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가개조론의 두 축, 전면적 민영화와 규제완화

[주례토론회] 세월호의 역설, 박근혜의 역습


문창극 해프닝, 도대체 무얼 위해?

결국 사퇴했다. 그리고 그만 둔 줄 알았던 총리가 다시 되돌아왔다. 이번 사건을 두고 박근혜 정부는 또 한 번 깊은 혼란함에 빠졌으며 무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의외의 인사를 선택했었는지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정말로 사전검증이 불충분해서 생긴 실수인 건가? 아니면 세월호 참사로 가라앉은 박근혜 정권의 리더십을 띄워줄 선동가적 인물이 필요했던 것인가? 하긴 낙마한 문창극 후보자가 보여준 몇 주 동안의 기이한 행동들을 보면 후자에 가까웠다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인물을 총리로 원했다면 무엇을 선동하고자 했던 건지 되짚을 수밖에 없다. 6.4 지방선거 직후 박근혜 대통령 입에서 나왔던 첫 마디인 ‘국가개조’에 대해서 말이다. 이 말이 단순히 국면전환을 위한 일회성 발언만일 순 없는 건, 이미 올 해 초부터 수차례 반복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온 정총리의 첫마디 역시 ‘국가개조’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번 국무총리 인사파동으로 인해 한 박자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이제 ‘국가개조’를 둘러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국가개조’의 일차적 대상이 되는 공무원들의 연금개조나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세월호 참사 여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관피아’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하면서 전방위적인 공무원 때리기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수서발 KTX 분리문제로 한 차례 격한 대립을 겪었던 철도공사는 공항철도 민간매각까지 발표하면서 부채감축을 빌미로 철도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관피아’라는 말이 상징하는 바처럼 ‘국가개조’에 담긴 이 담론은 매우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뜻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릴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면서 그 개조의 일차적 대상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심장부임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모범 없이 위에서 명령하는 자로 서있는 한, ‘국가개조론’의 대중적 영향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담론에 대해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은 여전히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 있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로만 응수하기엔 부족하다. 우리가 정치적 반대세력으로 강하게 결집되지 못하고 있는 이상, 박근혜 정부의 지지기반은 언제든 다시 강한 구심력으로 뭉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인식과 대응을 위해 먼저 ‘국가개조론’의 바탕에 깔려있는 논리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논리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어떤 뼈대를 이루는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의도된 재정위기론, 전면적 민영화를 위한 사전포석

2013년 9월 박근혜 정부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보통 5년 정도의 재정운용 계획을 밝히는데, 이 발표 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2017년 자신 임기까지 어떤 기조로 재정운영을 할지 가늠할 수 있다. 기본 목표는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정부 채무비율을 GDP대비 35%선에서 억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표에서 보듯, 의무지출로 인한 자연증가분 있기 때문에, 전체 부채비율을 하향시키기 위해선 다른 부문의 재정지출을 강하게 줄일 수밖에 없다. 플러스요인을 마이너스요인으로 상쇄시키는 셈이다.

  단위(%), 관리 재정수지 및 국가 채무는 GDP 대비 비율 [출처: 2013-2017년 국가 재정운용 계획]

