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것은 사랑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 이야기


1. 안 보이는 희망의 나라

희망이라는 말은 정말 희망이 있는 곳에선 살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말을 찾는다. 희망은 이 세상 모든 목숨들의 것이지만 희망이라는 말은 오직 사람의 것이다. 뱃속이 비었을 때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사람은 마음속이 비었을 때 희망을 찾고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이라는 말을 찾는다. 즉 희망이라는 말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이라는 말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울산으로 가는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다시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보였다. 지난 시간들만큼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고, 그 뜨거웠던 마음들이 이젠 몸에 밴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고 누구나 이야기했다. 고개를 들면 우람한 산봉우리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현대자동차라는 자본과 그 자본을 울타리처럼 빙 둘러 지키고 있는 공권력의 모습들이 보였다. 희망이라는 말의 무게가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 머리카락 한 올 같은 희망에 대롱대롱 눈물겹게 매달려 있었다. 희망이라는 이름을 단 버스들이 울산으로 향한 7월 20일은 최병승과 천의봉 두 노동자가 철탑 위에 올라앉아 농성을 시작한 지 277일째 되는 날이었다.

현대차가 사내 하청이라는 구실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부려먹은 것부터가 빼도 박도 못할 불법이었다는 판결은 이미 2010년에 대법원에서 나왔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 위 ‘생산 라인’을 따라 순간순간 끊어짐 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뚝 떼어 그것만 홀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부를 수 없다. 그렇기에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모든 작업들은 고용주인 현대차가 몸소 관리할 수밖에 없으며, 고용주가 하청 노동자의 작업을 관리한다면 그 하청 노동자는 도급 노동자가 아닌 파견 노동자라 불러야 한다. 도급과 파견은 누가 노동자의 작업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도급은 노동자를 일터로 보낸 도급 업체가 노동자의 작업을 관리한다.)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 조립이 파견 노동자를 고용해서는 안 되는 공정이라 판결하면서 현대차의 사내 하청은 불법 파견이자 위장 도급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고 그럼으로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도 정부도 경찰도 그 누구도 현대차 자본의 뜻을 꺾지 못했다. 현대차는 노동자를 뽑거나 잘라 버리는 일에 아무도 끼어들지 말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3,500명을 새로 정규직으로 뽑겠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몇몇 정해진 공정에 몰아넣고 아예 ‘비정규직 공정’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같은 공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일을 나누어 맡았다면 이제는 부품 조립이면 부품 조립, 몸체 만들기면 몸체 만들기, 색깔 입히기면 색깔 입히기 같이 정해진 몇몇 공정이 통째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 법원에서 그런 방식을 불법 파견이 아닌 합법 도급으로 판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비정규직 공정’으로 정한 작업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더기로 보내면 당연히 빈자리가 생긴다. 3,500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숫자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는 방법은 없다.

자신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사람은 무엇을 할까? 이 철학적이면서도 필사적인 물음이 곧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다. 노동자들은 싸우거나 싸우다 죽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죽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길거리에서 자거나 음식을 끊었다. 내가 희망이라는 이름을 단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새삼스럽게 마주친 것은 그 지긋지긋한 되풀이였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사무장이 스스로 목을 매단 것이 지난 7월 15일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이 목을 맬 때 아마 희망버스든 뭐든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다시 울산으로 와 주기를 바라며 목에 줄을 걸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화가 난 것은 한 노동자의 죽음을 온 마음으로 슬퍼하지 못하고 “또?”라는 부질없는 물음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부터 낸 내 모습이었다. 왜 생목숨이 이 땅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야 할까? 대체 왜? 그의 목을 조른 것은 밧줄일까 아니면 현대차 정몽구일까? 왜 박정식 사무장은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을까? 뭐가 미안했을까? 누가 죽든 말든 이 세상은 왜 꿈쩍도 하지 않을까? 저 허공 위에서 박정식 사무장의 죽음을 알게 된 두 노동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슬프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짜증만 내는 내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화가 났다. 도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데 희망버스는 무슨 놈의 희망버스인가? 희망이라는 말을 애초부터 갖다붙인 것부터가 우리에게 더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희망이라는 말을 동아줄처럼 더 바짝 부여잡게 되는 거 아닌가!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부대낌이 울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줄곧 내 속에서 일었다. 뱃속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누가 시켜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확인하러 철탑으로 가고 있을까? 무얼 확인할 수 있기는 할까? 버스에 함께 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를 소개하면서 너무나도 쉽게 희망이니 노동 해방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런 말을 내뱉는 이들의 마음도, 내 속 어딘가에 있을 내 마음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2. 악몽, 현실

