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3년, ‘노조설립 자유’는 커녕 ‘악용’만 빈번

현장은 ‘극단의 갈등’, 노동권 침해 빈번...법제도 개선 요구 확산

복수노조 시행 3년. 애초 ‘노조설립의 자유’라는 취지로 도입된 복수노조는 사측의 개입과 악용으로 오히려 노조 간 차별만을 부추기고 있다. 복수노조 도입 전부터 준비해 왔던 자본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복수노조의 취지를 무력화시켰고, 새로 설립된 ‘친자본 노조’는 민주노조 세력을 흡수해 가고 있다.

복수노조가 도입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회사는 친 자본 노조를 설립한 뒤 기존 노조와의 차별을 극대화 해 조합원 이탈을 꾀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노조로 흩어진 조합원들은 극단적인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금속노조가 주최한 ‘복수노조 악용 노조탄압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대표적인 ‘복수노조 악용 사업장’ 노동자들이 참석해 현장 실태를 고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법률가들은 복수노조 악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인 개선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복수노조 3년, ‘노조설립 자유’는 커녕 ‘악용’만 빈번

올해 1월 기준, 금속노조 사업장 중 복수노조가 설립된 곳은 총 49군데다. 이 중 금속노조가 다수지위에 있는 사업장은 7곳뿐이며, 금속노조가 소수지위에 있는 사업장은 39곳에 달한다.

특히 회사가 기업노조 설립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거나, 복수노조를 악용해 노조 간 차별을 이어가고 있는 사업장은 35곳이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현재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 중 약 14%정도가 복수노조에 따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노조 악용 사업장들은 공통적으로 개별교섭을 통해 노조간 차별을 극대화하거나, 승진이나 인사고과, 잔업특근, 업무배치 등에서 조합원 간 차별을 두고 있다. 지난 2012년, 직장폐쇄와 함께 복수노조가 설립된 만도(주)에서는 개별교섭을 통한 복수노조 차별이 논란이 됐다.

신성목 만도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회사는 직장폐쇄 중 금속노조 탈퇴를 하지 않을 경우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직장폐쇄 기간에 복수노조가 설립되면서,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이탈도 가속화 됐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후 교섭 과정에서, 중노위와 노동부는 만도지부에 교섭권이 있다고 밝혔지만, 회사는 개별교섭을 통보했다”며 “개별교섭에서 만도노조(기업노조)와의 교섭은 3일 만에 잠정합의를 이끌어냈고, 만도지부와는 뒤늦게 교섭을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만도노조에만 750만원의 격려금을 지급했고, 지난해 교섭에서도 2년 연속 임금위임감사 특별격려금 320만원을 만도노조에만 지급했다.

발레오만도 현장에는 4개의 복수노조가 존재한다. 친 기업노조의 전신은 발레오전장노조이며, 현재는 전장노조 조합원들 대다수가 발레오경주노조로 옮겨갔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와 금속노조에서 빠져나온 민주발레오노조도 존재한다. 회사는 친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간에 조합활동을 비롯한 잔업특근, 업무배치 등 모든 부분에서 차별을 둔다. 금속노조의 경우, 전임자도 인정되지 않고, 조합 창립기념일이나 단체교섭 권한도 인정받지 못한다.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 비대위원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잔업, 특근에서 배제시키며 성과급도 미지급했다. 굴욕을 주기 위해 업무 배치를 하지 않아, 아침에 보면 마치 인력시장 같다”며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풀을 뽑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페인트칠 같은 잡일을 한다. 나이 50이 넘은 노동자를 복도에 두 달 씩 그냥 앉혀놓기도 한다. 화장실도 허락을 맡고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성기업의 경우도 과반수노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복수노조간의 갈등이 치열하다. 홍종인 유성기업 지회장은 “어용노조는 설립 이후, 손배가압류와 징계 문제로 금속노조 소속의 조합원을 회유, 협박 하며 세력을 확장했다”며 “2011년 금속노조가 과반수노조가 됐을 때 회사는 창조컨설팅의 문건대로 어용노조와는 개별교섭으로 빠르게 교섭을 진행하고, 금속노조와는 교섭을 지연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2011년 임금교섭이 60차례 이상 진행됐는데도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며 “2012년 임단협 시기에는, 회사가 관리직을 어용노조로 가입시켜 대표교섭노조로 만들고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았다”고 밝혔다. 이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해 말, 다시 과반수노조가 됐고 올 1월 1일 회사 측에 교섭을 요구한 상태다.

현장은 ‘극단의 갈등’, 노동권 침해 빈번...법제도 개선 요구 확산

복수노조를 악용해 민주노조를 약화시킨 사측은, 막바지 작업으로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민주노조의 힘이 약해진 만큼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한진중공업이나 보워터코리아, 대한솔루션, 두산모트롤 등의 사업장에서는 기업노조와 회사가 단협을 통해 근로조건을 크게 후퇴시켰다.

KEC의 경우 곧바로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 등 인력감축이 진행됐다. 보쉬전장은 90%이상의 물량이 외주화됐고, 발레오만도도 외주화를 진행하며 노동자들을 전환배치 시키기도 한다.

사측이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사례가 확산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이뤄져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주영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2009년 복수노조 관련 노조법 개정을 추진할 당시, 노동3권 침해에 대한 규제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는 사실상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단결침해행위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부재는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도입된 이후 현행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노동조합 간 차별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며 “사용자가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방패삼아 사실상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고 교섭을 지연, 해태하더라도 현행 부당노동행위 제도와 공정대표 의무 위반 시정제도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박주영 노무사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개선을 위한 첫 단추로 부당노동행위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노무사는 “‘단결침해행위’란 ‘헌법상 노동3권을 제약 및 방해하는 행위로서 사용자가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개념규정을 명시하고, 각 호에 기존과 같이 구체적인 행위 유형을 열거, 예시하는 규정형식을 취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노동조합의 자주성 저해요건의 구체화 △부당노동행위의 의사와 사용자의 입증책임 전환 △단결침해행위의 구체유형으로서 노동조합간 차별의 명문화 △인사권 남용과 집단적 차별 비교방식 등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간 차별 일반에 따른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규율하기 위한 법정책적 보완도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헌법적 노동3권과 평등권에 기초한 사용자 의무의 인정도 시급한 상황이다. 박 노무사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하에서도 소수노조의 노동조합으로서의 권한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며 “또한 노동조합 간의 획일적 균일화나 하향평준화는 또 다른 차별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향평준화 금지원칙을 명문화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태그

복수노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