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밀양" 희망버스, 할매들과 울고 웃다

버스는 밀양을 떠났지만, 희망은 더 큰 메아리로 남아

"내는 여기서 살다 이곳에서 묻힐랍니다. 바라는 것 없습니다. 우리 조상내들이 가꾼 아름다운 이 땅에서 조상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70년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돈 필요 없습니다. 내 나이가 여든 다섯 살인데 이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단지 흙에 살고 싶은 할매들

[출처: 뉴스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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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고향 정든 땅… 푸른잔디 벼게 삼아 풀내음을 맡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나는야 흙에 살리라… 흙에 살리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한 밀양 할배와 할매들의 공연순서.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오르는 일도 쉽지 않아 보였지만, 평생 처음 입으셨을 빨간 투쟁조끼를 곱게 차려입고 새색시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셨다. ‘흙에 살고 싶다’는 할배와 할매들이 목청껏 부른 트로트 한 자락은 밀양역 광장을 가득 메운 3천여 명의 마음을 울렸다.

밀양희망버스 첫날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밀양송전탑 건설 중단 촉구’ 문화제는 축제의 장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밀양주민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참가자들 역시 연대의 소중함과 함께 만드는 희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11월 30일 전국 26개 시도에서 총 50대의 희망버스가 밀양으로 출발했다. 밀양 송전탑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경북과 밀양의 이웃이자 핵발전소가 밀집된 부산, 울산, 경남, 전남은 물론이고, 강원과 당진 등 기존 초고압 송전탑 피해지역, 대표적 전력 소비지인 서울과 경기, 그리고 심지어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까지 전국 곳곳에서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울산희망도보팀’은 밀양까지 76.5km를 태화강을 따라 도보로 참가하기도 했다.

공사재개 61일만에 처음 밟은 송전탑 공사현장

[출처: 뉴스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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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경 밀양에 도착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상동면 여수마을 122번 철탑과 상동면 도곡리 110철탑, 단장면 동화전마을 96번 철탑 현장으로 나누어 올라갔다. 경찰은 송전탑 건설 현장 주변에 50개 중대 4천여 명을 배치해 철탑 현장으로 가는 희망버스참가자들과 곳곳에서 충돌했지만,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의지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공사 재개 61일만에 밀양의 주민들과 밀양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경찰에게 막힌 길을 열고 공사현장에 올랐다. 처음 밟아본 96번, 110번, 122번 3개의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밀양 주민들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전국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산길을 마다치 않고 경찰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에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출처: 뉴스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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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침 6시부터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전날 흩어져 잠을 잤던 각 마을별로 밀양주민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했다. 총 11개 마을에서 참가자들과 주민들은 현수막도 만들고, 간담회도 가졌다. 고답마을은 주민들과 함께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준비해온 노가바와 하모니카 연주 솜씨를 뽐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시던 주민들도 한 말씀 하시겠다고 신청하신다. 아무래도 할배들보다는 할매들이 더 적극적이시다.

“전국에서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주셔서 공사 현장에도 가보고 너무 좋습니다. 80,90 된 노인들이 매일 같이 손주 뻘 경찰과 맞서고, 자식 뻘 한전 직원들에게 밟히기도 합니다. 저희들은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송전탑 만들어서 전기를 북한에다 보낸다고 했다가 서울에 보낸다고 했다가 계속 말을 바꿉니다. 벌써 8년 동안 우리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왔습니다. 봄이 되면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인데, 꼭 막아낼 수 있도록 또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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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밀양

1박 2일 밀양희망버스의 마지막은 보라마을에서 진행했다. 마을 입구의 다리 앞, 지난 2012년 1월 16일 바로 이 곳에서 이치수 어르신이 한국전력과 그들이 고용한 용역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 분신하신 장소다.

보라마을에서 참가자들은 송전탑 건설반대 투쟁의 결의를 다시금 다졌다. 11개의 마을에서 한 글자씩 완성한 ‘우리 모두는 밀양의 친구들’이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밀양주민들에게 희망버스 손수건을 묶어주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데이, 꼭 다시 온나" 결국 할매들은 또 눈물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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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에 오르는데, 두텁게 낙엽이 깔려서 바닥이 흙인지 돌인지 구분도 안 되고, 3시간 동안 길도 나지 않은 산길을 헤맸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할머니들이 양손에 지팡이를 짚으시고 힘겨운 걸음을 옮기면서도, 꼭 오늘은 송전탑 공사현장을 보겠다고 하시는데, 너무 짠하기도 하고, 없던 힘도 생기더라구요.” 희망버스 서울 참가자

“밀양에 처음 오는데,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송전탑 공사를 한다고 구덩이를 어마어마하게 파 놓았더라구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단지 눈감을 때까지 농사지으면서 살겠다는 어르신들의 소박한 소망마저 짓밟는 정권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손잡고 와줘서 고맙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니깐 너무 늦게 온 게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고, 나의 작은 발걸음이 힘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어요. 마지막에 할매들이 우실 때에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희망버스 평택 참가자


1박 2일의 희망버스 프로그램이 모두 마무리됐지만, 할매들도 참가자들도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한 마디라도 더 전하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며 그렇게 모두가 희망의 인사를 나눴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1차 희망버스는 밀양을 떠났고, 할매들은 밀양에 남았다. 하지만 희망버스와 밀양의 주민들이 함께 외쳤던 소리는 더 큰 메아리로 남았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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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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