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의해 강탈당한 ‘공정무역’

[주례토론회] 공정무역, 무엇이 공정한가

[토론문-편집자주]
‘공정무역’이 전하는 ‘착한 초콜렛’

지난 2월 13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서울시 성북구는 ‘착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판매행사를 진행했다. 여기서 판매되는 초콜렛은 ‘공정무역’ 국제인증을 받은 유기농 초콜렛이다. 이 운동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지자체가 직접 ‘공정무역’ 운동의 주체로 나선 건 매우 이례적 일이다. 성북구는 이미 작년에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공정무역 선도구, 성북’ 선포했으며, 지자체 최초로 공정무역 조례를 제정했다. 공정무역의 판매 확대, 공정무역거리 조성 등 다양한 행사로 윤리적 소비문화 확산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겐 ‘공정무역’의 담론이 낯설기 때문에 이런 공정무역 제품의 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기도 하다. 개인에 따라서 그냥 좋은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수도 있고, 제3세계 가난한 원료생산자들의 자립을 위해 기부하는 것 일수도 있다. 혹은 스타벅스처럼 ‘공정무역’에 진출한 대기업들의 윤리적 소비 마케팅 전략에 동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나라 ‘공정무역’ 시장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130억 원 정도 밖에 되지 않기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공정무역’ 운동은 2007년 한국공정무역연합이 결성되면서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가게’, ‘여성환경연대’, ‘두레생활협동조합’과 업무 협의를 맺었고 그 연계망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최근 협동조합 담론의 부상과 함께 점차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판매망이 대중화되진 못했고 몇몇 시민단체들의 협조체제 속에서 소규모 정도로 운영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자체가 적극적 주체로 나선 위의 사례는 이 운동의 전망을 앞으로 어떻게 조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대안무역운동에서 윤리적 소비자 운동까지 다양한 스펙트럼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정무역’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공정무역’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90년대 중후반의 세계적 정세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의 전면화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짚어보고, 이 운동의 역사적 교훈을 찾고자 한다.

‘공정무역’ 운동의 역사와 변모

‘공정무역’ 운동은 1946년 메노파 기독교의 긴급구호 단체인 MCC(Menonite Central Committee)에서 푸에트리코의 저소득층 여성들이 만든 재봉 공예품을 수입한 것이 모티브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이재민들이 만든 공예품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북미의 첫 공정무역 기구인 ‘텐 사우전드 빌리지’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게 구호활동으로 시작된 ‘공정무역’ 운동은 1968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원조가 아닌 무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저개발 국가의 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연대의 무역’으로서 사회운동 성격이 강화된다. 대안무역운동으로 인식되었고 이들은 정치적 견해를 분명히 했다. 가령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좌파정권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했는데, 이에 맞서 ‘이퀄익스체인지(Equal Exchange)’라는 운동 단체는 니카라과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고품질의 커피와 가정용품을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수입했다. 이처럼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들과 의식적으로 연대하고 불공정한 국제 무역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후 90년대를 지나면서 ‘공정무역’ 운동은 커다란 전환을 겪는다. 공정무역에 대한 인증제도가 도입되고 주류질서로 진입하게 된다. ‘인증제도’란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제품에 대해서 공정무역을 중개하는 단체가 ‘공정무역’ 상품임을 인증하는 제도이다. 마치 KS마크를 붙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가령 원료생산자들의 경우 판매수익의 어느 정도를 생산자 공동체 운영을 위한 조합기금으로 낸다든지, 유기농 관리기준을 준수한다든지, 대규모 플랜테이션 사업주가 아닌 소농이여야 한다든지 등등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원료를 구매하여 가공제품을 만든 업체들에게 공정무역 인증마크를 붙여준다. 인증제도의 도입 후 새로 생겨난 현상은 대기업들에게 ‘공정무역’ 인증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고 인증을 받으라는 캠페인이었다. 대표적 사례로 세계적 커피전문업체인 스타벅스가 있다. 물론 스타벅스 커피상품의 전체가 ‘공정무역’ 상품은 아니다. 실제 매출에서 차지하는 매우 낮다.

이것은 기존의 불매운동과 달리 “이렇게 행동한다면 ‘공정무역’으로 인정해주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에 기업을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운동 내부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대기업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기준만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건 ‘공정무역’ 운동이 가졌던 정신적 출발점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쪽 갈등은 2011년에도 크게 부딪쳤다. ‘공정무역’ 인증이 대기업들에게도 마케팅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사업적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입장 쪽에선 기준 완화를 통해 인증 취득을 수월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공정무역’ 단체인 ‘Fair Trade USA’는 기존의 소농협동조합 자격기준을 변경하여, 대지주가 소유한 플랜테이션 상품에도 ‘공정무역’ 인증을 부여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Fair Trade USA’는 세계 ‘공정무역’ 인증기구들의 네트워크 조직인 ‘페어트레이드 인터내셔널(Fairtrade International)’과 결별하게 된다.

