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선택제 일자리, “정부와 삼성 노동착취 야합”...노동계 반발

정부가 주도한 ‘시간선택제’, 삼성 등 10대 기업 ‘1만 명’ 채용 확대

지난 13일, 정부의 시간제 활성화 계획을 신호탄으로 10대 대기업들이 대규모 시간선택제 노동자 채용에 나섰다.

26일 오전, 삼성동 코엑스 전시관에서는 삼성, LG, 롯데, 신한은행, 한화, CJ, 한진, 신세계, SK 등 10대 대기업이 참여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가 개최됐다. 개장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으며, 각 기업별 부스에서 구직자를 상대로 한 각종 상담이 진행됐다.


정부가 주도한 ‘시간선택제’, 삼성 등 10대 기업 ‘1만 명’ 채용 확대

이번 대기업의 채용박람회는 정부가 ‘5년간 93만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표 이후 열흘 만에 개최됐다. 정부의 시간제 활성화 계획 발표 이후, 삼성은 내년 초까지 6천 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으며, 롯데그룹 역시 내년 상반기까지 2천 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신세계 그룹은 1천 명 이상, CJ그룹은 500여 명, 한진과 LG그룹은 400여 명, 한화그룹과 GS그룹은 150명, SK그룹은 100명가량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마련한다.

박람회장에 설치된 기업별 채용 공고 부스에는, 계열사별로 사무, 개발, 콜센터 상담, 캐셔, 의류판매 등 각종 시간제 일자리 모집 공고가 나붙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하루 4~6시간의 시간제 일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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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모집 공고도 있었다.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주당 20시간의 시간제 일자리를 모집하고 있으며, 급여는 100만원 수준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한국산업인력공단, 국방과학연구소, 한전KDN(주) 등도 주당 20시간 근무에 월 급여 100만원 가량의 근무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들의 시간선택제 인력 확대를 필두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민간기업 전체에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기업에게 △임금의 1/2를 1년간 지원(월 60만원 한도) △컨설팅 비용 지원 △사회보험료 지원 △세액 공제 등 각종 혜택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공격적인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는, 박근혜 정부가 대선 전 공약으로 내걸었던 ‘2017년까지 고용룰 70% 달성’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전일제 업무를 파트타임으로 분산하는 것이어서,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고용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박람회에서 모집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들만 보더라도 대부분 단순서비스업무여서, 정부와 기업이 질 낮은 저임금 알바 일자리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나쁜 일자리’ 대거 양산되나...민주노총 “정부와 삼성, 노동착취 야합”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박람회 개최전인 오전 9시 30분, 행사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간제 일자리 거부 선언’과 더불어 시간선택제 채용 박람회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와 삼성이 시간제 확대로 노동착취 야합을 하고 있다”며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최종범 노동자의 죽음에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삼성이 또 다른 최종범 노동자를 만드는 시간제 일자리를 대거 양산하겠다고 밝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대기업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계획이 비정규직의 저임금을 고착화시키고, 간접고용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전일제 일자리를 파트타임으로 나누게 될 경우, 인력관리에 투입되는 비용이 증가해 시간제 노동자의 저임금은 필연적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시간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단시간 노동력을 공급하는 파견업의 확대로 이어져 간접고용과 중간착취가 확대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시행되는 청년고용할당제도 시간제로 채용할 가능성도 있어, 여성과 청년들이 고용률 70% 실적채우기의 희생량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26개의 공공기관의 내년 시간제 일자리 채용계획을 분석한 결과, 임금수준이 신입직원 초임의 54,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공무원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동일 직급과 호봉 전일제 공무원에 비해 급식비를 제외한 모든 임금 항목에서 50%의 금액만을 수령하고 있었다.


노동강도 강화와 무료노동 강요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몇몇 현장에서는 시간제 노동자들이 계약서와는 달리 연장근무를 강요당하며, 연장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성노동자들은 단지 용돈 벌이를 위해서가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서 일을 하기 위한 일자리를 필요로 한다”며 “삼성을 비롯한 10대 기업들은 지금 있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려 한다. 우리는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노총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는 대기업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양극화 해결에 나서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면제해 주면서 고용의 질을 악화시키는 선봉대로 나설 것을 부추기는 행사”라며 “정부는 여성과 청년 노동자에게 저임금 차별 일자리 강요를 중단하고 노동권이 존중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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