여섯 시간을 넘게 달린 끝에 버스들은 현대차 3공장 가까이에 있는 명촌 사거리에 다다랐다.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서울에서는 잔뜩 흐렸던 하늘이 울산에 내려오자 신기하게도 맑게 개어 구름 사이로 푸른 속살을 드러냈다. 뜨거운 햇볕이 아스팔트를 훅훅 달구어 사방으로 더운 바람이 불었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하나씩 깃발을 빼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3공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버스 안에서 듣기로는 모두가 현대차 울산 공장 정문 앞에 내려서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연 뒤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가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는 3공장 명촌 정문까지 행진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 명촌 정문이 저 멀리 보이는 사거리까지 들어와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3공장으로 향하는 쭉 뻗은 길은 이미 양 옆으로 전경 버스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곧 버스에서 전경들이 내려 갑옷처럼 생긴 것들을 척척 차려입기 시작했다. 딱히 함께 다닐 사람이 없었던 나는 전경들이 있는 쪽을 어슬렁거리다가 두 노동자가 있는 철탑 쪽으로 가 보았다.

드넓은 주자창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철탑은 손가락으로 탁 튕기면 우그러들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철탑 중간쯤 되는 곳에 두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었고 철탑 밑에는 수많은 깃발들과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거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입을 모아 똑같은 것을 부르짖었다.
“정몽구를 구속하라!”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니 밤에 벌어질 철탑 문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토닥토닥 포차’에서는 안줏거리들을 만드는 중이었고 박정식 사무장의 분향소와 어린이 놀이터, 상황실 천막 같은 것들이 이쪽저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문화제 무대는 이미 깔끔하게 차려진 뒤였다. 나는 다시 대오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경들은 아까보다 늘어나 있었다. 사복 경찰인 듯한 늙은이들이 무전기를 든 채로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공장 정문으로 가지 않고 여기서 머물러 있을까 궁금해서 왠지 모르게 대오 지도부처럼 생긴 사람들 곁에서 얼쩡거리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는 얼굴 표정들이 눈에 띄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원래는 울산 현대차 공장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지만 그쪽은 이미 전경 버스들과 보수 단체들이 온통 차지해 버렸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정문 앞 보수 단체들은 희망버스가 ‘종북 세력’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단다. 그 가난한 상상력에 정말 내 돈 한 푼이라도 보태 주고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철탑이 있는 3공장에 왔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다른 대오들은 지금 이곳으로 바삐 걸어오고 있다고 했다. 울산 공장이 워낙 커서 그런지 이쪽까지 걸어오는 데에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한 시간이 채 못 되었을 때 우리가 걸어온 명촌 사거리 쪽에서 깃발을 든 무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대차 비정규지회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었다. 그들에게서 먼 길을 걸어온 더운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고 그 더운 기운 때문인지 우리 쪽 대오에서도 금세 새로운 기운이 퍼져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질렀다. 곧 방송차가 나타났고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자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민중의례와 함께 시작되었다. 3공장 정문 쪽으로는 만장을 들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전경 무리들과 마주 맞서고 있는 채였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현대차지부 지부장, 비정규지회 지회장이 연이어 발언을 하고 나서 문화노동자 류금신 씨가 방송차 위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가 끊어지면서 대오가 주차장과 공장 철망이 마주보고 있는 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어느새 전경 버스는 우리가 걸어온 명촌 사거리 쪽과 우리 앞의 공장 정문 쪽을 막아 버렸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쪽을 향해 잰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왼쪽 옆 철망 안쪽에 현대차 직원들과 용역 경비들이 마치 인간 말뚝들처럼 철망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대오가 철망을 넘어 공장 안으로 쳐들어올까 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화가 치민 사람들이 철망 안으로 쓰레기를 던지자 직원과 용역들은 우산을 펴들고 몸을 가리며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우리한테 함부로 지껄였다. 철망 가까이에 다가가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더러운 말을 내뱉고 있는 그들은 전혀 이 세상 사람들 같지 않았다.