이처럼 ‘공정무역’ 운동의 역사를 크게 3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강하든 약하든 윤리적 소비와 정신적 유대감에 호소하는 점은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성에 기초한 운동의 성격에서 중개 및 인증기관에 의한 절대적 규정력이 기초가 되는 운동으로 변모했다. 그러한 객관적 인증기관의 등장으로 인해 교역량에 있어서 한결 진전을 이룬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격렬한 내부 갈등에서 보듯, 현실의 권력관계에 조응하는 인증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위기관리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공정무역’ 인증제도와 ‘공정가격’을 둘러싼 갈등

‘공정무역’의 핵심은 ‘공정가격’이라 할 수 있다. 불합리한 무역거래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 정신에 비춰볼 때 그러하다. 그런데 이 ‘공정가격’은 시장가격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시장가격을 기초로 하여 여기에 ‘윤리적 소비’를 끌어낼 수 있는 수준의 약간의 가산가격이 붙는다. 이 가산가격은 생산자의 노력과 수준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1세계 존재하는 잠재적인 ‘윤리적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윤리적 소비’를 자극하는 마케팅이 절대적이다. 그래야 시장가격과의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정무역’ 제품의 광고 문구에선 “전 세계 빈곤과 싸우는 당신의 선택”과 같이 감수성을 자극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만약 시장가격이 매우 낮게 설정되면, 일정한 가산가격이 붙는다 해도 생산자들에게는 턱없이 낮은 수준일 수밖에 없다. 90년대 베트남 등지에서 커피원두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2000년대부터 커피원두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3세계 커피원두 생산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가령 2002년엔 콜롬비아산 세척된 아라비카 원두 1파운드의 국제가격이 65.26센트에 불과했다. 이것으론 농민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실제 2002년 공정무역 협동조합인 멕시코의 UCIRI에서는 150 여명의 농부들이 생계를 찾아 떠난 사례도 있다.

이후 이런 커피원두 가격이 지난 십 여 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는데, 앞서 언급한 콜롬비아산 세척된 아라비카 원두 1파운드의 국제가격이 2011년엔 283.82센트로 4배 이상 상승했다. 이것은 ‘공정무역’이 보장하는 190센트를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서, ‘공정무역’ 인증에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업 입장에선 시장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가격을 지불함으로서 ‘공정무역’ 인증제품을 소비하는 계층에 쉽게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원두가격이 ‘공정무역’의 보장가격 밑으로 다시 크게 하락하게 되면, 이는 참여 기업들의 이탈을 불러오게 된다. 즉 시장가격의 변동에 ‘공정무역’이 종속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장가격을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별도의 국제적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공정무역’의 체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장가격이 폭락하면 이보다 약간 더 높은 ‘공정가격’이라 하더라도 절대액수가 낮기 때문에 생산자들의 이탈이 발생한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공정무역’ 보장가격보다 높아지면 ‘공정무역’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판매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실제 커피 부문에서 ‘공정무역’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엔 ‘공정무역’ 커피 판매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생산자들도 생산량의 20%만을 ‘공정무역’으로 판매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공정무역’의 인증제도가 가지고 있는 취약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흔히 상상하는 바와 달리 인증단체가 판매를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증단체는 자격을 부여해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무역’ 판매망에서 계약되지 않는 물건들은 일반시장을 통해 판매된다.

이런 취약성이 드러나는 이유는 ‘윤리적 소비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와 유기농과 같은 웰빙 품목과 특별한 기후와 토질에서 생산되는 특용작물에 집중된 생산조건 때문이다. 실제 ‘공정무역’제품의 대부분이 커피원두라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정 품종에 제한되어 있다. 실제 그 비중도 전 세계 커피교역량의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구조가 이미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 ‘Fair Trade USA’가 ‘Fairtrade International’과 결별하고 대규모 집단 농산품까지도 ‘공정무역’ 인증체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렇게 인증체계를 확장시키려는 정책은 품목을 다양화시켜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공정무역’ 핸드폰이다. 핸드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몇 가지 특수 광물이 있는데, 이 광물 생산자들로 하여금 인증단체가 제시한 기준을 준수하면 ‘공정무역’ 제품임을 인증해준다. 그리고 이를 원료로 생산한 핸드폰에 그 인증마크를 붙여주는 것이다.