그런데 매년 6-7% 수준의 자연증가분을 상쇄하기 위해선 다른 지출에서 상당한 긴축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내수침체로 정부지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스스로 발목을 잡는 계획을 설정하는 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과도한 긴축이 경기침체를 가속하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GDP대비 35%라는 국가부채 비율은 상당히 안정적인 수치이다. 공기업 부채를 포함할 경우 70%까지 상승하지만, 이 수치를 두고 재정위기를 거론하거나 긴축을 말할 단계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가계부채이지 국가부채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설파하는 균형재정 목표가 재정보수주의적 이념에 과잉되어 있거나, 혹은 어떤 다른 정책을 풀어내기 위한 사전조치가 아닌지 의심된다. 특히 이것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선동적 구호와 결합되면서 공공기관의 부채규모가 비정상적인 것을 측정하는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대상은 공무원과 공기업노동자들에게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만으론 국가부채가 해결되지 못한다는 건 정부에서 밝힌 공기업 정상화 대책에도 나와 있다. (참조: 참세상 주례토론회 <공공부채 위기를 부풀려 국가개조의 먹잇감으로 삼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겨냥한 정상화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일종의 ‘충격요법’처럼 국가부채를 지렛대 삼아 어떤 다른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들어 제출된 일련의 주요 경제계획들을 국가 부채관리와 재정순환의 조정을 중심으로 재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그림처럼 재정관리에 관한 5가지 관리영역이 서로 연계되어 움직이고 있다.

  자료 : <2013-2017년 국가 재정운용 계획>,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방향>,<창조경제 실현계획>, <공공기관 부채감축 운용지침>

그런데 여기서 세입관리의 두 가지 방안인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대선시기부터 많은 회자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 효과가 미약할 것이라 처음부터 지적했다. 그렇다면 지출관리 측면에서 더욱 강한 긴축적 요소를 도입 할 수밖에 없다. 또는 성장 관리 측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각각 상징하는 말이 바로 공공부문의 ‘비정상화 정상화’와 전면적인 ‘규제완화’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엮어 있는 이유는 민간투자 활성화가 각종 ‘규제완화’ 조치들과 함께 계획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부 초기 ‘전봇대 뽑기’나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라는 언론들의 선동을 통해 우리는 잘못된 규제들로 투자가 저해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했듯, 선박연령 규정처럼 대부분은 공익 목적으로 민간에 제약을 가하는 규정들이거나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사업에 관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투자 활성화는 안전성 저하와 공공재의 비용 인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의료민영화와 철도분할매각을 둘러싼 갈등,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맥쿼리 같은 민간자본들이 공공사업에서 폭리를 취했던 사건들로부터 앞으로 전개될 사회적 갈등들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민자유치와 이자보전

먼저 지출관리 측면의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Pay-Go 준칙’이란, 쉽게 말해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나가는 돈도 없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건 개인들이 자신의 소득에 준하여 지출해야 하는 상황을 국가에 대입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지출에 의한 공공사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전제한 것인데, 공공지출을 세입에 종속시키면 공공성은 재정규율에 따라 포기될 수 있는 것으로 강등된다.

그러나 국가는 긴요한 문제가 터지면 재정 투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선 그렇게 행동 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성이라는 것은, 하면 좋고 안하면 그만인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을 전면에 두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무엇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근혜 정부가 확대하고 있는 ‘민자유치’와 ‘융자의 이차보전화’는 국가가 해야 할 이런 현실적 요구를 비켜가기 위한 방법들로 활용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정부를 대신하여 공공사업을 맡은 민간자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매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도록 하고, 정부는 금융기관들에게 낮은 대출이자에 따른 손해를 보전해준다.


이렇게 되면 장부상 국가부채 규모는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대출이자만 보전해주는 돈으로 공공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은 이미 MB정부 때부터 진행되어 온 방식인데, 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심지어 <2014년도 연안선박 현대화 이차보전사업>에서는 개인들의 노후화된 연안선박을 대체하거나 새로 건조하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경우 정부에서 3%의 이자율을 지원해주고 있다. 노후선박에 대한 안전규정에 따라 개인이 스스로 시설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정부가 규제를 제대로 이행하도록 감시하기는커녕 개인들에게 일종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꼴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듯, 선박연령에 대한 규제완화로 세월호 같은 노후선박이 재활용될 수 있었고, 선주는 최대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안전관리엔 인색했다. 안전이라는 공공성을 이자보전을 통한 보조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정부의 경제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새삼 깨달았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부채를 지렛대 삼아 공공영역을 민간자본으로 대체하는 정책들은 십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기존의 공공부문의 사영화(민영화) 흐름과 질적으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잘 알려진 공공자산의 매각 뿐 만이 아니라 공공사업의 이전과 위탁, 심지어 광의의 공공성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까지도 사적 경영의 효율성을 위한 민간투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전 공공영역의 사영화이다.

