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해고통보와 절필

훈아. 전화를 안 받더라. 하늘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도 그깟 전화 없이는 너에게 말 한 마디 전할 수 없다는 게 참 신기하다. 하긴 너는 언제나 그랬지. 너와 연락이 닿는 일은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들었으니.

어젯밤에 꾼 꿈 이야기부터 해 볼까. 근데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게 그냥 아래로 끝도 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꿈이었어.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닌, 색깔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공간 속을 그저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기만 했지. 처음엔 되게 무섭고 아찔했어. 이렇게 떨어지다가 바닥에 내리꽂히면 내 몸뚱이는 틀림없이 조각조각 부서질 테니까.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등은 그 무엇에도 부딪히지 않았어. 내가 정말 아래로 떨어지고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며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지. 언제 바닥에 닿아 온몸이 으깨질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 한 번 바닥까지 가 보자는 오기 비슷한 게 생겼던 것 같아. 그러자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저 맨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죽는 건 무서웠지만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금세 익숙해져 버린 거지.

그렇게 허공에 붕 뜬 것도 아니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느낌 속에서 잠시 그대로 있다가, 이윽고 나는 눈을 떴어. 눈앞에는 벽이 있었지. 하얀 벽. 머리맡에 있는 창문에서는 빗소리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어. 비 때문에 흐릿해진 햇빛이 꼭 창문의 너비만큼만 내 방을 환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지. 잘 떠지지 않는 눈 위에 손등을 갖다 댄 채로 생각했어. 결국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구나.

어제 나는 또 한 번 직장을 잃었단다. 그걸 직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야.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직장이란 뭘까? 내가 일을 해 주고 돈을 받는 곳이 직장일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자아실현의 장’일까? 아니면 직장은 결혼과 효도를 위한 소도구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까?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직장을 다니고 싶어 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돈 때문이지. 돈 걱정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값어치 있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살았을 거야. 책 읽고 음악 듣고 시간 내서 농성장이나 집회에 찾아가 구호 외치고 취미 삼아 이런저런 단체들을 기웃거리며 일손을 도왔겠지. 돈 없는 불쌍한 단체들을 위해 CMS 계좌를 몇 십 개는 만들었을 테고. 햇볕에 얼굴 그을리도록 열심히 발로 뛰는 활동가들에게는 취미로 운동한다며 볼멘소리 깨나 들었겠지만 그런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아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쉬엄쉬엄 살았을 거야. 양이 너무 많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열하일기>나 <홍루몽>, <희망의 원리> 같은 것들은 진작 읽어 치웠겠지.

하지만 나는 돈이 없어. 길바닥에 나앉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다. 물론 나보다도 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들의 가난은 나의 목숨과는 딱히 관계가 없어. 그들의 가난을 걱정해 주고 함께 고민한다고 해서 내 목구멍에 밥이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와 내 식구들의 목숨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

목숨을 이으려면 일을 해야 하지.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일이란 곧 돈이야. 따라서 내게 돈은 곧 목숨과도 같아. 물고기가 태어날 때부터 물속에 있게 되는 것처럼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틀 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지금껏 살아 왔어. 그런데 물을 싫어하는 물고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멋대로 나를 쑤셔 넣은 그 틀 속이 너무나도 싫어.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아. 나는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걸 되게 싫어하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무슨 일이든 하기는 해야 하겠지. 그런데 왜 그 일이라는 것에 얼마큼씩 돈이 매겨지는 거지? 무슨 일에는 얼마, 무슨 일에는 그것보다 많은 얼마, 또 다른 일에는 그것보다 적은 얼마, 이런 식이잖아. 마치 마트에서 물건에 가격표가 붙여지듯 그렇게 일들이 척척 값 매겨지고 있는데 대체 그 이유가 뭐야?