이런 인증제도의 확대와 변화는 ‘공정무역’ 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약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윤리적 소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구조이기에 소비자들에게 품질을 보증할 객관적 제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무역’ 인증단체들은 현지 생산자들로 하여금 우수한 품질 유지와 윤리적 생산과정을 준수하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이런 감독이 현지 행정력과 결합하여 상시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면 몇 번의 순회방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주류제도로의 진입과 확대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 과거 대안무역운동으로서 성격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수익 형성 관점과 위기관리정책에 조응하는 ‘공정무역’

주류제도로의 진입과 확대가 반드시 부정할 만한 일은 아니다. 운동이 대안으로 발전한다는 건, 다른 주류질서를 만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권력구조를 개혁하는 정치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빠져 있다. 가령 인증제도의 확장을 주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세계화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결국 공정무역 네트워크는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출현은 피할 수 없는 것도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세계 시장에서 경쟁 규범들이 개별 정부들을 하여금 자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만, 이런 상황은 대부분 국가들이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정치, 경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정무역’을 수익의 형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입장의 사람들은 거시경제적 권력관계 불평등에 도전하기 보다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대응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국가 간의 정치경제 역학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한 힘의 구도는 ‘공정무역’ 네트워크에 편입되지 못한 생산자들 뿐 아니라 편입되어 있는 생산들의 삶 또한 위협한다. ‘공정무역’ 제품으로 가장 많은 교역량을 차지하고 있는 커피 산업의 위기가 어떻게 찾아왔는가를 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말 커피가격의 심각한 하락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정부와 국제 금융 기구에 의해 촉발된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초래되었다. ICA(국제커피연합)의 가격 유지 체계가 무너지고, 커피를 생산하던 가난한 국가들에 부채 위기가 왔다. 그리고 세계은행과 IMF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들 국가들에게 상품 수출을 확대하도록 했다. 부채 상환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야 했던 베트남 등의 국가들은 커피와 같은 상품들의 수출 확대로 응답하였다. 그러나 수출확대는 전 지구적 공급 과잉을 초래하여 이들 상품의 가격은 폭락했다. 그 결과 파산, 대량 이민, 전 세계의 소규모 커피 농가의 기근이 발생했다. 이렇듯, 국가 간의 정치경제 역학이 현재 전통적 시장의 커피 가격과 ‘공정무역’ 시장의 커피 가격의 격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역설적으로 커피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범이 되는 이 체계에 더 많은 커피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Gavin Fridell, )

그런데 한편에서 보면, 거시경제적 권력 관계로부터 상대적이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권력 관계에 조응하는 형태로 작동되기도 한다. 가령 ‘공정무역’은 유엔에 의한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과 정책적으로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선진국들의 개도국 시장 진출 및 개입 계획에 ‘공정무역’ 특전을 포함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외국인 직접투자와 각종 국제개발협력 프로그램이 ‘공정무역’을 매개로 작동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치 지원’, ‘기업가적 정신 훈련’, ‘민간파트너 협약’, ‘마약류 재배 퇴치 명목’ 등등에 ‘공정무역’ 개념이 활용된다.

이건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했었던 원조방식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는데, 실제 선진국들의 ‘국제개발처’에서 자금을 받은 활동가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여기에 ‘공정무역’ 인증기관도 관계된다. 실제 ‘공정무역’ 인증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영국에선 인증기관들이 작년에 우리나라 돈으로 30억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나마 이것도 경제위기 여파로 예전과 달리 줄어든 것이다. 이런 개발지원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정무역’ 운동진영에서 불평등한 국제관계의 집행자라 지탄했던 세계은행으로부터도 프로젝트 지원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시민단체가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 일이 일상화된 오늘날, 이런 비판에 대해서 현실적 곤란함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비단 돈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는데 있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개발원조 프로그램이 항상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성격과 결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가령 좌파 정부가 집권한 지역에선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축소 또는 제외된다. 아니면 아예 이들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거나 중립적 세력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기도 한다. 일종의 ‘쇼윈도우’(보여주기) 전략인 셈이다. 이처럼 권력의 상징인 돈은 그 출처에 따라 항상 권력관계를 재생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무역’에서도 지원금의 자체의 문제보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정치적 성격이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공정무역’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

