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만들기’로 꿈꾸는 공동체

[최인기의 사진세상](28)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혜화동을 거쳐 낙산을 지나 장수마을로 향했습니다. 성곽위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참 포근해 보입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눈 빠지게 바삐 돌아가는 여느 서울의 모습과 확연히 다릅니다. 성곽을 지나 몇 발자국 들어서니 2012년 5월 장수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골목 안 카페가 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일요일 늦은 오후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습니다. 잠시 시간이 쉬었다 가는 곳처럼, 카페에 앉아 마을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그려 봅니다. 카페를 지나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 달팽이처럼 느리게 걷다 보니, 왁자지껄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립니다. 키가 큰 아이, 작은 아이, 뚱뚱한 아이, 홀쭉한 아이 그리고 자그마한 여자아이, 골목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설레입니다.


“야? 너희들 이 마을사니?”
“네 아저씨는 누구세요?”
작은 여자아이가 인형바구니를 손에 쥔 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대답합니다.

“응 너희들 아주 예쁘고 귀여운데 사진 한 장 찍을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시하고 아이들은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거참 잽싸기도 하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벽화가 그려있는 길로 터벅터벅 내려옵니다.


장수마을은 행정구역으로 성북구 삼선동 1가 300번지 일대를 말합니다. 오래전부터 한 집 두 집 들어선 난개발 지역이며 북동향의 급경사 지형입니다. 복잡하게 이어진 길이지만 앞집, 뒷집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서로간의 소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군데군데 평상이 보입니다. 서울은 뉴타운이나 재개발등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이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2017년까지 총 975개의 마을공동체 조성을 지원하고 3180명의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과연 오랫동안 개발논리에 길들여 있는 주민들에게 ‘마을 만들기’란 대체 어떤 의미가 있고 얼마나 바꿔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게다가 오히려 집을 가진 주민들에게 또 다른 재산 축척의 기회로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상에 앉아 방금 아이들에게 당한 실연(?)을 달래며 차가운 캔 커피를 꺼내 목을 축이다가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어르신을 모시고 마을에 대해 여쭤 봤습니다.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길가에 앉아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계신 할아버지는(70세) 이 마을에 약 10년째 거주하고 계십니다.

“마을버스가 안 들어오는데 이곳까지 들어오면 정말 좋겠어요. 게다가 평수대로 나오는 토지변상금을 못 내고 있는데 해결 방안이 시급해요. 주민 대부분이 못 내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습니다. 골목에 사는 사람은 평생 골목 생활이라며 하루 빨리 철거가 되었으면 좋겠답니다. 그리고 이 주변에 나무를 심는 게 좋답니다. 그동안 도시가스도 안 들어와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벽화가 그려있는 골목을 돌아 계단을 내려오니, 최근 적극적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행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할머니 (76세) 한 분이 계단을 오르시다 잠시 쉬고 계십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이십니다. 이 할머니께서는 이 마을에 30대에 왔다가 지금까지 한 50년 사셨답니다. 장수마을은 현재 166동의 가옥과 220여 세대가 살고 있고, 건물이 노후되었거나, 토지의 64%가 국공유지입니다. 그리고 여타의 달동네처럼 군데군데 월세 방 구함이라는 벽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 위로 성곽이 허물어져서 길이 나있어서 동소문쪽로 넘어들고 했어요. 도둑들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도망도 다니고 그래서 이쪽을 막았어요. 그리고 집을 허물고 성곽을 복원했지요, 동대문으로 대학로 혜화동, 성북구로 의외로 교통이 좋아요”

장수마을은 약 65세 이상 인구가 50%를 넘거나 장애인도 10% 이상 거주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하루 막노동이나 폐지를 수집해 사는 사람들도 여럿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저는 건너편 돈암동에 있는 용문고등학교 나왔어요. 전에 친구들이랑 여기 성곽까지 술 사들고 와서 담배피고 그랬는데. 그땐 이리 높지 않았어요. 성곽 복원을 다 마쳤네요. 그런데 할머니 이 마을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자녀분은 어떠세요?”

“다 출가했어요. 애들이 고생한다고 아파트로 들어오라 그러지, 오래된 사람들은 이제 몇 집 없어. 보증금 5백에 10만 원짜리도 있어요. 아직도 도시가스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는데, 앞으로 도시가스도 들어온데.”


