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노동자 김득중이 7.30 평택을에 나간 이유

[인터뷰] 고통받는 이들을 버린 정치, 고통받은 자가 직접 바꾼다

7.30 재보선에서 수도권은 진보정당의 기회라면 기회였다. 6.4 지방선거처럼 전국적인 선거가 되다보면 유력한 인사들 외엔 거의 언론보도조차 되기 어렵다. 하지만 7.30 같은 재보궐 선거는 어쨌든 군소 후보라도 일부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노동당이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 후보를 냈던 것은 정치세력으로서 당을 홍보하고 자신의 정치 노선을 알리기 위해 당연했다.

하지만 평택을에는 진보정당들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 6년여 시간동안 공장에서 쫓겨난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노동자 후보라는 이름으로 후보 출마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들은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인 김득중 무소속 5번 후보에게 진보단일후보란 타이틀을 내줬다. 그리고 진보단일후보 선거운동본부에 지역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진보정당들까지 모두 모였다.


사실 김득중 후보는 정치초년생은 아니었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자 열성적으로 당원활동을 했고 중앙당 대의원까지 했다. 96년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당시 노동계에서 그렇게 염원했던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국회의원이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희망”이란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이 많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가슴에 들어왔듯이 김득중 후보 가슴에도 다가왔다.

김 후보는 “그때는 민주노동당 얘기만 하면 세액공제를 하거나 적극적 지지로 현장이 모아지기도 했서 기분 좋게 활동했고, 저도 현장 분회장, 시위원회, 중앙당 대의원 등을 맡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득중 후보는 2008년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분당할 당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당적을 다시 갖지 않았다. 현장 조합원들이 보기에 진보정당은 다 비슷한데 선거를 통해 현장이 갈라지고, 민주노동당 대의원까지 했던 자신조차 조합원들에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했다. 갈라진 진보정당에 대한 불신은 현장의 분노로 이어지기도 했다. 진보정당마저도 현장을 갈라놓고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상황이 실망스러운 김득중 후보는 탈당을 선택했다. 그런 노동정치 과정을 겪은 현장노동자의 선거 출마에 진보정당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던져준 셈이다.

김득중 후보는 “많은 분들이 평택을 선거가 새로운 진보운동의 역사를 쓰는 상황이라고 지지해주시는데 그만큼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며 “지금도 진보정당의 오랜 분당 때문에 현장에 가보면 진보정당 분열이 가져온 문제를 확연하게 느낄 정도라서 노동자 정치 참여를 어떻게 높여 갈지 부단히 접촉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정치에 실망을 느낀 해고노동자가 다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장노동자들의 불신이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조가 조직적으로 결정해 국회의원 선거에 직접 뛰어든 이유는 일터와 집에서 공권력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해야 세월호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일명 스카이엠(SKYM)에서 비롯됐다. 쌍용차의 S, 제주 강정마을의 K, 용산의 Y, 그리고 밀양의 M. 스카이엠은 국가 폭력에 의해 자기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모여 국가 폭력 문제에 함께 대응하기로 하며 뭉쳤다.


용산참사에서 경찰 단 한명이라도 책임을 물었다면 달라졌을 것

그동안 정치는 스카이엠 민중에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김득중 후보 수행팀에 결합한 용산참사 유가족 정영신 씨는 같은 해 벌어진 쌍용차 폭력진압이나 수 년 뒤 강정, 밀양에서 벌어진 일이 다 자기일 같았다.