스타벅스의 유기농 ‘공정무역’ 커피이야기 마저 식상해진 오늘날, ‘공정무역’ 운동은 급격하게 주류질서로 편입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각국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인 금융기구들 까지도 ‘공정무역’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공정무역’의 역사에서 그 정신을 되돌아보면, 불평등한 무역구조를 개혁하고 대안적 무역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야무진 꿈이 있었다. 비록 그것의 실행방법이 ‘윤리적 소비’에 의존하는 것이긴 했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지를 돌이켜 보자. 그건 무역거래에서 도처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한 권력관계를 파헤치고 공정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투쟁일 것이다. 가령 얼마 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캄보디아 노동자 학살진압 사태를 보자. (참조: 캄보디아 의류협회, 노동자 살인진압 결정적 역할, 한국 기업도 참여) 한 달에 10만원조차 못 받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의류제품의 월간 총 판매가격은 수 천 만원에 달한다. 10만원이 잘못되었든, 수 천 만원이 잘못되었든, ‘공정무역’ 운동이 지적했던 불공정한 무역관계는 이처럼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곳에서 더욱 창궐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공정무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현지에서 벌어지는 계절성 임노동자의 증가와 기업형 자영농의 증가는 우리가 모르는 착취의 문제들이 잠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수익 형성의 관점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부될수록 이런 노동착취의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려져 있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한편에선 아직 우리나라에선 이런 선진국들이 겪었던 갈등과 문제점들을 논하기에 역사가 매우 짧다고 지적할 수 있다. ‘공정무역’ 인증제도를 수행하는 단체조차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게 있어 ‘공정무역’ 운동이 주는 교훈을 짚어보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 발전에 근거한 자생적 흐름이 아닌 외부로부터 삽입된 형태로 운동이 나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지적한 바처럼 정치적 권력관계에 의해 잠식당할 우려가 크다.

일례로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의 고장인 ‘치아파스’ 산 ‘공정무역’ 커피가 우리나라 홈쇼핑에서 팔리고 있는 현상을 볼 때, 이것이 과연 사파티스타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건지 아니면 ‘익투스 선교회’의 종교적 선교활동의 한 가지 형태인지 헷갈린다. 실제 ‘익투스 선교회’는 중남미에서 기독교 포교활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종교단체이다. 물론 이들의 종교활동이 반드시 사파티스타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건 ‘공정무역’ 운동이 의도했던 애초의 의의는 탈각된 채, 그 실용성에 잠식당한 현실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지 되묻는 것 일거다.

만약 우리가 ‘공정무역’의 급진적 의미를 되살린다면, 그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적 연대를 통해 자본간 경쟁질서에서 벗어나 생산현장을 민주화시키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다소 공허하게 들릴지라도, 신자유주의에 의해 강탈당한 ‘공정무역’이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다시 반대편으로 막대 구부리기를 하는 것이 더 절실한 전략일 수 있다. [토론문 끝]

* 토론문 정리 :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


아래는 발제문 전문이다.


공정무역,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오승은(서울대 인류학과)


이제 한국에서도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다. 출시된 제품마다 제조사와 속 내용물은 달라도 주요 원료가 수입될 때 공정무역의 기준들이 준수되었다면 모두 공정무역 제품으로 불린다. 포장지에 새겨진 공인 로고가 해당 제품이 진짜 공정무역 제품임을 보증한다.

이처럼 공정무역은 ‘공정무역 로고가 박힌 제품’이라는 자명한 물건의 모습을 하고서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 완성 과정이 우리 눈앞에서 직접 펼쳐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공정무역은 아주 막연한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 진영이 직접 공정무역에 대한 설명을 내놓고는 있지만 그 설명 역시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과 관념들만을 나열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무역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란 그 진입점부터가 묘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질문 속에 답이 있다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정무역 진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 추상과 관념들부터 파고드는 것이다.


0. 경제적 관점의 부재

공정무역 진영에게 지금의 명성을 가져다 준 것은 세계 무역구조가 제3세계 빈곤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아니라 그 구조를 직접 바꾸겠다고 나선 행동력이었다. 이들은 공정무역이라는 대안 무역 모델을 실험하고 그 적용 사례를 늘려나가는 것으로 전체 무역질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작은 대안의 꽃들을 피워 거대한 현실을 뒤덮겠다는 계획이다.