갑자기 저 앞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이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냄새를 맡아 보니 소화기 분말이었다. 철망에 밧줄을 걸고 잡아당겨 철망을 뜯으려는 이들이 보였다. 곧 뜯겨 나갈 것 같은 철망 안쪽에서 헬멧을 쓴 용역들이 마구 소화기를 쏘고 있었다. 으이쌰으이쌰 밧줄을 당기는 이들의 함성과 용역들이 내지르는 거친 욕설이 새하얀 소화기 분말 속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고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곧 철망 안쪽에서 강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고 맨 앞에서 싸우고 있던 대학생들은 온몸이 흠뻑 젖었다.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철망이 뜯기자 헬멧을 쓰고 방패로 몸을 가린 용역들이 철망 대신 제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용역들은 길쭉한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쇠파이프였다. 만장으로 쓰던 대나무 봉을 든 이들이 용역들과 마주 섰다. 이미 물과 소화기 분말로 온몸이 엉망이 된 대학생들은 그냥 맨몸이었다. 용역들은 이죽거리며 올 테면 와 보라는 손짓을 했고 정말 우리가 다가가려고 하면 소화기를 쏘거나 물을 퍼부었다.


얼마 뒤 용역들 뒤쪽으로 아예 소방차 한 대가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호스가 몇 개 더 늘었고 물을 내쏘는 힘도 더 세졌다. 아직 뜯기지 않은 철망에 새로이 감긴 밧줄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잡아당겼다. 또 다시 으지직거리며 철망이 뜯기자 방패를 든 용역들이 철망이 뜯긴 자리를 고스란히 메웠고 물과 소화기 분말을 번갈아 퍼부어 댔다. 맨 앞에서 소화기와 물을 온몸으로 받아 내던 이들이 뒤쪽에서 몸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제발 이쪽으로 와 달라고 목놓아 소리 질렀다. 방송차에서는 끊임없이 노래와 구호가 울려 퍼졌고 어느새 길 양 옆으로는 전경들이 다가와 길을 막고 있었다.

뜯을 철망은 다 뜯었는지 사람들이 아스팔트에 널브러져 있는 철망들을 대오 뒤로 전부 끌어다 놓았고 곧 대나무 봉을 든 이들과 용역들이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대나무 봉과 용역들의 방패가 와장창 우지끈 뚝딱 거친 소리를 내며 서로 뒤엉켰다. 다친 사람들이 하나 둘 대오 뒤쪽으로 실려 나왔다. 대학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뒤돌아선 채 맨 앞에서 벽을 만들어 소화기와 물을 온몸으로 막았다. 소화기를 쏠 때마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바람이 약하게 부는 탓인지 소화기 분말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아스팔트 바닥은 소화기 분말과 물이 섞인 걸쭉한 것이 잔뜩 고여 질퍽거렸다. 화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용역들 쪽으로 생수병을 던지자 방송차 쪽에서는 적들에게 무기를 주면 어떡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구급차가 와서 다친 이들을 실어 갔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람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대오 바로 옆까지 바싹 들어와 있었지만 섣부르게 끼어들지 못했다. 3년 전의 대법원 판결이 아마 공권력을 조심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부르짖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가 목이 쉬어 갔다. 신나게 물을 쏘고 소화기를 퍼붓는 용역들의 얼굴이 헬멧 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본 것은 분명 웃는 표정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나면 아마 그들의 손에는 적잖은 돈이 쥐여질 것이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자 용역들 뒤쪽으로 불빛이 켜졌다. 주황색 불빛을 등진 채 쇠파이프와 방패를 치켜들고 서 있는 용역들은 그 모습 그대로 악몽이었다. 우리가 꾸고 있는 악몽 속에는 커다란 용이 살아 우리에게 독한 연기를 내뿜고 물줄기를 쏘아 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동화 속에서는 새하얀 색이 언제나 깨끗하고 아름답겠지만 악몽 속에서 그것은 핏빛과 다르지 않았다. 새하얀 피가 맺혀 있는 안개를 들이마실 때마다 콧속에서는 진한 피 냄새가 났다. 피 냄새가 너무 지독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발밑은 온통 새하얀 핏물로 질척거렸다. 이게 전부 다 피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토록 소리를 지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저들의 독한 피를 온몸에 뒤집어 쓴 우리들의 모습은 비참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악몽을 어떻게든 현실로 되돌리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물이 뿜어져 나오면 등으로 막았고 소화기가 퍼부어지면 고개를 돌려 숨을 참았다. 이제는 마치 게임을 하듯 실실 웃으며 몇몇을 골라 겨냥하는 용역들 앞에서도 그들은 끝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현실이 아닌 악몽이라고 믿을 뻔한 사람들은 그들 덕분에 현실 바깥으로 끌려 나가지 않고 현실 속에 끝까지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 정말 현대차 공장 안으로 쳐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이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철망이 뜯긴 자리에 버티고 선 용역들과 맞섰고 이건 악몽이 아니라 공권력의 묵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그들은 악몽을 거부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들은 마치 눈에 푹 파묻힌 것처럼 어느새 하얀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누군가가 엔진 덮개에 손으로 ‘정몽구 구속’이라고 썼다. 사람들의 옷과 머리카락에도 소화기 분말이 온통 하얗게 내려앉았다.

