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77일간의 파업, ‘견뎌’라는 눈물겨운 말 한마디

[새책] 내 안의 보루 (고진 저, 컬처앤스토리, 2014)

“개죽음은 피해라!”

1994년 1월로 기억하고 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을 처음 대면한 날이,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1팀 콘베어 라인에서 일을 막 시작하려고 할 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 사람이 바로 한상균 전 지부장이었다. 전날 먹었던 술이 아직 깨지 않았던지 술냄새를 풍기며 내게 말을 걸었던 그 모습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나와의 질긴 인연의 첫 시작이었다.

쌍용자동차 하면 ‘정리해고와 죽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속에는 ‘77일’이라는 공장점거파업이 자리 잡고 있고,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만 5년이 되도록 멈출 줄 모른 채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읽는 사람에 따라 책의 내용이 재미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아니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삶과 거리가 있었고,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평범한 일반 사람의 일상적인 삶보다는 다른 삶과 길을 선택한 두 사람, 만남의 과정 또한 생존권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일터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자리에서 막걸리잔 기울이며 서로가 고등학교 동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 이 모든 게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라는 그 어떤 운명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몇 번 봤던 것이 전부였던 두 사람이, 서로의 필요성을 공감했는지 한 사람은 요청하고, 한 사람은 요청을 거부하지 못한 채 승낙하는 장면이 바로 한상균과 김혁의 만남이라는 끈을 이어 줬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쉬움이, 그 아픔과 열정을 이 책 한권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투쟁을 함께 해왔던 나로서는 생사를 넘나들던 그 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경찰공권력의 살인진압 과정에서 안에 갇혀 온갖 고민과 고뇌, 분노와 울분, 고통과 아픔을 함께 겪었다. 지부장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파업의 책임을 떠안고 가야했던 그 마음, 3년이라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도리어 자신이 미안해하던 그 표정과 모습들이 다시 생각나게 한다.

“답을 찾는 심정으로 올라가네!”

3년의 감옥생활도 부족한지 다시 출소 2개월만에 고공철탐에 올라 6개월이라는 시간을 다시 목숨을 걸어야 했던 한상균, ‘올라가면 안 된다, 올라가지 마라.’ 눈물을 흘리며 극구 말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뒤 송전탑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미안함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부끄럽다. 누가 떠밀어 올려 보내지 않았는데 다시 송전탑을 올라야 했던 그 심정은 어땠을까.

“화성교도소를 나오던 그날 밤까지 부끄럽지만 어디론가 도망갈 궁리를 했네. 비겁한 자로 살아가는 게 차라리 내가 진 업보보다 낫다고 보았네. 많은 이들의 얼굴이 내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박혀있는데 그들을 보면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보러 온 수백 명을 보면서 도망갈 용기조차 없었다. 가슴이 뛰고 울컥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 속에서 내가 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공감한다. 나도 그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으니, 그러나 24명의 동료, 가족들의 죽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함께 그 긴 시간의 고통을 이겨나가는 나의 동지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우리를 돕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연대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충격적인 내용이 이 책을 통해서 또 전해진다. 아니 나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보다 더 걱정스럽고 충격을 받을 사람은 시골에 계시는 노모와 가족일 것이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걸, 다른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 당시 혼자 모든 짐을 떠안고 결정해야 하는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도장 공장에 나만의 아지트가 있었네. ... 파업이 두 달 지날 무렵부터 조금씩 최후의 무기들을 장만했었네. 그것들을 사용했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졌겠지. 그 마지막 시간에 거기에 들어가서 생각에 잠겼네. 숨 막힐 정도로 신나 냄새가 진동했지. 나는 우리들의 시간을 짧게나마 되짚어 봤네. 이제 최후의 싸움으로 갈 것이냐? 시간은 많지 않았네. ... 혼란스러웠지, 이 영령들 앞에서 죄송스런 이야기지만 ‘개죽음은 피해라!’ 하는 소리가 귀에서 ‘앵앵’거렸네.”

혼자서 외로운 결정과 고민을 해야 했던 그 모습을 생각하니 미안함과 충격이 뇌리를 때린다. 그래 우리 “개죽음은 피하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이 벌써 5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다섯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 기나긴 투쟁을 이렇게라도 되짚어 보고 기록을 남기게 해준 한상균 동지와 김혁 동지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런 열정들이 나약해지는 우리를 더 단단하게 담금질 해준다.

성큼 다가온 이 봄날, 잎만 돋아나는 봄이 아니라 해고자들의 마음에도 그 가족들의 마음에도 일상의 행복 꽃 피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살아내 온 눈물겨운 어제를, 꿈꾸는 내일을 함께 공유해주면 좋겠다. 우리 서로가 서로의 보루가 되어 이 불의한 시대를 함께 건너갔으면 좋겠다.

77일 파업. 아직도 그날의 눈물들과 절규들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자비한 공권력의 폭력 속에서 우리 함께 부르짖었던 말. “견뎌”. 우리는 끝내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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