러시아의 어느 수염 더부룩한 글쟁이는 이런 제목의 이야기를 쓴 적 있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나도 그 비슷한 궁금증을 품어 본 적 있어. ‘사람의 노동에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왜 청소부 김씨와 판사 김씨가 받는 돈은 다를까? 왜 이 나라 대통령과 내 아버지가 벌어들이는 돈은 다를까? 뼈가 으스러지도록 밤낮 없이 일하는 건 똑같을 텐데 왜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을까? 왜 누구는 누군가를 뽑아 쓰든 잘라 버리든 멋대로 할 수 있고 왜 누구는 힘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할까?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어. 맑스나 로자는 알까? 그걸 알고 죽었을까? 내가 궁금한 건 왜 자본이 공평하지 못하게 분배되느냐가 아니라, 자본이 분배되는 기준에 동의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도대체 뭐가 있느냐야. 나는 경제학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자본이 어떻게 분배가 되는지 아는 게 없어. 아마 나보다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자본이 어디서 나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러구러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더 궁금해. 왜 사람들은 판검사들보다 청소부나 일용직 일꾼들이 더 적은 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까? 돈줄을 쥔 이들이 돈줄을 쥐지 못한 이들을 마음대로 골라 부려먹는 것이 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내가 그런 것들을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과 마주하며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어떤 반항심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몰라. 나는 어떤 직장에 들어가도 좀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거든. 그 공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뛰쳐나오거나, 나를 도저히 견디지 못한 윗사람이 나를 떨쳐 내거나 둘 중 하나였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뭔가 그럴 듯한 낱말들을 갖다 붙여 가며 마치 다른 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존재하는 듯한 공간이라 자신을 치덕치덕 치장하는 집단은 참을 수가 없었어. 운동? 대안? 자립? 민중? 노동? 생태? 이미 닳을 대로 닳아 버린 그런 낱말들을 비위도 좋게 주워섬기는 인간들 치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는 치들은 단 한 명도 없었지.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였으니까.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는 온갖 일에 골고루 무능했거든.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조금 할 줄 알 뿐 다른 모든 일은 하나도 못해.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다른 이들의 마음에 들지는 않는 거야. 처음에는 이건 내가 노력하면 되는 일이라고,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어. 나는 일을 못해. 무슨 일이든 못해. 뭐든지 망쳐 버리고 흐트러뜨리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이 모든 건 내가 겪어 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어.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내가 생각하는 노력과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노력이 비슷하게 들어맞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노력? 노력이란 뭘까? 다른 이들은 아마 무슨 일이든 윗사람이 시키기 전에 미리미리 척척 할 줄 알게 되도록 자신의 몸과 마음을 쥐어짜는 걸 노력이라 생각하겠지. 나에게 노력은 그런 게 아니야. 내게 노력이란 내가 즐거울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내 방식대로 다시 짜맞추는 거야.

즐거움? 내게 즐거움이란 나 자신을 잊을 수 있는 순간들이지.

생각해 봐. 이런 마음으로 일터에 나오는 이를 어느 누가 반길 수 있을까? 때문에 나는 어디에 들어가든 늘 거짓말을 달고 살아야 했어. 잘라 말할 수 없는 걸 잘라 말하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을 단정 짓고, 못하는 걸 잘한다고 부풀리고, 내 속에 있는 크고 깊은 어두움을 작은 얼룩쯤으로 보이게 하고, 나 자신은 찰흙 인형처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언죽번죽 말하고, 관심 없는 것을 관심 있는 척하고, 아, 이제 그만, 나는 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야 저 사람이 나를 뽑을 것이고 어떻게든 뽑혀야 내 손에 돈이 떨어지니까.

나를 뽑은 사람들은 늘 내게 말했지. 변해야 한다고. 당신이 자리하게 될 공간에 맞게 변해야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다고. 근데 난 아직도 모르겠어. 사람이 변한다는 게 대체 뭐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하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 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사람마다 다 똑같기라도 할까? 정말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 자기가 지닌 뭔가를 버리거나 지니지 않은 무언가를 갖출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나한테 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사람들은 결국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이 되라는 거야. 언제나 자기가 옳으니 자기 식대로 따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거지.