이 아름다운 계획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계획의 구성 요소들이 세계 무역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본래의 목표를 제대로 가리키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공정무역 진영이 스스로 공정무역을 설명하는 말과 글들을 통해 그들의 계획이 가리키는 방향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세계공정무역기구(WFTO)가 발표한 공정무역의 10가지 원칙]

- 경제적으로 소외된 생산자들을 위한 기회 제공
- 투명성과 책무성
- 공정한 무역 관행
- 공정한 가격 지불
- 아동노동과 강제노동 금지
- 차별 철폐, 성 평등, 결사 자유에 대한 기여
-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
- 역량강화 지원
- 공정무역 홍보
- 환경 존중

그런데 공정무역 진영은 자신들의 계획을 안내하는 길고 짧은 문건들에서 노동과 가격, 발전 등의 경제적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관한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은 제시하길 회피해 왔다. 즉 경제와 관련해 표층의 이런저런 요소들을 앞장서 바꿔놓으면서도 그렇게 하는 이유를 하나의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하지는 않는 것이다.

공정무역의 이러한 ‘관점’ 문제는 그동안 공정무역을 둘러싼 논의들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아 왔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커피나 바나나 생산의 현장들이 일반적인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자들로부터 멀리 위치하는 현실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무역을 의심하고 검토할 결정적 계기들은 대개 멀리에 있음을 말한다. 많은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그 간극의 배후에는 물리적 거리만이 아닌 식민주의의 역사와 그 역사가 만들어낸 유럽 중심의 서사와 지식들이 자리한다. 우리가 공정무역을 개도국 경제와 맺는 새로운 관계의 대안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동안 개도국 경제를 이해하는 데 관습적으로 동원해 온 주관적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위의 문제의식에 따라 이 글은 경제적 관점, 즉 물질적 차원에 대한 관점을 살려 기존에 공정무역 진영이 만들고 유포해 온 정의(justice) 담론으로서의 ‘공정무역 담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을 내놓고, 궁극적으로는 공정무역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목표를 둔다. 비록 인식적 차원에 대한 논의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일정한 예비 논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다음의 전제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첫째는 공정무역이 오직 거시경제적 모델로서만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이 가정은 세계 무역구조를 시정하고 개도국 빈곤을 해소하겠다는 공정무역의 공식 목표이자 약속에 근거한다. 저 표현들에서 우리는 공정무역이 호명하는 ‘생산자’라는 이름이 근근이 농사를 지으며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는 등의 구체적 인간이 아니라, 국제무역과 관련해 대부분의 개도국들이 처해 있는 빈곤의 현실을 두루 지칭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공정무역 진영이 ‘불공정 무역’의 진실을 발견하는 시각은 처음부터 지구적이고 또한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실제 현실에서 공정무역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전체 수출경제 인구 가운데 수적으로 극히 제한적인데다가 ‘생산지 인증제’를 통한 조건부의 참여만을 모음으로써 일반적인 개도국 빈곤의 현실에 가닿기 위한 제대로 된 표본 집단조차 만들지 못했다. 이상과 그 실현방식 사이의 이러한 괴리는 공정무역의 원천적 결함이다. 이 결함을 문제 삼는다는 의미에서 앞으로의 논의는 공정무역이 개도국 경제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모델이라는 관점을 밀어붙이기로 한다.

두 번째는 공정무역이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며 확립 및 심화된 세계 자본주의 구조에서 태동했으며 여전히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정은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러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무역구조가 떠받치고 있는 현실을 보다 넓고 두툼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불공정 무역이라는 사태의 외관은 개도국들을 수세기에 걸쳐(그리고 최근 신자유주의 시기에 급진적으로) 수출용 생산경제에 묶어둠으로써 그 반대급부로 선진국들이 각종 생필품을 저렴하고 다양하게 소비하면서도(노동대중의 생활비용과 임금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이는 자본에 특히 이득이다.) 여러 서비스 경제 분야를 꽃피울 수 있었던(즉 다국적 유통 자본만이 이득을 본 것은 아니다.) 지구적 관계상을 반영하고 있다. 비슷한 관점에서 ‘식민성(coloniality)’의 연구자 월터 미뇰로는 식민지의 플랜테이션과 광산에서 소모된 아프리카 노예와 원주민들이 명예혁명이나 프랑스혁명보다 더 확실한 근대성의 토대였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전체 인류사의 진보로 여겨졌던 서양의 정치적 사건들도 엄밀히는 식민지 경제에서 뽑아낸 막대한 부에 빚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지적들은 공정무역의 약속처럼 세계 무역질서를 바꾸는 데는 비즈니스 관행이나 소비자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도 전면적인 대항 기획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위의 두 가지를 기본 전제로 이하의 논의에서는 공정무역 생산의 한 요소인 ‘소농’에 주목해 그것으로부터 공정무역의 물질적 성격을 새롭게 포착하고자 한다.


