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법과 원칙, 겨우 폭력이라니

[봉당풍경](8) 2013년 12월 22일 오전9시

일 년 전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거운동을 하던 당시, 그녀를 중심으로 재편됐던 한국의 수구 및 보수세력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보수의 프레임을 던졌다. 경제성장의 구호 대신 국민의 삶의 문제를 들고 나왔고, 민주당과 거의 흡사한 경제사회정책을 쏟아 냈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당시 내심 혹시 정말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고 드디어 변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잠깐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 쓸데없는 노파심이었다는 것을 당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1년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박근혜 정권은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권력을 동원해서 노동자들의 심장부인 민주노총을 망치와 각종 도구를 내세워 침탈했다.

12월 22일 아침 긴급한 문자를 받고 민주노총으로 향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장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십대 초반의 앳된 전경들이 민주노총이 입주해있는 경향신문사 주변의 인도와 차도 모두를 에워싸고 시민의 진입을 통제했다. 산별노조 대표자와 노조활동가 등이 경향신문사 1층에서 맨몸으로 무장한 공권력에 맞서 있었다. 정문뿐만 아니라 건물 측면으로 진입하기 위해 경찰병력 수십 명은 건물 안쪽을 향해 온몸으로 밀어붙였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모든 ‘설마’는 우리들 눈앞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13층까지 오르기 위해 경찰력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대립으로 빚어질 비극은 상상하기조차 버거웠다.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그 겨울도 일어나면 안 됐을 일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여섯 사람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 해 여름 쌍용차 노동자들이 공장 지붕에서 공권력에 두들겨 맞고 짓밟히는 동안 공장 정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어야만 했다. 그리고 4년 후 겨울, 우리는 다시 민낯을 드러낸 국가폭력과 대면하게 됐고, 또 다시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1987년 한국이 민주화된 지 26년 만에 대통령의 ‘원칙’으로 우리 사회는 역사의 후퇴를 감당해야 했다. 독일의 법학자인 뢰벤슈타인(Loewenstein)은 헌법의 실천적 측면을 중시하며 헌법을 규범적, 명목적, 가식적 헌법으로 분류했다. 규범적 헌법은 헌법과 헌법적 현실이 서로 일치되는 것을 의미하고, 명목적 헌법은 양자 간에 어느 정도의 어긋남이 있는 것으로 차이를 두었다. 그러나 가식적 헌법은 오직 집권자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헌법을 의미한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규범적 헌법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채 명목적 헌법과 가식적 헌법 아래서 오랫동안 국민은 고통을 겪어 왔다.

헌법상의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의 안전보장, 사회질서, 공공복리 등의 명분으로 제한받고 침탈당해왔다(한승헌. “권력과 필화”. 245쪽 이하 참고). 지난 22일 국가폭력으로 민주노총을 침탈한 것은 가식적 헌법의 전형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집권자만을 위한 ‘법과 원칙’으로 공권력은 노동자와 시민을 폭력으로 짓밟았다. 국가폭력은 대통령의 의지로 정당화되고, 집권세력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은 불법화되고 국가폭력에 희생돼도 무방한 것처럼 논리는 구조화되어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의 생명력은 이번 공권력의 민주노총 침탈을 계기로 그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