전경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 뒤쪽으로 살수차가 나타났다. 굵고 세찬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오며 청소하듯 바닥을 훑었고 사람들은 얼른 뒤로 물러섰다. 살수차의 물줄기는 용역들이 쏘아 대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물줄기와 함께 전경들도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밤 여덟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대나무 봉을 든 이들은 공장 안으로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려 했고 용역들은 쇠파이프와 방패와 물줄기와 소화기로 맞섰다. 대학생들은 전경들을 막고 서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러는 가운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고 일곱 명이 경찰에게 끌려가 연행되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분노한 사람들이 용역들과 전경들에게 마구 발길질을 하며 대나무 봉을 휘둘렀지만 우리만큼은 저들과 똑같이 굴면 안 된다며 많은 이들이 말렸다. 대오 쪽으로 엉겁결에 휘말려 들어온 전경 하나가 뭇매를 맞을지도 몰라 몇몇 사람들이 얼른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제는 환호성을 지르면서까지 물을 쏘아 대며 즐거워하는 용역들은 여전히 줄줄이 늘어서 벽을 만든 채로 서 있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인간의 벽인지는 그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현대차는 법을 어겼지만 우리는 현대차를 어겼다. 경찰은 우리가 불법 집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용역들과 전경들에게 현대차란 곧 법이었다. 한 나라에 법이 두 개일 수는 없으니 그들은 우리들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우리 앞을 막아서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이윤과 권력이 바로 우리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것의 색깔만 다를 뿐 결국 같은 편에 서 있는 용역들과 전경들을 뒤로 하고 대오는 철탑 문화제를 위해 물러섰다. 밤 아홉 시였다.


