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어느 지하 조직이 폭동 준비에 늦게 오고, 끝나고 오나”

검찰 구체 증거 없이, 마리스타 강연 내용만 가지고 추측성 신문
“급진적 발언에 관념론자라 비판, 진보에선 강한 비판”

이른바 RO(혁명조직) 건설을 통한 내란음모 혐의 등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항소심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은 검찰 측 주장이 전부 황당하거나 어이없는 획책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22일 오전부터 서울 고등법원 형사9부(이민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피고인 신문에서 이석기 의원은 변호인의 RO 관련 질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게 지휘명령 체계가 확고한 지하조직 RO가 있었다면 뭐 하러 번잡스럽게 130명이 모여서 강연을 하느냐”며 “백번을 양보해 목숨을 걸고 폭동을 결의하는 장이 (2013년 5월 12일) 마리스타 수도원이었다면, 사전에 결사의 자리는 (5월 10일) 곤지암 모임이다. 그런데 여기 함께 피고인으로 앉아 있는 분들 절반이 그 모임에 안 나오거나 늦게 오거나 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어느 지하혁명 조직이 자기 목숨을 거는 그런 회합장소에 늦게 오고, 끝나고 오고, 아예 오지도 않느냐.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최소한 결전의 시기를 군사적으로 준비하려면, 폭동으로 어디를 습격하자거나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10년 동안 지하에 있던 조직이 갑자기 오픈해서 물질적 준비를 하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런 해괴한 주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꼬았다.

  참세상 자료사진

이석기 의원은 2013년 5월 12일 경기도당 마르스타 수도원 강연회가 소위 RO의 내란음모 모의 회합이라는 검사 주장을 두고도 “원심 판결문을 수차례 읽어 봤다. 검찰이 말한 내란이라면 목숨을 걸고 정권을 찬탈 하려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인데, 전두환, 박정희 군사 정변처럼 구체적으로 정권 장악 의도가 매우 명확해야 한다”며 “백번 양보해 시설파괴를 도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정권을 어떻게 장악하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30명이 갑자기 특정시설을 파괴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원심 어디에도 없다. 터무니없는 가설이 사실인 냥 확정된 것이 1심 판결이다”고 반박했다.

자주민주통일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는 주장을 두고도 “국정원 프락치 이성윤의 3년간 비밀 녹취록 어디에도 사회주의의 ‘사’자도 없다”며 “진보진영의 자민통이 사회주의 혁명과 무슨 관련이 있나. 이론에도 현실에도 없는 해괴한 주장을 2014년 법정에서 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강연에서 국가 기관시설과 주요 군사시설 파괴를 논의하고 정보 수십의 범위까지 모의해 구체적으로 내란음모를 획책 했다”는 검사의 주장에도 “그 자리에 모인 130여 명을 마치 합리적 사고나 이성적 판단이 전혀 없는 무뇌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강연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나왔다. 모두 하하 웃으면서 강연이 진행됐는데 오직 한 사람만 비장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한 사람은 총폭탄 정신으로 죽을 수 있다고 주장한 국정원 프락치 이성윤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당시 정세 강연에 대해선 “진보진영은 94년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계획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긴장 격화 가능성은 미국에 의한 국사 대응 우려를 굉장히 크게 보고 있었다”며 “강연기조는 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사적 충돌을 강행하면 걷잡을 수 없는 민족 공멸이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이건 최소한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민족 공멸을 막기 위해 우리 목숨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강연했다”고 설명했다.

“물질적, 기술적 준비란 선거 통한 구체적 집권 전략을 위한 준비 강조”

강연에서 나온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하자는 말에 대해선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97년 이후 선거를 통해 진보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봤다. 진보세력 집권이야 말로 보수 사회에선 혁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선거에 대해 전문적으로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준비된 전문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를 만들었다”며 “물질적, 기술적이란 말은 회사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나 생각만이 아니라 현실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술적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보 집권을 위해서는 집권전략을 짜주고, 선거정책을 지원하는 기관이 필요한 것처럼 정세의 대전환기를 주동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말이 아닌 구체적 물질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대남 혁명을 추종한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그 주장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다”며 “97년 이후 그 어떤 세력도 선거를 통하지 않고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 상식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은 고립되거나 와해된다고 본다. 그건 현실과 맞지 않거나 관념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자신의 강연회가 끝난 후 진행된 분반토론에서, 이상호 경기도당 위원장의 국가 기간시설 타격 등의 발언이 나온 데 대해선 전혀 몰랐다고 했다. 애초 강연회가 끝난 후 바로 집에 돌아가려 했지만 3년 동안 따로 연락도 하지 않은 당원들을 만나 인사라도 나누기 위해 그 시각에 운동장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산보를 끝내고 가니 분반토론 결과 발표를 하고 있어 마무리 발언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은 “분반토론 결과 발표 내용을 보면서 조금 의아했다. 당시 발표자의 내용을 듣고 ‘물질적 준비의 첫 번째 시간이어서 그런가요? 생소해서 그러신 거냐’고 했다. 강연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 아닌가 해서 비판한 바가 있다”며 “검찰이 ‘급진적 발언의 발표를 듣고 당시에 왜 비판을 안했느냐’는 취지의 질문하신 것 같은데 강도 높게 비판을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현실과 유리된 사람들은 굉장히 관념적 판단을 한다고 했다. 이건 굉장히 센 비판”이라며 “진보적 인사에게 관념적이란 비판은 굉장히 강한 비판이다. 뱃사람이 수영을 못한다는 비판과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신문 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은 검찰 측 신문엔 응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정치적 조작사건으로 1심에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한 바가 있다”며 “여전히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과 본질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뚜렷해 져 있어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검찰 신문은 내란 음모에 대한 새로운 증거나 구체적인 정황을 내지는 못했다. 검찰 신문 내용은 주로 마리스타 강연회 녹취록에 나온 다양한 발언의 추측성 해석을 통한 내란 음모 가능성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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