규제완화와 성장 관리 정책 : 맥킨지 보고서 <한국 신성장공식>

한편 이러한 전면적인 사영화는 새로운 성장 관리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가 하던 일을 단순히 민간자본에게 넘겨주는 것만으론 총량적 수준으로 볼 때 커다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적 안전관리나 공공재들을 민간투자의 대상으로 바꾸는 이유는 여기서 새로운 성장의 활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런 자본 성장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지 감이 안 온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 짚어보자. 노동과 자본을 각각 100을 투여했을 때, 어떤 나라는 산출량이 100이 나오고 다른 나라는 200이 나온다고 한다면, 그러한 차이를 일으키는 요인이 바로 기술에 의한 생산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기술에 의한 생산성 증가를 내재적 방식으로 계산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출결과에서 투입한 노동과 자본을 빼서 남는 부분으로 생산성을 따진다.(솔로우 잔차)

이제 이렇게 되면 흔히 생각하는 물리적인 기술개발 말고도 다양한 영역들이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기술로 편입되게 된다. 노무관리를 통해 노동력 사용을 극대화하는 것도 기술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 규범을 수정하여 산출물이 더 많이 나오면 그런 제도의 변화도 생산성 향상 요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소위 말해 문화, 관습, 법률 까지도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는 셈이다. 만약 여기에 어떤 것이 산출량 증대를 제약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면, 그에 대한 경제적 처방은 당장 그 제약요인을 없애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탈규제 및 규제완화의 경제적 이론토대이다.

어찌 보면 참 막무가내인 듯한데, 탈규제와 민영화를 외치는 각종 연구소들의 복잡한 생산성 추계 자료도 모두 이런 이론적 배경을 모태로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9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보고서(규제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서 따르면 규제완화에 따른 생산성 증대효과가 가장 큰 영역으로 전문, 의료 서비스 그리고 금융서비스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당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이러한 규제완화 정책들이 잠시 수면에 가라앉았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후, 한미 FTA을 비롯한 여러 무역협정, 공공부문 선진화, 그리고 지금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론 까지 다양한 계기를 통해 전면화 되고 있다.

이러한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정책의 핵심을 잘 정리한 보고서가 바로 작년 4월 한국을 ‘뜨거워지는 물 안의 개구리’로 비유했던 맥킨지 보고서이다. 당시 한글요약문이 여기저기서 회자되었다. <1> 중산층 가구의 재정건전성 강화, <2> 서비스 부문 확대 및 강화, <3> 중소기업 부문 강화, <4> 여성의 노동참여 확대 및 출산율 하락 저지 등등, 이 보고서의 소제목들만 보면 흔히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에서 자주 등장했던 내용들을 연상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대기업 수출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작성자와 그와 연계된 인맥들을 분석하다 보면, 과연 그 최종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보고서 작성에 주된 역할을 한 리차드 돕스는 한국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었던 인물인데, 기업 M&A 전문가이다. 서문에서 그가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한 마틴 베일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연구원이었고, 클린턴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가장 철저하게 복무하는 두뇌집단들과 인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잘 부합하도록 맥킨지가 외주를 받아 한국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니다 다를까, 이 보고서의 첫 처방책이 LTV 부동산 규제완화이다. 현재 새로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최경환 후보자가 60%에 묶여 있는 LTV 금융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이 보고서의 처방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국내 경제연구소들과 금융당국에서도 LTV 규제만큼은 풀면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맥킨지 보고서는 이런 우려에 대해 제2금융권 대출을 제1금융권으로 이전시켜 가계의 이자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규제완화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실현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은행의 우량자산을 담보로 한 ‘커버드 본드(Covered Bond)’의 발행과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증권(MBS) 시장 중심의 자산 유동화 제도 발전을 거론하고 있다. 이 모두 2008년 금융시장 거품붕괴의 원인들로 지적되었던 부동산 금융파생상품들이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그 파급효과가 어떨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이런 금융규제 완화를 너무 쉽게 처방책으로 내놓는다는 건, 새로운 금융시장의 먹거리에만 관심 있을 뿐 우리나라의 경제의 안정성 강화에 대해선 별 관심 없다는 걸 방증한다.