1. ‘소농’이라는 자격

개도국의 가난한 농민이라고 해서 모두 공정무역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조건과 우선순위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자격이 되는 기준은 공정무역 진영에서 이미 정해 놓고 있다. 공정무역 진영은 공정무역 생산자의 자격을 1)국외 시장 수요에 맞게 품질을 개선해야 하고, 2)마을 내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분배를 위해 생산자 협동조합을 조직해야 하며, 3)생산 활동상의 성 평등과 아동 보호, 환경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해 전하고 있다.

세 가지가 각기 별개의 사안으로 보이는데다가 내용상 흠잡을 구석도 없어 보인다. 누가 봐도 좋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열쇳말은 따로 있다. 공정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공정함을 논하는 범위와 수준을 지정해 주는 은근하지만 강력한 장치 ─ 바로 ‘소농’이다.

공정무역 문건들을 보면 이미 그 도입부에서부터 개도국 농민이 ‘소농’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정무역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소수의 예외 품목을 제외하고는 소농(영세자영농, 가족농)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격 규정을 통해 공정무역 진영은 소농이라는 이름이 전체 개도국 농민을 대표하고 있음을 단언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표성인가? 확인을 위해 총 가치 기준 제2위 규모의 국제무역 품목이자 전체 공정무역 사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인 커피를 예로 들어 보자.

공정무역 담론에서 ‘커피 소농’의 대표성은 1)많은 빈곤한 나라들의 경제가 커피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2)개별 커피 농지의 크기를 기준으로 소규모 농지의 수가 대규모 농장의 수를 크게 앞서고 있음을 나타내는 통계 지표들로 정당화된다. 커피 소농이 제3세계의 인구 구성상 가장 비중 있는 집단이거나 최소한 빈곤과 관련해 가장 유의미한 집단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이어서 커피 소농은 세계시장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생계에 직격탄을 맞으면서도 그에 대비 및 대처할 자원이 거의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주변적이고 취약한 경제 주체로 그려진다. 이때의 급격한 시장 변화란 언제나 국제 커피가격의 폭락이라는 사태로 예시되며, 다시 그 가격 폭락은 소농들이 생산비용마저 보전하지 못할 만큼이라는 규정을 덧입고서야 온전한 ‘위기’로서의 의미를 확정하게 된다.

그 증거로 공정무역 진영은 ‘공정한 가격’의 의미를 ‘적어도 생산 비용을 보장해 주는 가격’으로 정의한다(최근에는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가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국제 가격의 폭락을 문제 삼는 이들의 태도는 그 폭락의 자본주의적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기보다는 소농들에게도 조금은 남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제기의 수준을 맴돌고 있는 셈이다.

2. 소농의 독주: 농촌경제에서 배제된 소유와 노동의 쟁점들

공정무역 담론에서 소농은 유통과정에서는 폭리를 취하는 중간상인과 다국적기업에 자신의 몫을 빼앗기고, 생산 영역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대농장주와 불공평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이중의 약자로 그려진다.

소농과 대농장주-중간상인-다국적기업을 대결시키는 이러한 구도는 통념적인 선과 악의 이미지들과 교묘히 결합해 공정무역에 쉽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도국의 미래 전망을 가족 중심의 단순한 삶, 인간적인 수고, 적은 욕심, 친환경 등의 도덕적 관념들에 묶어두기 쉽다. 제3세계 농민들이 현재 세계경제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토착성의 한 요소로 결박시킬 우려도 있는 대목이다.

결정적으로 소농의 도덕적 순수성을 가정하는 공정무역의 생산자 자격 규정은 개도국 농업현장에 만연한 임노동(주로 이주노동과 계절노동의 형태)의 현실에 눈감음으로써 농촌경제라는 주제와 소유 및 임노동의 문제들을 분리시킨다.

