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새책] 스콧 프리켈, 켈리 무어 저, 김동광, 김명진 외 1명 역, 갈무리, 2013.11.30

'상업적 뒤얽힘'에 관하여

사실 이 책의 논의들은 나에게는 약간의 충격을 가져왔다. 지식-권력이라는 푸코가 만들어낸 단어는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중에서 이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같은 문제가 많은 '인간과학'일 뿐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이데올로기나 권력,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무관한 과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과학'이나 '사회과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이 책의 저자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전공하고 있는 수학이라는 학문은 어떨까? 그동안 나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대상과 무관한 학문이고, 순수하게 추상적 관념을 탐구하는 정신의 능력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데올로기나 권력이나 사회적 관계로부터 독립된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1부를 읽고 나서 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상업적 뒤얽힘'이 수학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신자유주의에 의해 대학이 상업화하고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웬-스미스라는 학자는 라투르라는 사람의 개념을 빌려 오늘날 대학의 상업화는 '접목'과 '번역'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둘 모두 학문의 잡종화를 촉진하고 있다.

먼저 '접목'은 상업적 규칙과 학문적 규칙이 뒤섞임을, 즉 소유권에 기반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특허'에 의한 상업적 규칙과 이와 정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공유'에 기반한 '논문 출간'에 의한 학문적 규칙의 뒤섞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뒤섞임은 상업적 규칙의 절대적 우세 속에서 진행된다. 오웬-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특허와 논문 출간은 당대의 연구 노력에서 나온 결과를 번갈아 인준하고 확산시키는 제도를 대표한다. 출간과 특허 모두 성취의 표식이자 정보 확산의 수단이다...논문 출간은 자신의 발견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통제력을 공식적으로 해제하는 것이다...그와 대조적으로, 특허는 그 발명자가 법적으로 소유하는 지식의 "구획"을 확정한다는 의미에서 울타리이다. 배척가능성과 전유가능성이 중심이며 그 다양한 함의는 대학 상업화에 수반된 격렬한 비난을 낳았다."(pp.89~90)

이렇게 '접목'이 대학 내부에서의 변화라면 '번역'은 대학 내/외부의 행위자들의 관계의 변화를 통해 행위자 자신이 변화하고 또한 자신을 전체적인 연결망 속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나는 점증하는 대학 연구 상업화가 기존 대학 체계 안에서 변화하는 위계질서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동시에 대학의 지위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유형의 행위자와 배열을 구성하는 일련의 확장과 번역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들에 대해 논의하겠다."(p.86)

이러한 '접목'이 대학 내에서 위계질서, 혹은 계층질서를 변화시킨다면, '번역'은 연결망의 생성을 통해 수평적 '관계'속에서 행위자의 '의미'와 '특성'을 만들어간다. 상업화에 의해 진행되는 '번역'은 다양한 학문들 간의 연결을 통해 융합적 학문을 만들어내고 행위자들 사이에 협동을 촉진한다.

"...다학제적, 초분과적 특성이 강화되는 연구 생태계에서 대학들은 협동을 위한 노력을 지탱해주는 닻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p.100)

내가 전공하는 수학의 경우를 보면 '접목'에 의한 '상업적 규칙'의 도입은 '특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연구비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물리학, 화학, 경제학, 생물학 등의 '학문간 번역'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대학 외부의 금융 쪽과도 연결망이 잘 구축되어 있다. 이렇게 수학조차도 '상업적 뒤얽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 권력, 다중

과학은 객관적인가? 역설적으로 과학은 '객관성'을 지향하고 또한 일반적인 이미지 상으로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에게 이용되어 왔다. 브라이언 마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모순을 보게 됩니다. 객관적 지식 창출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인 과학이 실제로는 주로 기득권층에게 유용한 지식을 생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모순이 그것입니다... 힘 센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과학 연구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과학이 객관적 지식의 원천으로서 갖는 평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과학이 지닌 객관성의 이미지가 바로 그 객관성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은 과학의 중심 모순중 하나입니다."(pp.315~316)

그렇다면 이렇게 권력과 자본에 의해 전유되지 않는, 다중의 과학, 다중이 전유하는 과학은 가능한가? 브라이언 마틴은 4가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다중에 봉사하는’ 기술관료 엘리트에 의한 과학 2)시민들로부터의 “감독과 압력”에 따라 작동되는 과학 3)다중이 과학적 지식생산의 주체가 되는 과학 4)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극복된 이후에 나타나는 과학이 그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듯이 이러한 기술 관료가 기득권층이 되어 민중에게 봉사하기 보다는 민중 위에 군림할 가능성이 높고, 두 번째 대안은 이러한 시민들에 의해 구성된 ‘압력단체’ 사이의 권력의 차이와 불균형에 의해 ‘제도적으로 편향된 과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세 번째 대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실현되어야 하고, 오늘날 ‘오픈 소스 운동’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학적 지식도 사적 소유와 단일한 통제로 방해받고 있는 광범위한 집단적 네트워크들 속에서 생산된다. 결국 소통의 생산적 영역은 혁신이 언제난 필연적으로 공동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명확히 보여준다....우리는 오직 네트워크들 속에서 서로 생산하고 혁신한다. 만약 천재적인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다중의 천재성이다.”(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다중>(세종서적, 2008),p.402)

과학자 개개인의 지적인 능력이나 과학적 지식은 평범한 개개인의 지적능력이나 과학적 지식보다 훌륭할지 모르지만, 다중은 소통을 통해 혁신함으로써 더 뛰어난 지성을 구축할 수 있고 더 뛰어난 지식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떼 지성’이다.

소통하라!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라! 이것이 ‘과학적 코뮤니즘’의 정언명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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