이 뿐만 아니다. 맥킨지 보고서가 제시한 처방책 중에서 ‘여성노동참가 확대’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작년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유럽의 몇몇 나라들의 모델들이 회자되었지만, 고용관계에 대한 힘의 논리가 사업주에게 쏠려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노동유연화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맥킨지 보고서가 말하는 여성노동의 확대는 의료보건, 공공서비스 분야로의 노동력 재배치도 함께 노리고 있다. 이 분야는 의료민영화 논란과 맞춤형 복지 등으로 이미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분야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를 선도하는 ‘국민경제 자문회의’의 어느 한 인사가, 지역토론회에서 불황에 허덕이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퇴출시켜 의료 및 전문 서비스 분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 청중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은 실언이라기보다는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집단들 사이에선 이미 정해진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맥킨지 보고서에서 이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출처: 멕킨지 보고서 <한국 신 성장공식> 2013.4]

국가개조의 전위대, 국민경제 자문회의

이처럼 국가개조가 그리는 그림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공부문을 포함하여 전 산업의 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의 중심축을 상징하는 말이 ‘규제완화’와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여기서 이러한 경제구조 재편을 지휘하고 있는 ‘국민경제 자문회의’에 대해서 짚어봐야 한다. 이 기구는 헌법 93조에 의해 규정된 자문기구인데, 그 동안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경제관련 위원회를 폐지하고 이를 통합하여 ‘국민경제 자문회의’로 일원화했다. "사실상 국민경제에 관해선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이자 최상위 기구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조직체계도 정책기조에 맞게 창조경제, 민생경제, 공정경제, 거시금융 4개 분과를 설치하여 경제 분야 국정과제 영역을 모두 포괄토록 했다. 당연직위원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수석,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있고, 장관급 수준의 30여 명의 민간위원이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조직이라 불렸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교수가 9명이고, 대통령의 학맥인 서강대 교수가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이들 숫자를 모두 더하면 절반이 넘는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 컨설팅 회사인 메킨지, 베인, 롤랜드버거 출신도 3명 있으며, 김앤장 출신 2명이 있다. 또한 매우 특징적인 것은 이들 중 5명이 이후 국가 중앙관료나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들이 일종에 박근혜 정부의 인력 풀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 민간위원들의 과거 행적들에 관해 언론에 소개된 것들만 훑어 봐도, 이들이 대부분 철저한 민영화론자, 시장주의자들임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규제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심지어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인사인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규제를 특정계층에 대한 특권과 비리의 소지가 있는 ‘완장’이라 표현했다. 규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심지어 ‘의원입법 사전검증’을 주장했는데, 이는 현재 사전검토 절차가 면제되는 의원발의 입법에 대해 규제영향평가를 심사하여 검증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입법부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행정부 역시 규제가 이행되도록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활동을 독려 방식에 초점을 맞춰 행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국가개조론’의 실체는 모든 국가의 입법, 행정기능을 시장자유주의에 복무하는 것으로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경제성장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다.

