빗줄기가 태평양을 건너 시베리아 만주 벌판을 달려 북극과 남극으로부터, 어디서 달려오는지 모르게 철탑과 종탑과 다리난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눈을 따갑게 한다. 서울 시내에 한 평의 땅을 딛고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절규할 자유조차도 모조리 앗아가 버린 거리 위로 핏빛의 빗줄기가 퍼붓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채꽃을 몰고 온 봄비가 그들의 머리위에 촉촉이 내린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낮게 울음으로 전해지던 그 노래는. “우리는 죽을 수가 없다. 잠 들 수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쳤던 태평양 바리케이트는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거대한 심장의 박동으로 울려져야 하는 게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상태임에 분명하다. 매일같이 깨지고 터지고 잡혀가는 일방적 전쟁이 힘겹고 어려우면 잠시 쉬면서 노래 부르면서 쉬었다 가자. 그것도 먼 길을 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위안하며... 1948년 49년 제주도 산야에서 원통히 죽어간 무수한 영령들이 그들의 미래였던 우리에게 자꾸만 속삭여 그 아픔과 분노를 노래하게 한다. 피할 수없는 건 계급전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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