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멘탈,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증오의 파시즘

[양규헌 칼럼] 노동자 민중의 직접 정치로 파시즘 극복해야

‘일베’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칭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다. 일베는 혐오스럽고 상식을 벗어난 글들이 올라오는 곳이고 ‘일베’ 이용자들은 ‘루저’ ‘찌질이’ 일 것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진보 보수 입장을 떠나 그냥 관심을 끊어야 상책인 벌레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베’는 우리현실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정치적인 현상이다. 모든 가치와 상식이 전도된 듯 보이는 그들의 발언이나 글들은 접하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상처를 주고 염려하게 하지만 그런 전도된 의식의 아래엔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정치 역사가 가로 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1차 대전 직후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흥 된 파시즘이 독일의 루저 예술가 지망생인 히틀러에게 발화된 지점엔 좌파세력의 헤게모니가 있었다고 한다. 좌파세력의 헤게모니란 노동자의 계급성이나 그것을 지향하는 당이나 세력의 힘이 상당했었다는 것을 말한다. 부르조아 즉 보수세력들이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에게 권력을 도저히 넘길 수 없으니까 울며겨자먹기로 선택한 것이 파시즘이었다는 것이다. 좌파를 견제하기 위해 우파인 보수가 불러들인 것이 파시즘이었고 히틀러 파시즘이 내건 모토는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이었다. 국제주의 성격이 강한 공산주의를 경계하고 민족을 통합하기 위해 내세운 전술이 유태인 학살이었지만 그것은 강력한 게르만 민족의 이름으로 독일 대중을 사로잡았다. 보수 엘리트들이 불러들인 ‘파시즘’이 가능했던 것은 대중, 특히 계몽된 대중의 다목적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새누리 일파들은 틈만 나면 좌빨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좌파세력이 엄청 힘이 센 것처럼 선전해댄다. 그래서 정치의 미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통합진보당을 해산 청구하고,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박살내겠다고 한다. 강력한 자본의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전교조나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공작이나 일삼고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기에 바쁘다. 미.일과 동맹을 굳건히 하고 북이 주적으로 있고, 종북.빨갱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한 새누리당이나 새민련이 아닌 노동자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는다는 건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보수정치 세력이 너무도 강한 우리 현실에서, 진보좌파가 약하면 파시즘의 발흥은 없는 게 세계 역사의 정설이라는 데 우리에겐 파시즘이 있다. 그리고 이 파시즘은 보수정치판의 꽃놀이패로 기능하며 변혁.진보세력을 증오의 재물로 삼고 있다.

파시즘은 ‘비일관성과 모순’ 그 자체가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강력한 단 하나의 세계관이 있다면 그것은 강자가 하는 일만 옳고 나머지는 다 증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강자와 약자의 역학관계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강자의 모델을 찾았다면 그는 숭배의 대상이고 영웅이다. 일베에선 박정희 전두환이 영웅이고, 그것의 대척점인 전라도는 전라디언으로 멸족을 당해야 하는 해외 홍어족이다. 여자는 김치년으로 경멸의 대상, 합법적 강간의 대상일 뿐이며, 가장 증오스러운 정치인은 김정일의 곱슬머리에 노무현의 얼굴을 하고. 배는 김정은처럼 나온 곤색 인민복의 어떤 합체사내이다. 최근 이들에게는, 문창극을 낙마시킨 박근혜도 강력한 개조의 대상이 된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대통령이 되더니 그 혈통의 순수함을 따라잡지 못하고 좌빨이 되어가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애국보수가 7.30재보선에서 투표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일베에 올라왔다고 한다. 거기엔 몇 가지 훈령이 있었는데 ‘문창극을 밀어붙이지 못한 박근혜를 심판하자’고 하며 '무효표를 만들어 나경원을 떨어뜨려 애국보수의 마음과 힘을 보여주자'고 선동하는 글이라고 한다. 친일적이며 극우의 상징인 문창극을 낙마시킨 데 대한 감정표출로 보인다. 그들에게 노무현이 가장 증오하는 정치인으로 설정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은 전라디언이나 좌빨이어서가 아니라 386혹은 민주화세력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라고 한다. 민주화세력이 IMF와 함께 신자유주의를 정착시킴으로써 양극화와 함께 나타난 박탈감과 잉여의 증오심이 일베로 나타났고, 박정희 향수가 담아내는 극우파시즘을 동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소위 민주화세력(386)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태도와 정치력, 그리고 소외계층의 삶을 결과적으로 외면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이 가졌던 배신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며 기성세대에게 민주세력(386)의 이미지는, 참신함은 실종되고 희망 없는 절망으로 다가갔는지도 모른다. 참여정부를 경과하며 '그놈이 그놈이다, 모두다 도둑놈이다', '도둑놈에게 투표하기 싫다'. 선거 때 이런 말을 듣게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기권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게도 새누리당을 찍었다.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분출했던 투쟁의 성과는 자유와 희망보다는 많은 사람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변혁, 진보세력에게 권력의 희미한 그림자만 구경하게 했을 뿐 치열했던 투쟁의 성과는 새누리와 민주당으로 불리는 보수세력이 움켜쥐고 노동자 민중은 보수세력의 선동에 언제든지 넘어갈 처지에 놓여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권력을 잡았던 자칭 민주화 세력은 친일과 반민주, 반민족세력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4.3과 인혁당, 5.18 등등) 노동자 민중 학살에 대한 진실규명과 아울러 처벌과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민중을 학살했던 과거를 분명히 심판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의 정립인 동시에 진실에 근거한 역사의 심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책임과 처벌' 대신 '용서와 화해'로 물타기하면서 보상금을 통해 사건을 매듭지음으로써 민주화 투쟁정신의 역사성이 평가절하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참신함과 도덕적인 이미지로 등장했던 새로운 민주화 정치세력에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원했던 다수의 민중과 대중은 김대중 노무현의 타협 정치(노동자계급에겐 타협보다 억압)에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일베를 통해 그것의 반동이 온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있는 자리에 박정희와 전두환이 오버랩되면서 가치관이 뒤죽박죽 팩트도 뒤죽박죽이면서 알맹이 없는 천방지축이다. 능력 없는 박근혜 찍어 놓고 헛웃음 치는 자신들에게 열패감을 갖고, 더욱 괜찮은 먹잇감을 찾으려는 일베가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얼마나 황망하고 정신이 없으며, 얼마나 삶의 진정성, 정치의 본질과 그들의 정치를 원하는가를. 그것이 배반당한 자리에 올 수 있는 건 증오와 무논리와 모순이 가득한 외침일 뿐이라는 서글픈 인간적인 공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광우병 촛불 이후로 일베가 생겨났다고 하니 그 정치적 지점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 개혁세력에게 느꼈던 배반의 지점과 같은 것이리라.

문제의 해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파시즘은 ‘권력’을 주는 게 아니라 ‘권력에 대한 표현’을 준다고 한다. 히틀러는 청년동맹, 여성동맹, 주부동맹, 예술가동맹 등등 아기를 제외한 모든 계층에게 권력을 표현하는 행위를 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마다 한 번씩 투표를 하면서 주인 행세를 하는 의회정치로는 파시즘을 이겨낼 수 없다. 즉 우리 안의 일베와 그것의 쌍둥이인 무기력해져가는 노동자 정치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 한계를 돌파해내는 직접 정치를 통한 진정한 정치의 복원을 다방면 다각도로 실험하고 실천해야 할 시기가 더욱 간절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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