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참 넓은 현대차

[보수언론 벗겨보기] ‘남의 회사’라던 하청사 상반기 신규채용 규모 발표

19일 여러 신문이 일제히 현대기아차의 1차 하청회사들이 올 상반기에만 8,235명을 새로 뽑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경제섹션 1면에 <현대기아차 협력사, 상반기 8235명 뽑아>란 제목으로, 동아일보는 같은 날 경제섹션 4면에 <현대기아차 1차협력사, 상반기 8235명 신규채용>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같은 날 15면에 4단 머릿기사로 <현대기아차 덕에 ‘잘나가는’ 협력사 올 상반기 신규고용 8000명 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급증하는 현대기아차 협력사의 평균 매출’이란 그래프까지 만들어 넣었다.


신문 기사 제목은 한결 같이 <‘협력’사>다. 뭘 그렇게 ‘협력’해왔다고, 하청회사 대신 꼭 ‘협력’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더 황당한 건 조선, 동아일보 두 신문의 기사 어디에도 하청회사의 입장은 없다. 기사는 전적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의 발표에 기대고 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해 그동안 하청회사를 보고 늘 우리와 다른 회사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현대차가 오지랖도 넓게 380개 남의 회사(1차 하청사)가 올 상반기에 모두 8,235명을 신규 채용한 걸 왜 지들이 발표할까. 그럴 시간 있으면, 하청회사에 기술이전이나 제대로 하고, 그동안 후려친 납품단가를 어떻게 올려 줄지나 고민하는 게 먼저다. 더 먼저는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건없이 정규직화 하는 게 우선이다.

고용여력이 생길 만큼 호황을 누린다는 현대차 하청회사의 한 사장은 지난해 연말 자기 공장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작년 12월 28일 새벽 3시30분께 울산 북구 천곡동의 작은 공장에서 10년 넘게 자동차 내장재에 들어가는 패드를 만들어 현대자동차와 현대자동차 1차 하청회사에 납품해왔던 하청회사 (주)동성의 대표 김모 씨(55)가 자신의 공장 안 사무실 옆 높이 2.5m 가량의 배관 파이프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아내(48)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울산저널 2013년 1월 2일자>

김 사장은 당시 원청업체가 다른 경쟁업체와 납품계약을 추진하는 것을 알고 고민해왔다. 김 사장은 20년 가까이 패드 관련 기술공으로 일한 기술력을 믿고 이 회사를 창업해 독립했는데 경쟁기업이 계속 등장해 늘 경영난에 시달려왔다. 이 회사는 직원 8명의 영세기업이었다. 최근엔 연매출 10억 원을 넘기지 못할 만큼 불황을 겪어왔다. 김 사장은 원청의 요구로 신제품을 개발했는데도 납품이 계속 늦춰지는데다 최근 원청이 다른 경쟁사와 납품계약을 추진하자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여부를 놓고 원청과 갈등했다. 김 사장은 원청과 갈등하면서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도 악화돼 힘들어했다. 김 사장은 죽기 전날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로 “일 때문에 자정을 넘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는 다음날 새벽이 돼도 남편에게 연락이 없자 공장으로 달려갔으나 김 사장은 이미 숨져 있었다.


울산에는 ‘행울협’이란 단체가 있다.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라는 단체다. 울산지역 10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단다. 울산 상공회의소가 좌장쯤 되는 모양이다. 그 행울협이 지난 18일 희망버스의 울산방문 중단을 촉구하는 회의를 열었다. 그걸 한 지역신문이 <“희망버스 울산방문 시도 멈춰라”>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행울협이 운영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희망버스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사진엔 울산 상의 김철 회장이 정중앙에 서 있다. 그런데 김 회장이 사진 정중앙에 서 있는 장면은 울산지역 신문에선 자주 보이는 장면이다. 아래 기사의 사진 정중앙에도 김 회장이 서 있다.


이 기사는 지역의 또 다른 일간지가 지난 6월 25일자 10면 전면을 털어 보도한 <울산 상의 해외노사문화 시찰단 결산>기사다. 이 기사는 한때 미국의 자동차 도시로 날리던 <디트로이트의 흥망에서 교훈 배운다>는 문패를 달았다. 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때도 울산엔 송전탑 위에 두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길고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노총과 울산지역 기업체 노사, 울산시 공무원, 울산 상의 직원 등 노사민정 대표 15명을 파견해 디트로이트를 방문했다. 정작 자동차 관련 노조는 민주노총에 몰려 있는데도 당사자는 다 빠진 채. 이후 울산 상의의 김철 회장은 지역방송에 나와 디트로이트를 직접 방문해 보니 1960~70년대 극렬한 노동운동 때문에 슬럼화 됐는데 최근 노사가 협력해 도시가 살아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위 기사가 ‘결산기사’란 이름을 달았기 때문에 앞선 기사도 있다. 같은 신문사가 해외노사문화시찰단이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전미자동차노조를 방문한 현장 사진과 함께 <한미 노사관계 현안 발전방안 의견 나눠>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사진 설명엔 뜬금없이 시찰단이 “전미자동차노조 본사를 방문했다”고 써놨다. 노조엔 ‘본사’가 없다.


시찰단과 이를 받아쓴 지역신문들이 과거 1960~70년대 슬럼가였다가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다는 디트로이트 시는 바로 며칠 전인 18일에 파산을 선언했다. (아시아경제 2013년 7월 19일자 9면) 디트로이트는 예산을 삭감하고 자산을 매각하고 철밥통 같은 공무원을 자르면서까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효과가 없었다.

오늘날 디트로이트는 우리 돈 21조원에 달하는 장기부채를 떠안고 있는 미국 최악의 도시다. 시찰단이 본 것과 정반대로 디트로이트는 1960~70년대까진 호황을 누렸다. 오히려 90년대 이후 망해가고 있다. 180만 명이던 인구가 절반도 안 되는 70만 명으로 뚝 떨어졌는데, 도대체 이들은 뭘 보고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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