장수마을 삼선교로 4길에는 택배 물건을 손에 쥔 채 서성이는 사람이 보입니다. 연신 물건에 적힌 주소와 대문앞 주소를 번갈아 확인하며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뒤를 따라 속으로 계단숫자를 하나둘 세며 올라가다보니 막다른 골목입니다. 둘이 어색하게 마주보다 다시 돌아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멀리 낙산을 휘감고 도는 성곽이 눈에 띱니다. 계단은 어설픈 거 빼고 46개입니다.

개발이란 열차의 종착역은 어디였을까요? 대한민국 부채는 천조원에 육박했습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2배로 증가한 셈입니다. 이 가운데 전체 부채의 약 42%로 추정되는 402조원이 주택담보대출에 해당합니다. 내 집을 마련하겠다고 발버둥 쳤던 사람들, 그나마 자기 집이라도 한 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대출이라도 받아 개발이익에 편승하던 과정이었습니다. 결국 주택과 부동산 경기는 침체되고 상대적으로 치솟는 전세값이라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이를 극복하고 서로 화합하고 도모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경쟁의 틀 속에 휘둘리며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그나마 삶의 보금자리에서 마음을 치유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동네 아이들이 마치 전쟁에서 돌아오는 왁자지껄 개선장군처럼 몰려 내려옵니다.

“어? 이 아저씨 아직 안갔네?” 방금 전 그 여자아이입니다. 그러자 좀 커다란 남자 아이가 “뭐 찍어요?” 그런다. “너희처럼 어른을 무시하는 아이들 찍는다” 이번에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은 서로 찍으라며 포즈를 취하며 까불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경계가 풀린 틈을 타 연신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야? 너희들 사진 찍은 기념으로 아저씨한테 뭐 사야하는 거 아냐?” 그러자 녀석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우리가 모델을 했으니 아저씨가 사야죠” 합니다. “아 그런가? 그럼 아저씨가 살게 너희들 나중에 초상권 어쩌고 그러면 안돼?” 과자를 산다는 말에 한목소리로 “네” 합니다. 하지만 초상권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 같습니다.

마침 동네입구 구멍가게가 눈에 띄어 알루미늄 새시 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조용히 가게를 지키고 계십니다. 카메라를 든 낮선 아저씨의 음흉한 미소를 뒤로 한 채, 아이들은 밀물처럼 가게 안에 들어와 소라과자 한 봉지씩 손에 쥐고 썰물처럼 골목길을 빠져나갑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마을이 서울에 과연 몇 곳이나 될까요? 힘차게 휘어 돌아가는 장수마을의 성곽을 따라 한성대역 방면으로 내려왔습니다. 개천가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희미하게 기지개를 켭니다.


그 후 2013년 4월 3일 다시 ‘장수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몇 차례 전화 연락 끝에, 2007년부터 ‘마을 만들기’의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고 추진하고 있는 ‘(주)마을기업 동네목수의 대표’ 박학룡(44세) 씨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학룡 씨와는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간략하게 그동안의 근황을 서로 묻고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갔습니다.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저희가 2008년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 워크샾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이름공모를 했습니다. 당시 나온 이름이 한성대와 성곽이 근처에 있어 ‘한성마을’ ‘성곽마을’이 나왔고, 이곳이 북동향에다 언덕이 높아 아침햇살이 제일먼저 비춥니다. 그래서 ‘해뜨는 언덕’ 이 거론되기도 했어요. 결국 ‘장수마을’ 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장수마을의 상황을 들어 봤습니다.