언젠가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잖아. 이 세상에 내게 맞는 일은 없어. 일이라는 것이 돈주머니를 찬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 그가 시키는 일을 그의 마음에 드는 얼굴빛으로 해 내야 하는 것이라면 말이야. 차라리 나 혼자라도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일들, 이를테면 농사일 같은 것이 나한테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은 허구한 날 책이나 보고 글줄이나 쓰던 네깟 놈이 농사는 무슨 농사냐고 손가락질하며 날 비웃겠지. 맞아. 내 손은 굳은 살 하나 없는 매끈한 대학생의 손이야. 낫 놓고 기역자만 겨우 알지 낫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놈이 어느 세월에 농사일을 배우겠어? 더구나 어찌어찌 농사일에 익숙해진다고 해도 그걸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되려면 땅이 있어야 하잖아. 땅이 있으려면 그곳에 집도 있어야 하고. 근데 그걸 무슨 돈으로 마련하지? 당장 의료보험비 낼 돈도 없어 식구들이 아무도 병원에 못 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결국 며칠 전까지 일하던 곳에서 이제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듣고서도 딱히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어. 대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를 때 손전화 문자 한 통으로 끝낸다고 하잖아. 내가 받은 건 이메일 한 통이었지. 두 달 전쯤에 나랑 일하던 다른 한 사람이 비슷하게 잘려 나가고 난 뒤 나는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곳 역시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으니까. 그리고 내 윗사람도 나를 지켜보며 아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야.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군! 거짓말은 언제나 금방 들통나는 법이잖아.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궁금하기는 했어. 이런 나도 민주노총 조끼 갖춰 입고 복직투쟁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복직투쟁을 하려면 일단 일터가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어야 할까? 몇 달 동안이라도 내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할까? 물론 그곳에서도 일을 잘해 내지 못하고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엄벙덤벙 겨우겨우 해치웠던 나지만, 나긋나긋한 말투의 이메일 한 통만으로 이렇게 너무나도 쉽게 잘려 나가도 될까? 모든 건 제대로 일을 해 내지 못한 나의 책임일까? 더구나 처음 두 달 동안은 급여의 반만 받고서 일했는데!

이메일을 받고서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사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지. 복직투쟁은 무슨. 이름값 높은 이들이 몰려 있는 그곳을 상대로 복직투쟁이니 일인시위니 뭐니 했다간 나는 아마 본전도 못 찾고 온갖 더러운 입씨름에 휘말려들겠지. 무엇보다도 돈이 없이는 복직투쟁을 하고 싶어도 못해. 서울일반노조나 희망연대노조에서 나를 받아줄 리도 없겠거니와 나와 내 식구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돈이야. 명분이나 신념이 아닌 돈이라고. 그저 다 내가 끝끝내 무능했던 탓이라 생각하면 모든 게 정리가 되잖아. 나를 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상처 받지도 않아.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어. 시민단체든 진보단체든 한 달에 백만 원 조금 넘게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래도 4대 보험에 돈 백만 원이라도 손에 쥐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그걸 못해서 이리 빌빌대고 있는데.) 그 사람들 역시 불만도 있을 테고 뭔가 성에 차지 않는 것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자기 자리에서 잘 버티고 있잖아. 그들은 자기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 나갈 줄 아는 사람들이겠지. 자기가 속한 공간을 무럭무럭 자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마음이 병들지 않은 사람들.

그런데 난 그런 사람이 아냐. 시 쓰는 어떤 양반은 자기가 지나간 곳마다 모두 폐허라고 썼지만 나는 어느 한 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 자신의 일부분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어제 받은 이메일 한 통도 아마 나의 어딘가를 망가뜨렸을 거야.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그 해고 통보 이메일을 받기 전부터 내 안의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어. 요새는 무엇을 만나든 그것에 실망하게 돼. 사람을 만나든 집단을 만나든 사상을 만나든 고작 이런 거였느냐고 실망을 하게 되는 거야. 아니, 처음부터 기대라는 것을 하지도 않았으니 실망이라는 말은 옳지 않겠지. 확인이라고 쓰는 게 맞을 거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던 것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겪어 가면서 하나하나 확인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

나는 오래 전부터 자기 삶을 위해 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글을 써 왔지.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든 날마다 철거당하는 노점상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다가 지난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고 돈만 벌었고 바로 얼마 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미 나는 삼 년 전의 내가 아니라는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했지.