국민경제 자문위원회 활동 정리
1. 국민경제자문회의-중기연 공동세미나 " 창조경제와 중소기업:제조업의 재발견"
2. 국민경제자문회의-KIET 공동주최토론회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 개선방안”
3. 국민경제자문회의, 대-중소기업 생산적 협력방안 세미나 개최
4. 국민경제자문회의-에너지경제연구원 'ICT를 활용한 에너지절약 방안’워크숍
5. 국민경제자문회의-한국개발연구원 '서비스산업 글로벌화 전략' 세미나
6. 국민경제자문회의-인천경제자유구역청 '서비스업 글로벌화 전략' 세미나 개최
7. 국민경제자문회의-부산상의 '서비스산업 육성 필요성과 전략' 세미나 개최
8.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 개최 - 광주지역
9. 현정택 부의장 대만 CommonWealth Economic Forum 참석
10.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 개최 - 대구지역
11. '임금체계 개편 대토론회' 개최
12.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 개최 - 대전지역
13. 국민경제자문회의-한국경제학회 ‘한국경제 혁신을 위한 정책방안’세미나
14. '한국경제 혁신 전략과 과제' 공동 세미나 개최 - 광주 지역
15. '한국경제의 혁신방안 모색' 세미나 개최 - 대구지역
16. 현정택 부의장, '글로벌 경제환경과 한국경제 혁신방안' - 국회 경제정책포럼
17. '한국형 복지 패러다임의 모색' 정책토론회 개최
18. '경제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방안' 공동세미나 개최


이런 자문위원들의 인식과 지난 1년여 동안의 이들의 행적을 정리하면, 규제완화 정책이 어떻게 진행될지 살펴볼 수 있다. 주요 회의에서 등장했던 말들은 모아보면, 규제완화가 건드리는 현실쟁점들을 조목조목 실천하고 있다. 의료, 교육, 관광 서비스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2013.12.11 ‘서비스산업 글로벌화 전략’ 세미나), 경제자유구역내 의료 민영화 통한 확대, 관광 규제 완화-카지노 건설, 교육 민영화-영리학교 설립(2013.11.28 3차 국민경제자문회의 전체회의), 전기요금 인상 및 전기시장 개방(2013.11.8 국민경제자문회의-에너지경제연구원 워크숍) 등등, 이들은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 규제완화를 비롯한 핵심경제정책들을 설파하고 ‘국가개조’로 집약시키는 위한 전위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행동이 매우 파격적인 건,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관료체제 외부에 있는 세력이 전방위적으로 ‘국가개조’를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료들을 배제한 채, 특정한 경제이념의 인사들에게 헌법기관의 위상을 부여해 주고 ‘국가개조’를 위한 메스를 쥐게 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다. 이는 박근혜식 ‘국가개조론’이 기존의 공직사회 개혁이나 공기업 때리기 수준이 아닌,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초점이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세월호 역설, 박근혜의 역습?

가끔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로 ‘유체이탈화법’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쓰곤 했는데, 세월호 참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 화법이 또 다시 등장했다. 이것은 대통령이 스스로를 행정부의 수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 바깥에서 국가를 개조해야할 지도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국가개조’를 뒷받침해 줄 수첩 인사들에게 자신의 역사적(?) 과업을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파격적인 수첩 인사들이야 말로,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주요한 인물들이었다. 집권초기부터 불거진 인사 갈등, 지난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윤창중 사태, 그리고 이번 국무총리 인선 헤프닝을 보면서, 청와대 몇몇 실세들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정권의 위기감은 극단적인 막대 구부리기로 표출될 수도 있다. 그래서 7월 재보선과 세월호 국정조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대대적인 반격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전교조를 제물삼아 이념갈등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번 꺾인 ‘국가개조론’의 새로운 반격의 칼날을 다시 세울 수도 있다. 또한 1년 임기가 끝난 ‘국민경제 자문회의’에 어떤 인물들이 새로 들어올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정치적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세력으로 확장되지 못한 지금, 우리는 박근혜의 역습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권이 그리는 ‘국가개조’에는 새로운 성장을 갈구하는 한국 자본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존을 향한 그 자본의 욕망은 세월호 참사로도 가리기 어려울 만큼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