소농과 대농장주는 농지 크기로만 구분될 뿐 모두 자기 소유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진국 소비 시장을 목표로 수출 경쟁을 벌이는 자산 소유자다. 대농장이 아니라고 해서 임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최근 공정무역의 성공 사례로 자주 소개되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바나나 생산자들을 예로 들어보자. 개별 공정무역 생산지마다에서의 상업적 성공을 위한 단 하나의 전략은 국외 판로를 확보하고 또 확대하는 것이다. 즉 공정무역 바나나 생산자들의 상업적 성공이란 이들의 생산물을 수매하는 국외 바이어들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었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판로 확대는 생산 규모와 노동 동원의 확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도미니카공화국 바나나 생산자들도 상업적 성공에 상응해 임노동 고용을 확대해 왔다. 이때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공식 집계되는 전체 임노동자 수의 절반 이상(일부 가정치로는 약 90%)은 아이티 같이 최근 경제가 파탄난 인근 나라들 출신의 이주자들로 채워진다. 공정무역 바나나를 선호하는 유럽 내 틈새시장이 그 공급처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지정한 결과다. 공정무역이 카리브 지역 내부에 지리적 계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무역이 도미니카공화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항간의 지적에 대해 국제공정무역기구(FLO)는 도미니카공화국 정부에 이주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 답변은 소유와 노동의 문제를 명백하게 공정무역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러한 ‘밀어내기’는 공정무역의 공식 문건들에서 ‘공정가격’을 산정하는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잘 들어맞는다. 공정가격은 농산물 매입자(주로 선진국의 제조 및 판매업체)가 생산자 측에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가격으로, 그로부터 우리는 공정무역이 말하는 ‘정당한 보상’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 진영은 공정가격의 값을 품목별, 생산지별, 시기별로 공시하기만 할 뿐 그 산정 방식을 공개적인 검토와 토론에 붙이지는 않아 왔다.

이처럼 공정무역 진영이 물질적 현실에 대한 전통적인 좌파적 쟁점들을 배제한 결과는 무엇인가?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공정무역이 급진적 사고가 탈각된 소비자 운동과 윤리 마케팅 영역 안에 안전히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즉 공정무역 진영은 정치적 이견이 분출할 수 있는 의제들을 애초에 털어버렸다. 그리고 공정무역은 윤리 세계에서 화려하게 부상했다.

3. 소농에 대해 공정무역이 말하지 않는 것

소농은 광활한 세계시장 속에서 홀로 밭을 일구는 개인들이 아니다. 소농은 사회적 집단이기도 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제3세계 커피 생산자 중에 소농이 많은 현실은 다음의 두 가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소농들이 국가 주도의 토지개혁과 관리체제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자기 땅을 분배 받은 주민들이 일군의 공공 정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 전체의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동원되는 양상은 20세기의 중남미 역사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당대의 농업 정책 기조는 정부가 주력 수출용 작물을 선정해 생산수단을 일괄 지원하고 생산물의 수매 및 수출을 독점하며 농업 기술이 사회적 차원에서 연구되고 훈련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멕시코의 인메카페(INMECAF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국가가 자국 농업의 생산과 수출을 직접 관리하던 제도는 커피 수출국들과 수입국들 사이에 다자간으로 맺어진 국제 커피협정(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 ICA)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 1962년에 첫 체결된 국제 커피협정은 국가별 수출량을 지정하는 쿼터제에 기초해 국제 커피가격의 안정을 꾀했으나(그나마도 적극적인 협상이라기보다는 가격을 파운드당 $1.2~1.4선에 고정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중남미의 소련화에 대한 우려를 씻은 미국에 의해 1989년에 그 효력을 다했다. 냉전에 승리한 미국은 세계은행-국제무역기구(WTO)-미 내무부간 결속체제를 구축해 전 국제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이상을 수용하도록 실력을 행사했다. 차관과 원조가 긴요한 개도국 정부들이 가장 먼저 변화를 증명해야 했다. 기존의 농업 관리체제는 ‘단일한 세계시장’의 이상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그렇다면 제3세계 소농들이 무방비 상태로 냉혹한 세계시장의 격랑 속에 내몰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이 소농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공정무역은 중남미 좌파 정권과 보호무역의 기조가 붕괴된 폐허 속에서 출현했다. 공정무역 진영이 위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소농들이 마치 자신들의 시민사회와 국가 제도를 가져 본 적 없는 목가적인 가상인양 묘사하는 한, 공정무역 역시 소농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할 수 없다.

제3세계의 시민사회와 국가 제도가 붕괴한 역사적 과거는 공정무역의 단순한 출발점을 나타낼 뿐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기도 한다. 우리는 왜 공정무역 커피가 품질을 우선시하는 동시에 근래에 국외 자본들에 확실하게 빗장을 푼 나라들에서 많이 생산되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가령 카가메 대통령의 강력한 경제 개혁 바람 속에 최근 몇 년 새 고급 ‘스페셜티 커피’의 생산지로 급부상한 르완다에서는 커피 품질 개선을 명목으로 생산지마다 수원지와 직접 연결되는 세척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이때 시설의 운영 및 소유권은 설립에 직접 투자해 ‘품질 향상을 도와 준’ 국외 자본에게 주어지고 있다.