3. 이미 그것은 사랑

철탑 아래 주차장은 장터처럼 우꾼한 분위기였다. 환히 불 밝혀진 무대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깔판을 깔고 앉았다. 아는 얼굴은 몇 있었지만 그들은 나 말고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다. 마땅히 이야기를 나눌 만한 이도 없고 술과 안줏거리를 사 먹을 돈도 없어서 나는 눈에 보이는 의자 하나를 골라잡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었다. 이윽고 문화제가 시작되었고 갖가지 발언들과 영상들이 내 눈앞에서 흘러갔다. 소화기 분말을 한가득 들이킨 목구멍은 여전히 따가웠고 평소에 좋지 않았던 왼쪽 무릎은 오랜만에 욱신욱신 성을 냈다. 나는 여기에 무엇을 보러, 무엇을 확인하러 왔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머리가 하얗게 비어서 인지 더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밤 열 시가 다 되도록 먹은 것도 없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토닥토닥 포차’에서는 온갖 맛난 안주들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며 안주를 집어먹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는 얼굴 하나가 다가와서는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밥 먹고 오자고 했다. 고마운 분이었다. 주차장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걸어 찾아 낸 밥집에 들어가서 배를 채우고 돌아오니 그제야 기운이 나고 생각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문화제에서 무슨 말들이 오갔고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는 전북대안언론 ‘참소리’의 문주현 기자님께서 꼼꼼하게 써 주셨다. 문 기자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방금 생각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썼지만 생각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생각이 전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었을 뿐이다. 무대는 정말 눈부시도록 환했고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에 못지않게 환했다. 저 위에 있는 농성장에서도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거나 구호에 맞춰 주먹을 치켜들었다. 발언들은 힘찼고 저마다 힘든 싸움을 겪어 온 사람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노래 부르러 무대로 올라온 문화노동자들의 따스한 목소리는 우리는 치열하면서 평화로워야 한다고, 그렇게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눈과 귀를 스치듯 지나가 버렸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이 많은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을까? 무더운 날씨에 울산까지 내려와서 스티로폼 깔개 하나 깔고 앉아 웃고 떠들며 “투쟁!”을 외치고 있는 저 사람들은, 그리고 온 세상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렁차게 발언을 하는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힘을 받고 있는 것일까? 박정식 사무장이 나오는 영상을 보며 짓는 눈물과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를 향해 보내는 웃음은, 그 살아있는 감정들은 어디에 스며 있다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일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현대차 자본이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정몽구가 갑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현대라는 자본이 스스로를 산산이 흩어 버리는 일도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정몽구가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모조리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한다고 해도, 다시는 비정규직을 뽑지 않겠다고 해도 이 세상은 정몽구 같은 재벌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그 많은 재벌들과 그들이 움켜쥐고 있는 자본은, 그리고 자본의 편에 서 있는 권력은 아마 철탑 문화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제 몫으로 가진 시간을 다 살고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도 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희망을 위해 굳이 버스에 써 붙인 ‘희망’이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여기 울산까지 왔다. 도대체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이 마치 보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희망을 어떻게든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은 말짱 다 거짓말이 아닌가! 결국 ‘희망버스’는 대중적인 사업을 위한 달착지근한 광고 글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어찌 할 바를 모르겠는 채로 아까처럼 의자에 걸터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아까부터 내 앞에 몸을 착 붙이고 서서 무대가 안 보이도록 가리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왼쪽에는 반팔 웃옷과 반바지를 입은 여자가, 오른쪽에는 단단한 몸집에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의 늘씬한 뒷모습에 눈이 갔지만 차츰 두 사람을 함께 보게 되었다. 스스럼없이 서로의 몸에 팔을 올리고 어깨와 옆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보아 연인 사이인 듯했다. 그때 마침 무대에서는 수도권 몸짓패 연합회 사람들이 나와 ‘불나비’에 맞춰 흥겨운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자는 왼쪽에서 남자의 왼팔을 꼭 부둥켜안고 있었고 남자는 오른팔로 힘차게 팔뚝질을 하며 온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무대를 바라보며 어깨춤을 추었지만 나는 오로지 두 연인들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카메라로 둘의 뒷모습을 몰래 찍었다.


‘사랑’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랑? 이제 와서 웬 사랑?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그때까지만 해도 소화기 분말이 퍼부어진 듯 온통 자욱하기만 했던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어떤 모양을 갖추어 내기 시작했다. 사랑?

그러다가 마음속 사랑이라는 낱말 뒤에 어떻게 끝맺게 될지 알 수 없는 문장을 위한 조사들이 연이어 붙었다. 사랑이, 사랑은, 사랑도, 사랑이라서, 사랑이지만, 사랑만이, 사랑을, 사랑의, 사랑마저, 사랑처럼, 사랑다운... 나는 무엇을 골라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수많은 조사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깜빡거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실제로는 아마 그때 담배를 입에 문 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두 연인들은 여전히 몸을 찰싹 붙이고 서 있었고 무대에서는 철탑 위 두 노동자들을 향해 둥근 불빛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최병승 씨가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천의봉 씨는 안타깝게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천의봉 씨가 철탑 아래 모인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글을 최병승 씨가 대신 읽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나도 얼른 볼펜을 쥐고 받아 적었지만 내용 전부를 적지는 못했다. ‘참소리’ 문주현 기자님께서 정리하신 것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염치없이 여기에 옮겨 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곳에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두 눈 딱 감고 희망버스가 끝나면 내려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1주일 전 좀 더 이 철탑 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한 첫 날 박정식 열사가 돌아가셨다. 며칠을 울었다. 영정 앞에 술 한 잔 못 따르는 내가 미웠다. 기억하기 싫은 일들을 잊기 위해 발버둥도 쳤다. 2013년 현대차 하청노동자와 기아차 하청노동자 3명이 죽었다. 내가 슬펐던 것은 그들을 가슴에 묻고 잘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주를 보냈다. 참 모진 세상이지만 벗이 있고, 나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수천 수만 가지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등지기 싫었다.

