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의 용어로 정치를 사유하지 않기

[새책] 탈정치의 정치학(안또니오 네그리 외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4)

며칠 전 공동체 상영으로 <탐욕의 제국>을 보았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혜경 씨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제 힘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뇌종양에 걸린 혜경 씨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남편 황민웅을 잃은 애정 씨도 강남 한복판, 거대한 삼성본사 건물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절규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그들은 더 이상 희생자의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홀로웨이는 말한다. “태초에 절규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상황 앞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의 절규, 공포의 절규, 무엇보다도 분노의 절규, 거부의 절규, 그것은 곧 아니다(NO!)라는 외침이다.”(20쪽) 혜경 씨의 절규는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 죽은 노동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산노동의 절규였다.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절규로부터 시작된다. 혜경 씨는 걷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속상해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뇌종양 때문에 허무와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참으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정신의 건강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뇰리로부터 나는 답을 찾는다. “긍정적인 것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시대의 참혹함으로 인해 우리는 오직 부정 속에서만 긍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60쪽) 긍정을 생성하는 부정! 홀로웨이는 그 근거를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성에서 찾는다. “노동은 자본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자본은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이 없다면 자본은 소멸한다. 반면 자본이 없다면 노동은 실천적 창조성, 창조적 실천, 인간이 된다.”(258쪽)

친구들과 함께 <탐욕의 제국>을 보면서 몇 주째 붙들고 있는 『탈정치의 정치학』에서 읽은 문장들이 떠오른 것은 바로 이 책이 새로운 주체성의 생산과 해방의 정치를 묻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율주의 이론가 9명의 14편의 글을 싣고 있는 『탈정치의 정치학』은 진도가 팍팍 나가는 책은 아니었다. 홀로웨이와 네그리는 구면이었지만 나머지 일곱명은 이 책에서 그들의 생각을 처음 접했다. 편저자 워너 본펠드는 저자들을 이단적 맑스주의자로 묶는다. 아홉 명의 저자들이 조금씩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국민국가 외부를 사유하면서 사민주의적 코포라티즘으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하는 해방의 기획’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새로운 주체들의 자율성과 자기가치화(해리 클리버)’를 말하기도 하고, ‘대중지성의 소비에트(네그리)’를 건설하자고도 하며, ‘평의회 코뮤니스트(마이크 루크)’의 전통을 발전시키자고도 한다.

이들 자율주의자들의 주장은 유럽이나 영미권에서만 이단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낯설다. “법과 화폐에 대한 관리를 통해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는”(워너 본펠드, 319쪽)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국가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니 ‘국가, 국가주권, 국가지배라는 발상’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나아가 “일상적인 전복, 연속적인 저항, 구성하는 제헌권력의 관점에서 국가형태를 상상하자”(네그리, 390쪽)는 제안에 대해서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네그리는 “우리는 점차 더 이상 지배의 용어로 정치를 사유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국면에 도달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형태이론’의 너머에서 정치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을 발견해야만 한다.”(391쪽)고 강조한다. 지배의 용어로 정치를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네그리는 1995년 파리에서의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들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호응에서 받은 감동을 전한다. 그는 말한다. “투쟁은 그 자체가 지향하는 목표를 예시한다. 투쟁의 방법 ― 승리를 위해 함께 하기 ― 는 투쟁의 궁극목적 ― 자본주의 바깥에서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부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하기 ― 를 예시한다.”라고. 이러한 예시적 정치와의 조우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2012년의 뉴욕을 비롯하여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진 오큐파이 운동에서, 희망버스에서, 우리 역시 이러한 상황을 만났다. 그러나 체험을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체험은 다만 체험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탈정치의 정치학』에 수록된 글들은 대부분 1990년대에 발표된 글들이다. 지구화를 둘러싼 당시의 담론을 논쟁적으로 다룬 글들에서는 사실 조금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탈정치의 정치학』에 실린 글들은 흥미롭다. 새로운 저자들과 낯을 익히는 즐거움도 크다. 마리아로사 달라 꼬스따의 글을 통해 사빠띠스따와 칩코 운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페루치오 감비노의 글은 조절학파의 포드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보면 덤으로 포디주의과 포스트 포드주의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 『탈정치의 정치학』의 가장 큰 미덕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자율주의라는 새로운 창을 열어 보이며 새로운 정치를 상상할 것을, 민주주의의 급진성을 사유하고 실천할 것을 요청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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