다른 하나로 우리는 소농 중심의 커피생산경제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유력한 형태인 대량생산체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못된 성질을 고치겠다는 공정무역 진영의 의지가 무색하게도 오늘날 소농 중심의 커피생산지들은 분명 자본주의가 미발달된 나라들에 형성되어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수출용 저임금 공장들이 들어선 도시의 산업지대들과 달리, 소농 중심의 농촌들은 관습적인 소유권 관념(농지만이 아닌 각종 자연자원과 종자·농약·인증제 등을 둘러싼 지적재산에 대해서도 그렇다.)과 작법 등에 여전히 의존한다는 점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충분히 편입되지 않은 일종의 변경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커피에 투자하는 세계시장의 큰 손들이 이처럼 커피의 직접 생산자들을 ‘미개척’ 상태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가능한 대답 중 하나는 커피생산경제를 대량생산체제로 발전시키지 않아도 이윤을 창출하는 데 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도 커피가격은 충분히 낮으며 그 수준을 유지시킬 세계적 체제 역시 굳건하다. 자본가가 일일이 나서 대량생산을 조직하고 노동력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커피를 취급하는 국제 자본들은 개도국들에서 생산된 커피를 금융시장과 연동시키거나 유통·가공을 독점하는 방식만으로도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예컨대 스타벅스가 수익을 내는 주된 방식은 소비자가격이 꾸준히 상승한다는 전제에서 선물시장 가격의 급락을 통한 큰 차익을 노리고 1년 치 커피공급 계약을 한 번에 체결하는 것이다.

끝으로 개도국 국토들에는 아직 자본의 이윤처가 될 만한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간단하게는 수원지와 같은 자연자원과 생산 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종자와 농약, 각종 환경 규제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전통적인 토지 소유권이 단번에 폐기되면서 식량 시장에 투자하려는 국외 자본에 소농들의 터전이 한꺼번에 ‘강탈’되는 사태도 연달아 보고되고 있다. 제3세계 소농들을 세계시장의 당당한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매입 가격을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소박한 제안은 계속 복잡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이미 뒤쳐진 지 오래다.

[참고1] 공정무역 특전의 물질적 성격

ㄱ. 특전의 내용 구성: 최저가격 보장 + 유통단계 단축 + 기타 기술적 지원(품질 향상 교육 및 금융 서비스)
*예: 현행 공정무역 커피 매입(본선인도) 가격은 고급 품종에 해당하는 아라비카 생두에 한해 1파운드(약 450g)당 $1.35~1.40는 생산물에 직접(유기농 인증 시 $0.30 추가) 지불되며, $0.20는 생산자 협동조합의 공동 기금으로 적립된다.

ㄴ. 특전의 조건: 소농들의 생산자 협동조합 조직 또는 가입 + 품질 개선 및 유지 + 회계와 사용처 보고

ㄷ. 특전이 가능한 배경
- 고급 커피의 수요 증가: 고급 커피의 공급을 안정화해야 하는 자본의 필요 + 최적의 생산지를 확보하려는 자본간 경쟁
- 지난 십 년 간 국제커피가격 상승
* 예: 콜롬비아세척아라비카의 1파운드당 가격이 2002년의 65.26센트에서 2011년의 283.82센트로 4배 이상 상승했으며 이는 현재 공정무역이 보장하는 최대치인 190센트를 크게 상회한다.

[참고 2] 윤리 세계에서 공정무역의 부상

공정무역은 국제커피가격이 약 십 년만의 폭락을 기록한 2002년을 전후해 유럽과 북미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당시 공정무역의 부상은 1)90년대에 걸쳐 채무국들에 강요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개도국 커피 생산 경제가 잇따라 '자유화'되고 있던 중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2)그 반사 효과로 선진국 대중들이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기업들의 번영을 직접 목격하고 그 기업들이 주도하는 소비문화를 향유하게 되었고, 3)새천년을 앞두고 국제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폐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동시적 사태들을 배경으로 한다. 대중적 저항과 국제 연대도 조직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십 년간 스타벅스, 네슬레, 월마트 같은 식품 제조 및 판매 분야의 거대기업들이 공정무역 동참을 선언하면서 유명 소매점들에 그들의 브랜드를 단 공정무역 제품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행 공정무역 인증제가 실행된 지 15년도 더 된 지금의 시점에서 그동안 공정무역이 시장 전략으로나 개도국 발전 전략으로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공정무역의 면면을 처음부터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공정무역 진영이 내세워 온 각종 도덕적 수사와 가상들, 낙관적 전망을 거둬내고 이제 공정무역에 관한 논의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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