지난 10년의 불법파견 투쟁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남은 것은 피멍이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화상자국, 두 분 열사의 죽음이 남았다. 긴 시간 우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동지들의 피 값을 보상받을 수 없지 않을까 두렵기만 했다. 왜 우리만 슬퍼해야 하나? 스스로 무기력과 야만적 폭력 앞에 주저해야 하나? 죄 없는 노동자가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현대차는 여전히 신규채용만 주장하고 있다. 마치 선심 쓰는 것처럼.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조 파업은 불법이라며 경총의 입을 빌려 공권력 투입을 주장하고 있다.

10년이 넘는 동안 현대차는 몇 만 명의 불법파견과 3명의 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았고, 200여 명의 해고자가 지금도 죽음의 벽 앞에서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불법과 공권력 투입을 운운하고 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이 미친 세상을 버티려면 우리 먼저 자책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동지를 죽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을 착취하고 불법을 자행한 정몽구다.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또다시 포기하면 정몽구는 우리 동지들의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할 것이다. 동지들 같이 싸우고 살아내자. 정몽구에 맞서 싸우자. 열사가 원한 꿈과 희망을 쟁취하자. 나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자. 동지들 죽지 말고 살아서 승리하자. 힘차게 투쟁하겠다.


나는 감히 손뼉을 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는 대신 최병승 씨를 향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입을 모아 “최병승 동지,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만들어질 듯 말 듯 꼼지락거리기만 하던 문장을 이렇게 끝맺었다.
‘사랑이었다.’

그랬다. 이미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 연인들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지만 이제, 당연하게도, 사랑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희망이라는 말을 더는 붙들고 늘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말 때문에 모였지만 희망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희망은 가짜다. 가짜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버텨 올 수 있었던 건 결코 희망 때문이 아니다. 희망이라는 말로는 이 모든 이들의 마음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마다가 겪어 온 삶의 이야기들을 지닌 채 누군가와 손을 잡고 울산까지 내려온 사람들.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 버스 안에서, 울산 철탑 밑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 그렇게 곳곳에서 묵은 인연들과 새 인연들이 꽃처럼 피어났고 향기처럼 떠다녔다. 사람들은 모두 인연에 옮았다. 관계들이 생기고 그 속에서 웃음과 눈물이 생겨났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각자 자신의 몫으로 가지고 있는 인연들만큼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이야기했고 최선을 다해 웃었으며 최선을 다해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함께 철탑 위 두 노동자들을 바라보았다.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들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는 그 순간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저 위의 두 노동자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맺어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관계는, 그 인연의 끈은 현대차 용역들이 전기톱을 가져온다고 해도, 전경들이 무쇠 가위를 들고 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을 그런 것이었다.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만일 수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되찾기 바라는 것. 허공에 떠 있는 두 노동자들이 하루 빨리 무사히 내려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정몽구가 더 늦기 전에 대법원 판결에 따르기를 바라는 것. 나아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것. 하지만 오만이라고 해도 좋다. 내겐 이 따위 바람들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글로 쓰거나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때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애초에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들이었던가? 자본이 그렇게 쉽게 거꾸러질 것 같은가? 자기네들이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노동자들이 더는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올 것 같은가? 나는 걸핏하면 되풀이되는 희망이라는 말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희망만으로 사람은 버틸 수 없다. 희망은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들지 위로해 주거나 보듬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관계맺음이었고 웃음과 눈물이었다. 오랫동안 고운 흙이 쌓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진 언덕이었고 오래도록 흐르며 넓고 깊은 길을 낸 강물이었다.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고 힘든 시간들을 오롯하게 버텨 냈다. 희망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말을 찾지 못해서 우리는 희망이라는 말을 쓰고 있을 뿐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랑, 아직 오지 않은 사랑, 더 많이 찾아야 하는 사랑,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랑, 눈 감으면 금방이라도 잃어버릴 사랑,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한 사랑, 하지만 아직 다다르지 못한 사랑,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랑, 시간과 싸워 이겨야 하는 사랑,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이 희망이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나도 지금 그것을 희망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것은 희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우리가 희망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아직 다른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로 문화노동자 박준 씨가 나와서 힘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사람들은 다시 두 노동자가 있는 철탑 농성장을 향해 팔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한다고 외쳤다. 최병승 씨도 마주 하트를 그렸다.
결국, 사랑 때문이었다.



