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아니면 ‘영웅’ 만들기

[보수언론 벗겨보기] 아시아나기 착륙사고 보도 유감

한국시간 지난 7일 새벽 3시 27분게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사고를 일으켜 지금까지 3명의 중국인이 숨지고 180여 명이 부상했다. 사고 기사를 대할 때마다 한국 언론은 이상한 병이 도진다. 우선은 사망자 숫자에 너무 목을 맨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나쁜 버릇이다. 이 때문에 복합적 원인에 따른 사고의 경우 대부분을 빼 먹거나 엉뚱한 가해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숫자에 목을 매는 이유는 오랜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정치권력이 자주 사망자 숫자를 은폐하고 줄이려 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멀리는 1950년대 한국전쟁 때 거창 양민학살 사건이 그랬고, 1980년 신군부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때도 그랬다.

1980~1990년대엔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에 가담한 군중 수를 자주 줄여왔다. 그 때문에 80년대 거리의 가두시위는 늘 경찰의 손에 1/10쯤으로 줄여서 집계돼 왔다. 경찰의 이 못된 버릇의 후유증은 크고도 깊어, 지금은 역반응도 자주 나타난다. 요즘엔 오히려 시위하는 쪽이 숫자를 부풀리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가령 서울시청 앞 광장엔 꽉 채워 앉아도 1만명이 채 들어가지 않는다. 면적을 계산해 제법 과학적으로 풀이하면 서울광장엔 9천명 남짓이 들어갈 뿐이다. 서울광장을 채운 참가자가 모였을 뿐인데도 집회 주최 측은 3만~5만명을 마구 불러댄다.

아래 사진의 두 기사는 사고 직후 일간지 첫 보도였던 지난 8일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우선 작은 제목부터 보면 한겨레신문이 경향신문을 이긴 걸로 된다. 경향신문은 ‘180여명 부상’이라고 썼지만, 한겨레는 좀 더 정확하게 ‘182명 부상’이라고 한 자리 숫자까지 밝혔으니.


그런데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뉴욕의 미 무역센터 테러 때 CNN 등 미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사고 열흘이 지나도록 정확한 사망자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수 천 명이 건물 안에 있었다는 정도에 그친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사건기자를 경험한 나는 답답했다. “뭐가 저렇게 느려 터졌어”라고 되뇌기도 했다.

물론 사건기사에서 피해자 숫자는 매우 중요한 팩트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자들이 이런 말단지엽적인 숫자놀음을 하는 사이 사고의 진짜 원인을 놓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자가 경찰 등 수사당국과 숫자놀음에 빠진 사이 진자 사건을 일으킨 구조적 원인은 제대로 캐내지도 못하고 종결된다.

숫자놀음보다 더 위험한 건 조급한 결론내리기다. 위 사진의 두 신문 1면 머릿기사는 서로 많이 다르다. 경향신문은 다소 유보적인 결론을 내린 반면 한겨레신문은 아시아나 쪽을 비판하는 논조로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나는 아시아나만, 이번 사건의 주범인가 의문이 들었다. 더 정확히는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조종석의 조종사만이 주범인가. 결코 그건 아니다. 이 정도의 사고가 일어나기 까지는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이 분명한데, 한겨레신문처럼 이렇게 사고를 인지하고 몇 시간만에 결론을 조급하게 내려서 보도하는 게 맞느냐는 거다.

그렇다고 경향신문의 1면 머릿기사가 잘났다는 건 아니다. 경향신문의 논조는 곧바로 아래 조선일보라는 보수신문의 성급한 ‘영웅’만들기로 연결될 조짐 역시 다분하다. 조선일보는 아래 사진처럼 “女승무원들, 아비규환서 부상자 탈출시켜... 大참사 막은 영웅들”이란 제목을 뽑았다.

두 신문은 우리 언론의 사건보도 태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건만 나면 무조건 결론부터 내리고 보니 ‘역적’ 아니면 ‘영웅’이 속출한다. 실체적 진실은 늘 ‘역적’과 ‘영웅’ 사이에 있다. 조선일보는 일단 ‘영웅’으로 결론 내리고선 밑도 끝도 없이 영웅만들기 미담기사를 쏟아낸다. 그 사이 ‘역적’은 보도 뒤에서 웃고 있는데도.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한 친구는 이런 초기 사흘동안의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고 신물이 난다고 했다.


우리 언론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대구지하철 참사 때를 떠올려 보자. 당시 동아일보는 2003년 2월 19일자 1면 기사(아래 사진)에서 사망자 숫자와 부상자 숫자놀음에 빠져 있었다.

당시 보도는 사고 한 달 가까이 이어졌지만, 대구지하철만 당시 유일하게 12개의 전동차를 달고 다니면서도 맨 앞에 운전사만 있고, 서울지하철이나 부산지하철에는 있는 맨 뒷칸에 보조 운전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도한 신문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이를 ‘1인 승무’라고 부른다. 그마저도 지하철노조가 울고불고 하면서 여러 번 문제제기한 뒤에야 보도했을 뿐이다.


이번 아시아나기 사고를 보도한 한겨레신문에게 하나 더 아쉬운 점이 있다. 한겨레신문은 무려 5년 전 2008년 3월 28일자 자매지 <한겨레21>을 통해 ‘아시아나 조종사들은 왜 떠나나’라는 제목의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기장 승진 때 노조원에 대한 차별 논란 때문에 하나둘씩 베테랑 조종사들이 아시아나항공을 떠난다는 보도였다. 이 기사는 일부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속속 보따리를 싸는 조종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몇 안 되는 수작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항공사 내부의 인사, 조직관리 체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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