정권은 한 번의 대화나 설득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들의 말을 믿고 따르라는 공허한 천명만을 지속해왔다. 정부가 민영화가 아니라는데 철도노조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불법파업을 강행했고, 노동자들이 정치에 관여했다는 괘씸죄까지 걸었다. 정권이 파업노동자를 낙인찍는 순간 파업노동자들은 더 이상 국민의 대접도 시민의 대접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이들은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집단으로 변질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 파업을 통해 철도노동자들이 챙길 수 있는 이권이 실재하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파업직후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다리겠다던 철도공사 사장은 7,884명의 조합원을 직위해제했고, 184명을 고소고발했으며 25명은 수배상태이고, 더욱이 77억 이상 손해배상까지 예상된다. 즉 철도노조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조합원의 이권보다는 사회적 이권을 위해 파업을 강행한 측면이 강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심각한 계급적 모순에도 정당성을 얻는 중요한 도구는 바로 민주주의 정치체제 덕분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포괄하는 노동권을 보장한다. 파업을 한다고 국가가 즉시 개입해서 자본을 편을 들거나 노동자들을 범법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이제까지 정권들은 이와 같은 역할을 국가폭력을 앞세워 아무렇지 않게 자행해왔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그 폭력에 항복하거나 노동자계급이길 거부하지 않았다. 물론 신자유주의 체제 전환이후 노동의 후퇴는 염려스러울 정도로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의 폭정이 심화되는 순간에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철도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걸고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국가의 거짓선동이 도를 넘는 비상식에서 기인되었기 때문이다.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박근혜는 정권 인수위 시기부터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공약 파기를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1단계에서는 직접 나서지 않고 행정부 및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국가재정을 내세워 공약이행의 비합리성을 적극 홍보했다. 대표적인 예로 기초연금의 경우 사회적 합의나 대표성이 인정되지 않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출범시켜 공약파기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대선시기 공약은 비합리적이었고, 이제 그 비합리성을 합리적인 정책으로 구체화한다는 논리로 복지의 보편주의를 격파했다. 자기부정을 ‘합리성’이라는 논리로 정당화시켰다.

2단계에서는 결코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전 산업 영역을 ‘민영화’가 아닌 ‘자회사’등의 이름으로 추진하면서 민영화가 아니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 주장에는 민영화가 될 수 없는 내용 자체가 빠진 채로 ‘짐의 말이 국가이고 법이다’는 식의 강요만이 존재했다. 그러면서 가스, 철도, 의료,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의 민영화를 스스럼없이 추진했다. 다행히 가스법안은 지난 6월부터 가스노조와 공공운수노조의 투쟁의 결과 문제가 되는 법안 문구가 삭제된 채 통과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철도와 의료에서 정권은 결코 물러섬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철도민영화는 정부정책의 관철과 더불어 노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본보기로 삼고 있다. 약속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그 분의 약속은 결국 노동자와 서민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보수세력과 갖은 자들을 향해 했던 맹세였던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구보수세력이 보기에 다소 헷갈리게 박근혜는 공약을 걸었지만, 대통령이 된다면 박근혜 지지 세력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에 결코 반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법과 원칙을 그들의 유일한 수단인 국가폭력으로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폭력 앞에서 우리가 항복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또한 김기춘은 과거의 화려했던 공안정국 주도 실력을 가감 없이 더욱더 발휘하면서 우리를 지속적으로 반국가 세력 혹은 이적세력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의 눈엔 무능했을 MB가 촛불정국도 버텼고, 여기에 힘입어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동자 탄압까지 벌여놓고 대통령 임기를 채웠으니, 김기춘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다면 노동자 시민들은 정권을 결코 위협하지 못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와 김기춘이 보지 않고 있는 중요한 실체가 우리에게 존재한다. 강정에서, 밀양에서, 대한문에서 그 외 너무나 많은 곳에서 우리들의 투쟁은 계속되어 왔다. 국가폭력이 그토록 우리를 위협해오고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지만, 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지난 22일 밤9시 민주노총주변을 에워쌌던 노동자와 시민들의 웃음소리를 박근혜 정권은 제대로 들었어야 했다. 공권력의 침탈 덕분에(?) 국민들의 기억에서 다소 희미해졌던 민주노총은 부활했다. 침탈이후 창문을 통해 펄럭이던 민주노총 깃발을 보며 사람들이 다짐했던 생각들, 14층을 지키다 내려왔던 동지들을 향해 넘치게 터져 나왔던 박수소리,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국가 폭력 따위로 위축될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승리의 소리였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소리였다. 국가폭력의 민주노총 침탈은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에겐 치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 보다 더욱 강해진 노동자들이 역사적 현장에 설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 서기를 스스로 자처하는 노동자들이 매일 늘고 있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머리와 가슴에 기억하게 되었다.

박근혜의 법과 원칙을 지키는 수단은 겨우 폭력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원칙을 지켜가는 수단은 독재에 저항하며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논쟁과 합의 그리고 권력자들을 향한 투쟁이다. 그 길은 피곤하기도 하고 희생을 요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길 위에 누군가가 있었고, 그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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