문화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깔판을 깔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자는 이들도 있었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술 사먹을 돈도 없었던 (정확히 말하면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담배를 피우며 두어 시간쯤 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깔판 하나를 구해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4. 사랑 뒤에 남은 것들

볼이 뜨거워 눈을 뜨니 어느새 떠오른 해가 아침답지 않은 뜨거운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였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자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다 없애며 나는 어제 앉아 있던 곳에 걸터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철탑 농성 278일째 되는 날이었다.


일곱 시 반쯤 되자 몇몇을 빼고는 다 일어나 있었다. 주차장을 말끔히 청소한 다음 아침밥으로 나온 김밥을 먹었다. 아홉 시가 되자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 기자회견 및 정리 집회가 시작되었다. 기자들을 뺀 모든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갔고 무대가 가득 차자 철탑 밑으로까지 올라가 마치 사람들이 철탑을 이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몇 명이 병원에 실려 갔고 몇 명이나 연행 되었는지 짤막한 보고가 있고 나서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 가운데 몇몇을 적어 두었다.

“대법원 판결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가 정상입니까? 두 노동자들이 내려와야 하는 이유도 있고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어서 싸움에서 승리하여 두 노동자들이 무사히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몽구는 법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공권력이 알아서 정몽구의 개가 되었습니다. 즉 공권력은 자본의 개입니다. 저들이 왜 하늘 위에 올라가 싸워야 합니까? 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이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불도 안 났는데 소방차 와서 물 뿌리고 소화기 쏘고. 다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위로 계란을 치면 박살난다고 해도 그 계란이 깨져 흘러서 바위를 넘습니다. 박정식 열사라는 계란이 바위에 부딪혀 박살났다고 해도 그 바위를 타고 흘러서 끝끝내 그 바위를 넘고 말 것입니다.”


발언들이 이어지는 도중에 간밤에 연행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둘이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로 돌아왔다. 무척 지친 얼굴이었다. 연행자들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가 하는 요구는 법을 지키라는 것 하나인데 왜 우리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연행되어 가서 경찰들에게 물었습니다. 법원 판결이 이미 3년 전에 나왔는데,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물대포를 맞고 소화기를 맞아야 합니까?”
“저는 전경들과 대치하던 중에 밀지 말고 싸우지 말자고 했을 뿐인데도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끌어 그대로 질질 끌려 연행되어 갔습니다. 저는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경찰은 왜 그런 불법 집회에 참여했느냐며 제 말을 하나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몇몇 이름 있는 사람들이 나와 발언을 했지만 기억에 남은 것은 박래군 씨의 말이었다.

“싸움이란 끝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78일을 버틴 두 동지는 싸움이 끝나기 전에 내려온다고 해도 이미 많은 것을 이뤄 낸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번에 조직된 희망버스가 그걸 두 동지들에게 알려 주었을 겁니다. ...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현대차 희망버스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어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천의봉 씨도 고개를 내밀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두 노동자를 향해 다시금 하트를 그려 주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사랑을 이어 가려는 약속들이 사랑 뒤에 남았다. 그리고 그 약속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희망보다 새로웠다.
내가 울산에서 확인한 것은 그것이었다.


5. 기자회견 뒤에 남은 것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웬 양복쟁이 한 사람과 MBC라고 적힌 커다란 카메라를 짊어진 사람이 철탑을 마주보고 섰다. 양복쟁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뭔가를 거듭 말해 보더니 카메라 뒤에 선 사람이 손짓을 하자 진지한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 문제가 폭력 사태로 변질되면서 사측과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엠비씨 뉴스 ○○○입니다.”

