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는 왜 위험한 언어가 되었나

[새책] 위험한 언어(울리히 린스 지음, 최만원 옮김, 갈무리, 2013)

울리히 린스의 <위험한 언어>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벨기에 북부 도시 안트베르펜에서였다. 당시 에스페란토를 독학한 지 1년 남짓, 나는 세계의 여러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만나러 여행하는 중이었다. 안트베르펜에 있는 플랑드르 에스페란토 연맹(Flandra Esperanto-Ligo) 사무실에서 에스페란토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발견한 책이 바로 <위험한 언어>의 에스페란토 원서 였다.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에 ‘위험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책 <위험한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 에스페란토가 왜 ‘위험한’ 언어로 취급당해 왔는지 그 역사를 다루었다.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으려는 언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휴머니스트이자 의사인 자멘호프가 발표한 언어이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폴란드에서 독일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유대인이 서로 싸우고 갈등하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민족 간의 전쟁과 불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은 자기 민족끼리는 자신의 민족어를 사용하고, 다른 민족과는 평등하게 공통의 언어(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1905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자멘호프는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만난 것이 아니고, 또한 러시아인이 폴란드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났으며, “나는 어느 민족의 일원이 아니고 그저 한 인간에 지나지 않듯이, 어느 한 국가 어느 한 종교의 일원이 아니고 그저 한 인간으로 나 자신을 느낄 뿐입니다.”라고 연설했다. 모든 사람이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류인 가운데 하나로서 서로 마주하자는 생각. 이것이 에스페란토가 인류의 공존과 평등, 평화를 그 내적 사상으로 가지게 된 배경이다.

왜 에스페란토는 ‘위험한 언어’가 되었는가?

그러나 에스페란토는 탄생 직후부터 고난을 겪어야 했다.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발표하던 당시는 러시아어로 ‘포그롬’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성행하던 때였다. 따라서 유대인이었던 자멘호프가 이 언어를 발표하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멘호프의 아버지가 그의 원고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시스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언어 또는 유대인의 언어라는 이유로 에스페란토를 억압했다. 예컨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맑스주의는 노동자들이 지지하는 이념이 되었고, 조합주의는 인텔리 계층의 분석 도구로 봉사하고 있으며, 에스페란토는 그들의 상호 교류를 쉽게 해 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또한 1940년 나치 독일의 문건에서는 “에스페란토를 단순히 국제적인 소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공어 에스페란토는 에스페란토주의의 일부이며, 유대인들의 무기다.”라며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반면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에스페란토는 쁘띠-부르주아지와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들의 언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서는 에스페란토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호 이해를 위한 수단으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후 에스페란토는 부패한 부르주아 사상의 침투 또는 서유럽과의 교류를 통한 간첩 활동의 수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스탈린주의가 승리한 이후에는 러시아어를 소련의 국가 언어로 확립하려고 에스페란토를 억압했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전체주의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때에 에스페란토는 실제로는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았음에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탄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위험한 언어>는 동아시아와 식민지 조선에서도 에스페란토에 대한 탄압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일제 식민지 말기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에서 에스페란토는 위험한 언어로 간주되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수많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체포되었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 조선공산당의 이정 박헌영, 아나키스트 민족해방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자 한국에 모더니즘을 소개한 안서 김억,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 등 조선의 지식인들은 에스페란토를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모든 형무소는 에스페란토 학교가 되었다”라는 홍형의의 말에서 이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아직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에스페란토와 인류의 공통어

<위험한 언어>의 저자 울리히 린스는 이 책에서 에스페란토가 시민들의 국경을 초월한 접촉, 인간들 사이의 더 나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잠재력이 있지만, 국가는 자국의 시민들이 국제적 소통을 할 때 국가의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공통어에 대한 시도가 에스페란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억압에도 불구하고 에스페란토가 120년 넘게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스페란토의 이상주의적인 내적 사상뿐만 아니라 이 언어의 고유한 실용적 특징이 있었다. 에스페란토는 ‘예외 없는 규칙’으로 이뤄진 간단한 문법 체계로 누구나 다른 민족어에 비해 쉽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이 언어의 보호와 발전은 아카데미오(Akademio de Esperanto)라는 에스페란토 독립 기구를 통해 세계적인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이것은 그 창안자인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인류의 공통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구화가 계속되는 오늘날 점점 더 국제적 의사소통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시대였던 지난 수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한 영국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언어인 영어가 오늘날에도 국제적 소통의 수단으로 강요되고 있다. 전 세계 사람 약 95%가 영어의 비원어민인 상황에서 영어가 강요되는 상황은 과연 정당한가? 또한 사라져가고 있는 6,000여 개의 소수민족의 언어들과 함께 그 언어와 결합된 문화, 자연환경과 원주민과의 관계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소수민족의 권리와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면서 국적을 초월한 평등한 소통은 가능할까? 에스페란토 운동은 그러한 소통을 위한 세계적 노력이다. 평화로운 소통을 위한 인류의 잠재된 욕망을 생동하는 현실의 운동으로 바꾸어 나갈 때, 에스페란토는 국가 권력에 의해 찍혀진 ‘위험한’ 언어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나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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