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 쿠데타, 혁명 수호인가 또다른 반혁명인가

이집트 기득권 군부, 혁명 수호는 “빵, 자유, 사회적 정의” 요구한 거리 민중의 몫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 후 전 헌법재판소 아들리 만수르 소장이 이끄는 과도 정부가 4일 출범한 가운데 군부의 개입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군부는 지난 달 30일 무르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수백만 시위 후 무르시 대통령에 대한 최후통첩에 나섰고 이후 주요 종교 지도자와 범야권과의 합의 아래 무르시의 대통령직을 박탈, 과도 정부를 세웠다.

군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쿠데타냐 아니냐라는 논란이 크다.

[출처: http://roarmag.org/]

이집트 군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민의에 따른 것이라며 정치에 남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원칙적으로 강압에 의해 정권을 찬탈했다는 측면에서 군사쿠데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집트 군부는 스스로 정권을 수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총을 내려놓고 민중과 함께 거리로 나와 인민으로서 저항한 것이 아닌, 자신의 군사력을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헌법재판소장을 과도 대통령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기존 정권에 대한 군의 강압성과 이후 정국에 대한 주도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 문제는 이번 쿠데타의 정당성에 있다. 정권의 폭력에 맞선 이집트 민중의 저항권에 군이 과연 복무할 것인가에 따라 이 쿠데타의 정당성 여부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군의 쿠데타에 민주주의를 뒤엎는 처사라며 여전히 저항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는 점을 들며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비롯, 지난 12월 제헌 국민투표를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이집트 판 긴급조치”, “현대판 파라오 헌법”이라고 비난 받은 헌법 선언을 강행한 장본인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는 평가다.

거리의 많은 이들은 군의 개입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30일 타흐리르 상공으로 군의 헬리콥터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민중과 군대는 하나”라며 군부를 환호했고 국방부 앞에서는 군의 개입을 촉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특히 범야권 전국전선과 2,200만 명의 무르시 퇴진 요구 서명을 모아낸 풀뿌리 운동 타마로드가 군의 입장에 합의하며 표면적으로 쿠데타는 민의에 충실했다는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혁명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의 거짓말과 잔혹성을 기억하며 “무바라크 반대, 군부 반대, 무르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배 세력 간 권력 재배치를 위한 군사 쿠데타 이상이 아니라는 평가다.

이미 군은 무르시 축출 후 국영방송사를 점거하는 한편, 여당 언론사를 탄압하며 우려를 낳았다. 군부는 3일 무슬림형제단의 채널 1개, 친 살라피스트 방송사 2개 등 모두 4개 방송사 채널을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군은 또 5일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 지지 시위에 발포, 사상자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기득권 군부, 혁명 수호는 거리 민중의 몫

이 때문에 애초 이집트 군부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며, 혁명을 또 다시 약탈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집트 군부는 애초 독재와 빈곤에 시달린 민중을 착취했던 이집트 기득권 세력으로 구성돼 있다. 나세르 사후, 이집트 군부는 민족민주당(NDP)의 안와르 사다트와 호스니 무바라크 아래 국영기업, 언론사, 부동산, 제조업 등 주요 산업을 장악, 지배해왔다. 미국 후원을 배경으로 무바라크의 신지유주의적 구조조정 아래 이익을 본 것도 군부 세력이라는 점도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군부는 무바라크 축출 후에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군 최고 수뇌부 모임인 군사최고위원회(SCAF)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려 했다. 이들은 2011년 초 위력적인 이집트 민중의 봉기 아래 사태를 주시하며 개입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과도 정국을 구성하자 거리 민중에 바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무바라크 축출 후 1년 반 동안 과도 정부를 장악하고 신헌법 기본원칙 등을 통해 권한을 강화했으며, 군부 퇴진과 민주 정부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대에 발포, 보안기구를 통한 구속, 고문 등 폭력 통치를 계속했다.

그러나 당시 거리 민중의 압력이 계속되며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자 무슬림형제단과의 영합 속에서 일반 선거를 보장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리 민중의 압력 아래 근대적 민주 정부를 보장하지 않기 어려웠으며 혁명으로 혼란해진 사회분위기를 이슬람주의로 통제하는 한편, 중산층을 대변하는 무슬림형제단의 계급적 이해와 타협할 심산이었다.

이러한 이집트 군부는 결국 무슬림형제단과의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거리 민중이 아닌 군부와 영합해 정권을 취득한 무슬림형제단도 군부를 개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부를 장악했던 무바라크 시절 인물들은 무르시 아래서도 군 고위층에 남아 기득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무르시 정권의 독재와 경제적 무능이 계속되며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위기가 가속화됐다. 국가 재정과 통화 가치는 급속히 악화됐고 국채 금리는 올라갔으며 외환 부족에 시달렸다. 식료품과 연료 등 기본 생필품의 물가는 치솟았으며 빈곤도 악화됐다. 이 때문에 군부는 사회적 저항이 만들어내는 정당성에 기대 무르시에 등을 돌렸다.

이러한 군부에 대해 이제 미국은 돈줄을 쥐고 향후 이들의 행보를 옥죄려 한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하자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 체결 후 이집트 군에 지원해왔던 연간 15억 달러 지원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집트 군부는 수백만의 정권 퇴진 운동에 기대는 한편, 범야권과의 합의 아래 헌법재판소장을 과도 정부 수반으로 세우고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며 군사 쿠데타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군부에 동의한 세력을 들러리로 만들 위험은 다분하다.

범야권이 “빵, 자유, 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는 거리 민중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무바라크 잔당, 자유주의, 혁명 세력이 주도하는 범야권은 무르시 축출, 조기 대선 실시라는 최소한의 합의에는 도달했지만 단일한 입장과 전망은 없다. 무바라크 신자유주의 독재의 폭거 아래 성장한 뿌리 깊은 기득권인 군부의 손을 빌렸다는 점도 딜레마다.

거리도 급진적 변혁을 요구하는 이들부터 무바라크 부역자까지 다양한 세력이 개입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지난달 30일에만 여성 시위대에 대한 46건의 조직적 성폭력이 발생해 참혹한 충격을 낳기도 했다.

결국 이집트 민중이 거리에서 요구한 “빵,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스스로 무바라크 정권이 미국 후원과 군부의 비호를 받으며 만든 신자유주의 구체제를 전복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집트 민중은 다시 한번 거리에 기대 자신의 특권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줄타기에 나선 군부에 맞서는 한편, 이들과 현재로선 한 배를 탄 범야권을 통제해야 하는 긴 투쟁을 앞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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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군부를 통제하지 못한 무르시 정권의 독재라.. 형용모순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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