뉴스를 마무리하는 장면을 따러 일부러 철탑이 잘 보이는 주차장 쪽으로 온 듯했다. 카메라 곁을 지나치던 사람들이 금세 발걸음을 멈추고 양복쟁이와 카메라를 에워쌌다.
“폭력 사태로 변질되었다니,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당신들이 봤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어?”
“이러는 거 언론 폭력이야!”
“이런 사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이 방송의 역할 아닌가요?”
“그딴 소리 지껄일 거면 여기서 당장 나가!”

순식간에 붙 불은 험악한 분위기는 MBC에서 나왔다는 두 명을 둘러싸고 무섭게 타올랐다. 나이 지긋한 카메라 아저씨가 나이를 들먹이며 어따 대고 큰소리냐고 버텨 봤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따지고 들자 둘은 조용히 꼬리를 내리고 주차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수첩에 방금 보고 들은 것들을 부지런히 적으며, 집에 돌아가 쓰게 될 글을 짤막하면서도 재미난 이야기로 마무리하게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정말 그 이야기를 쓰고 난 지금, 내 기분은 하나도 좋지 않다.


현대차 희망버스 기자회견문

재벌의 광기를 노동자 시민의 열기로 반드시 다스릴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본 현장은 재벌 탐욕의 현장이었고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은폐하고 가리기 위해선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는 한국 재벌의 거리낌 없는 폭력의 현장이었다. 정몽구 회장으로 대표되는 현대차는 면담과 대화 제의에 처음부터 폭력으로 응답했다. 정문은 컨테이너 박스로 철옹성을 만들었고 모든 문은 무기를 소지한 용역들의 전시장이었다.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수많은 노동자 시민들의 열기를 소화기와 방패 그리고 물대포로 진압하고 짓밟았다. 그 과정에서 눈에 돌을 맞는가 하면 발뒤꿈치 뼈가 빠지고 왼쪽 새끼손가락이 탈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귀 옆이 잘리고, 오른손 울대가 15센티미터 찢어지는 등 중상자만 십여 명이 넘는 상황이다. 또한 경찰의 무더기 폭력 연행으로 7명이 연행되어 현재까지 중부서와 동부서에 6명이 불법 연행된 상태다. 이 같은 일련의 행위에 대해 현대차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최병승 천의봉 동지는 278일째 철탑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전국에서 달려온 4,000여 명이 넘는 노동자 시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편지까지 준비했던 천의봉 동지는 갑작스런 몸의 이상으로 준비한 편지를 결국 읽지 못했다. 장기화되는 철탑 농성이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철탑이라는 좁은 물리적 공간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옹색한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몰릴 대로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의 숨 쉴 수 없는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탄압의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다. 대법워너 판결을 이행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재벌 앞에선 찻잔 속 태풍이다. 적반하장 격으로 불법파견에 대해 난데없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등 시간 끌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막강한 재벌 권력을 이용해 한국 사회를 맘대로 저글링하는 자본의 파렴치함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는 것이다.

희망버스 참가자는 반칙을 일삼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불법을 꺾기 위해 전국에서 모였다. 이것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태 해결이 되지 않고 정몽구 회장의 전향적 입장 표명이 없다면 우리는 더욱 강도 높고 분명한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11년 한진 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이 309일 만에 마무리된 것을 우리는 주목한다. 또 다시 그 기록이 깨지는 것을 우리는 묵과할 수 없다. 이 점 분명히 확인한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박정식 열사 문제 또한 전향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그 책임을 정몽구 회장이 다 해야 한다. 우리는 전국적인 열사 추모 분위기를 확대하고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나갈 것이다. 다가오는 폭염에 철탑 농성자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우리는 막고자 한다. 그것이 희망버스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며 바람이다.

사람을 보자, 사람을 봐야 한다. 그리고 재벌에 농락당하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을의 상징인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희망버스가 중단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한다. 현대차 사측은 신규채용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철탑 농성이 300일을 향해 힘겹게 달려가고 있다. 우리에게 인내는 없다. 더는 관용도 없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불법파견을 즉각 인정하고 이 모든 사태를 즉각 해결하라.

2013년 7월 21일
희망버스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