정영신 씨는 “2009년 1월 용산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경찰 단 한 명이라도 책임을 물게 했다면 적어도 같은 해에 쌍용차에 똑같은 방법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고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스타트를 잘못 끊었다. 쌍용차, 강정, 밀양 모두 그들에게 부당한 권력을 준 계기가 용산인 것 같아 부채의식이 크다”고 했다. 이런 부채의식은 세월호에도 고스란히 흘러갔고 정치는 고통을 받아본 사람이 직접 나서야 진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월호만 봐도 그렇다. 여당이나 야당 모두 말로만 진상규명을 얘기할 게 아니라 의지를 갖고 해야 하는데 지금 정당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본인들이 당해보지 않아서인 것 같다. 당사자인 우리들이 하게 된다면 적어도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제대로 책임지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한 것이다. 철거를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퇴거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모르고, 개발현장에서 왜 사람이 우선이 돼야 하는지 모른다. 해고를 당하지 않아서 정리해고 금지법이 얼마나 절실한지 모른다. 야당이 아직도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재는 것도 많다 보니 적어도 당사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면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고민하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김득중 후보 역시 고민이 같았다. 단순히 평택에 위치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알려내는 것만 고민했다면 출마 결심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김득중 후보는 “선거라는 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여러 노동현장의 고공 투쟁, 열사 투쟁, 의료와 철도 민영화 문제와 같은 여러 의제들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우리는 절박함 마음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다. 쌍용차 정리해고를 말하는 노동자들, 용산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들, 유세차에 올라가는 밀양 할매와 강정마을 아저씨들이 이번 선거의 주인공들이다. 정치가 못한 것을 우리가 만들어 보자는 도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득중 후보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의 주요 공약인 성장이나 개발, 발전 같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산, 강정, 밀양처럼 개발의 이면에 있는 노동자 서민의 삶이 깨져 나간 공동체 문제를 주로 한다. 쌍용차 구조조정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평택이라는 지역 공동체 파괴 문제로 접근한다. 세월호 이야기도 많이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부터 빨리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2009년 길거리로 내몰리면서 지역경제가 반 토막 나고 골목상권도 죽었다.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즐거운 일자리 문제가 골목상권을 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의 초석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고, 여기 와서 뭔가 소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 LG전자니 미군기지를 대규모로 확대한다던가, 평택항을 국제항으로 만든다던가 해서 실질적으로 골목 상권이 크지 않는다고 하면 많이 공감한다.”

  공장 현장 순회 유세를 위해 공장 정문으로 들어가는 김득중 후보

김득중의 출마, 쌍용차 안에도 새로운 변화 일으켜

이렇게 쫓겨난 이들의 고통을 말하면서 살생부에 올라간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으로 나뉘어 갈등했던 쌍용차 공장안 노동자들과의 관계도 큰 변화가 일고 있었다. 금속노조와 다른 복수노조인 쌍용차 기업노조가 김득중 후보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지부는 7.30 선거와 관련해 몇 차례 기업노조를 방문했고, 6년 만에 공장안에 들어가 기업노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재보선과 관련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공장안 동료들은 김득중 후보 후원금도 모았다. 그리고 지난 23일엔 기업노조의 도움으로 공장 현장라인에 들어가 선거운동을 했다.

이날 현장방문엔 정리해고 반대 투쟁 당시 지부장이었던 한상균 전 지부장이 동행했다. 작업 중이던 동료들은 공장안에 들어온 김득중 후보와 한상균 전 지부장을 뜨겁게 포옹하며 맞이했다. 이날 현장 방문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돼 오후 1시 10분께 동료들과 공장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마무리됐다. 김득중 후보는 야간조 라인도 방문했다.

김규한 기업노조 위원장과 간담회도 열었다. 김규한 기업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같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라며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격려했다. 김득중 후보는 세액공제 사업 등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해고자 복직 문제만 쌍용차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쌍용차가 안정된 전망을 갖는 회사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가 필요한데, 해고자인 쌍용차 출신 후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며 쌍용차의 전망을 함께 공유하자고 했다. 김득중 후보는 이날 현장 순회 유세를 두고 “선거를 통해 공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만남이 형성되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런 의미는 공장 밖에서도 자라고 있었다. 유세를 다니다 보면 김득중 후보는 쌍용차로 통한다. 명함을 주면 "아~ 쌍용차?" 하고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쌍용차 해고자라는 걸 지역 주민들이 알게 됐고 쌍용차 문제가 아직도 진행형이란 것도 알아가고 있다.


수도권에 야권연대 바람이 몰아치고 있지만 김득중 후보는 새정치연합 정장선 후보와는 후보단일화 없이 끝까지 완주할 생각이다. 애초 스카이엠의 문제의식은 야권의 무능함과 무기력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이나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도 전혀 풀지 못한데다,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 거대 야당이 새누리당에 맞서는 실천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데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김득중 후보는 후보단일화가 아닌 사안별 정책연대는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야권연대에 대해선 질문이 자주 나오는데 저는 삶이 연대였고, 투쟁이 연대였다. 이런 속에서의 연대는 가능하지만 선거를 위한 야권연대는 고민도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면서도 “제가 주장하는 내용이나 정장선 후보가 얘기하는 정책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지역과 중앙에서 함께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고 설명했다. 7월 30일까지 야권 단일화는 없다는 것이다.

김득중 후보와의 인터뷰는 지난 23일 비가 내리던 오전 9시 30분,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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