나이 서른을 넘고 나서 나는 좀 이상하게 변했어. 좋고 싫은 것이 너무 뚜렷해져 버린 거야. 예전에도 그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지. 누군가가 나와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판가름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고 저 사람이 나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생각을 하거나 그냥 일어나서 그 자리를 나와 버렸어. 나랑 맞지 않는 무언가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이 따위 시시껄렁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집에 가서 책이나 읽는 게 나을 것 같았어.

근데 내가 쓰는 글은 현장을 파고들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야. 노동자들이든 철거민들이든 누구든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봐야만 쓸 수 있는 글인데, 그렇게 현장 속으로, 현장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내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거야. 얼마 전에 있었던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에 나도 다녀왔거든. 전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인 왁자한 분위기 속에 앉아 있어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지가 않았어. 피곤하기만 했지.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아는지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떤 한 분이 내게 맥주를 한 잔 건네주시는 바람에 잠시 사람들 틈에 섞여 앉았었는데 거기서도 나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어. 그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었거든.

지난달에 나는 어느 해고 노동자 한 사람이 겪은 일을 기다란 글 한 편으로 꾸며 인터넷 매체에 보낸 적이 있어. 매체에도 그 노동자에게도 나는 돈 한 푼 달라 하지 않았지. 어차피 돈 받으려고 쓴 글이 아니니까. 며칠 전에 술이나 얻어먹을까 찾아간 어느 모임에서도 그 노동자를 만났지만 나는 말 한 마디 눈짓 하나 나누지 않고 잠자코 앉아 술만 마셨어. 그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할 이야기가 없었거든. 소주를 홀짝이는 내 옆으로 요새 무슨 영화가 재미있냐, 어떤 배우가 잘 나가냐 하는 말들이 들렸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어. 그 노동자는 아직도 복직투쟁 중이었고 모임 사람들과 뜻을 모아 자신이 해고되기까지를 그린 단편 영화를 만드는 데에 온통 마음이 가 있었어.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그 술자리의 어떤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어. 괜히 왔구나 싶었지. 차라리 동전 긁어모아 술을 사다가 집에서 먹을 걸.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술 먹다가 잠이나 잘 걸. 괜히 여기에 와서 쓸데없는 이야기에 시간을 버리고 있구나 싶어 나는 애꿎은 강냉이만 우적우적 씹어먹었어.

그날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마음이 어찌나 안 좋던지!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람이라는 존재에 더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된 내 모습이 무슨 괴물처럼 느껴졌어.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고, 아, 오늘도 그저 그런 이들을 만났구나, 오늘도 시시한 말들과 지루한 얼굴들, 안 보고 안 듣느니만 못한 것들과 씨름을 했구나, 피곤하구나,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구나, 읽다 만 소설이나 이어 읽고 싶구나, 뭐 이런 생각들만 내 속에 가득 차 있는 게 느껴지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거야.

그리고 어제 받은 이메일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지. 사람이 모인 집단은 무슨 탈을 뒤집어쓰든 무슨 시늉을 하든 결국 거기서 거기라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만이, 주어지는 일을 흔들림 없이 잘 해 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집단에 받아들여진다고. 윗사람은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을 늘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아예 권력이 권력인 줄 모르고 있기도 한다고. 온갖 좋은 말을 다 갖다붙인다 해도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고. 이미지를 팔든 도덕을 팔든 정치를 팔든 사상을 팔든 존재를 팔든 무언가 번쩍번쩍한 것을 꾸역꾸역 만들어 팔아먹어야 한다고. 모두가 동등한 입장을 갖는 공동체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고. 나처럼 무능한 사람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고.