“이곳은 2004년 삼선 3구역과 4구역이 주택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사실상 개발이 멈춰있습니다. 왜냐면 삼선 4구역 인근 사적 제 10호 서울성곽과 한성대 근처에 조선의 군사업무를 담당하던 삼군부의 청사건물인 서울 유형문화재 제 37호 삼군부 총무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재 보존지역이다 보니 건설사 쪽에서는 고도제한을 이유로 이윤을 남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북구청과 서울시청이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장수마을을 지목하고 있는 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죠” 이에 대해 박학룡씨는 의외로 신중하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입니다. 가옥주와 다양한 주민 간의 이견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옥주와 세입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일부 임대료를 올리려고 했던 것도 그리고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내보내려 한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개발을 통한 이윤에 젖어있던 상황에서 집주인만 탓할 문제는 아닙니다. 저희는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주민들을 만나 대화로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마을재생이나 마을공동체 활동에 몇 백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이야기에 마을이 술렁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박학룡씨는 장수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마을협정’ 을 체결하여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리지 않도록 주민들 간에 합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을협정’에 동의해주는 집주인에게는 집수리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주택 개량사업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는데, 아직 이방법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결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현재 마을에는 주민등록조차 등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있거나 오랫동안 처음 계약한 그대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살고 있는 세입자도 있습니다. 사실상 마을의 사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따라서 주민의 이해관계와 의견을 차곡차곡 모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박학룡씨는 이러한 실험이 성공을 하면 다른 지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거라 이야기 합니다.

“서울시에서 장수마을의 ‘역사문화 보존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진경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장수마을에 대한 ‘역사문화 보존 기본계획 수립’ 용역발주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거나 성과만을 위한 사업이 되지 않도록, 계획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작은 마을이 그동안 재개발예정구역으로 묶여 있으면서, 주민들의 갈등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거나 개발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주거환경 정비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공과 주민이 서로 협력하고 참여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가령 주택개보수 지원사업과 도시가스공급시설 및 하수관거 설치사업, 빈집정비 등의 사업을 공공이 지원하거나, 주들은 이 지역의 특색에 맞게 공동의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민조직 활동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운영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이미 주민들을 상대로 다양한 실험을 한 바 있지만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대신 몇몇 분들을 골목통신원으로 위촉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주민조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박학룡 씨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부동산 주택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한다면 ‘마을 만들기’ 사업의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민들 간의 끈끈한 공동체를 살려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은 어느덧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골목길에 빨갛게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슈퍼 앞까지 내려오니 지난번에 봤던 녀석들입니다.
“야? 너희들 아저씨 기억 안나? 어디 갔다오니?”
“기억나요. 공부방이요”
“지난번 사진 찍어 줘서 고마워. 아저씨가 과자 사줄게”
아이들은 또 신이 나서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과자를 짚어드는데, 어떤 녀석은 좀 비싼 걸 고르고, 어떤 녀석은 두 개씩 짚어 듭니다.
“야 하나로 통일하자 아저씨 돈 없거든. 자자 ‘뿌셔뿌셔’로 통일, 알았지? OK? 너희들 지난번 사진 초상권 어쩌구 하면 안돼? 알았지?” 그러자 모두들 한목소리로 “네”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제 마을 속 골목길은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학원차를 타고 학원으로 옮겨 다니기 바쁩니다. 하지만 오래전 가정은 마을 속에서 삶을 이끌었습니다. 골목 안 평상마루에서 펼쳐지는 수다들은 집안의 크고 작은 관심사로 이어지고, 그 자체로 삶의 일탈을 방지하는 여과작용이 되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키워냈고, 모두가 가족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고, 더 이상 서로 간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가난한 마을로 낙인찍혀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활짝 열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집이 먹고 자고 내일의 노동을 위해 쉬는 공간이라면 몰라도, 재산축적의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각 지역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어렵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회색으로 덧칠해진 멋없는 거리를 걷어내려는 노력과, 인간적 교류와 소통이 차단된 마을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제와 소외로 자리매김 된 공간, 무한증식의 개발만능주의, 함부로 부수고 깨트려 다시 짓기 보다는 좀 더 유연함으로 길들이며 다듬어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에 현장으로부터 뭔가를 일구려는 노력이 결국은 마을주민들의 작은 일상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움직여, 아이들의 활력처럼 마을 곳곳에 즐거움을 피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장수마을은 가는 방법은 보통 전철을 타고 한성대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대학로 혜화동을 거쳐 낙산을 지나 장수마을로 향했습니다.
** 참고자료 : http://cafe.daum.net/samsun4 마을 소식지를 참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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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 , 마을만들기 , 삼선교 , 낙산 , 삼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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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만들기의 한계와 활동가의 고민이 잘 읽혀지네요. 마을만들기가 자조적인 운동에서 전체 운동과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