피곤했어. 그뿐이었지. 먹고살기 위해선 내가 지닌 것들 중 무언가를 팔아야 했는데 내가 내놓은 것들을 사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고개를 들면 이쪽저쪽에서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보였지. 자기 것을 팔 줄 아는 이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이들. 도덕과 진보와 정치와 민중의 편에 선 번듯한 사람들. 정작 그 사람들은 뭐라도 하고 있지 나는 장승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어.
피곤했으니까.

이런 말하면 죄가 되겠지만, 천막 농성이나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 그들은 적어도 치열하게 싸워 돌아가고자 하는 일터가 있잖아. 싸움에서 이기면 다시 다니게 될 직장이 있다고. 나는 그런 것조차 없어. 밥벌이를 할 일터가 처음부터 없었는데 대체 누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하겠어? 나는 비정규직도 아니고 하청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가도 아닌데 대체 누구에게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되겠느냐고! 내가 다닌 곳은 사업자등록증도 없는 그런 곳이었는데! 노동자들은 천막 속에서, 크레인 위에서, 철탑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하고 있어. 그들은 무척 힘든 싸움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불행한 사람들은 아니야. 같이 싸우던 이가 목숨을 끊고 집안 사정이 결딴이 나더라도 그들의 곁에는 늘 다른 이들이 있지.

자신의 문제가 곧 이 시대의 문제인 사람들. 난 그들이 부러워. 나의 문제는 나라는 틀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래서 그런지 내 곁에는 사람들이 없고 나도 누군가를 옆에 두고 싶지가 않아.

아래로 아래도 떨어지기만 하는 꿈을 꾸다가 눈을 뜨고 하얀 벽만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지. 그리고 생각했어. 돌이킬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답은 뻔했어. 그럴 수 없었지. 나는 르포 또는 현장 글쓰기를 더는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어느새 변해 있었어. 그리고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이들 속으로 파고들 마음이 없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아. 할 말도 들을 말도 없거든. 어떤 노동자가 왜 싸우고 있는지, 지금껏 어떤 싸움을 벌여 왔는지를 천천히 듣고 그걸 기록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근데 내가 쓰려 했던 글은 그보다 더 깊숙하게 파고들어가는 글이었지. 몇 번이고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며 웃고, 같이 싸우고 하며 어떤 관계를 맺어 가야 쓸 수 있는 그런 글이었어.

허나 나는 내가 꿈꾸었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내가 내놓은 무언가를 사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리는 소심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석 달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지. 그때까지 다니던 곳을 뛰쳐나와서 다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는 편의점 알바든 학원 강사든 뭐든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다가 운 좋게 새로운 곳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이제는 이메일 한 통 말고는 남은 것이 없어.

그런데 이제 나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글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이 나이에 내가 뭘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던 지난 삼 년 동안보다 더 긴 시간을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게 될지도 몰라.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글을 쓰게 되든가 둘 중 하나겠지. 어느 경우든 내겐 많은 시간이 필요해. 얼마큼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고 말이야.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일자리를 구하는 거야. 새롭게 쌓인 빚부터 어떻게든 끄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지. 다행히도 현장에는 나 말고도 다른 글쟁이들이 많아서 현장의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고 모양을 갖춰 세상에 나올 거야. 다들 바지런한 사람들이니 나처럼 되도 않는 이유로 흐물흐물 주저앉지는 않겠지.

아직도 간밤에 꾸었던 꿈 생각이 나. 떨어져도 떨어져도 바닥까지 이르지 못하는 공간에서 나는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꿈에서 깼는데도 달라진 것은 없어. 언제 무참히 부서질지 모르는 삶을 부득부득 끝까지 살아 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너는 알고 있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언제 바닥에 곤두박질칠지 알 수 없는 이 상태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없는 거니?
너는 오늘도 전화를 받지 않는구나.

2013년 7월 28일
너의 벗 박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