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부당한 요구에 맞서 디폴트 선언할 수 있을까?

미국 헤지펀드, 1300%의 수익 요구...“채권자는 민중, 부당한 부채 거부해야”

아르헨티나에 대한 미국 헤지펀드의 행패가 점입가경이다. 아르헨티나는 오는 30일까지 미국 헤지펀드에 대한 부채 협상에 실패할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들어간다. 아르헨티나는 100% 상환은 불가하다며 디폴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30일이 만기였던 부채의 100% 상환을 요구하는 NML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 매니지먼트 등 미국 헤지펀드에 대해 협상 기간을 늘려달라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소송을 기각하고 헤지펀드의 편을 들었다. 아르헨티나는 이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13억 달러(약 1조3350억원) 전액을 7월 30일까지 지급해야 한다. 미국 측은 또, 아르헨티나 정부가 다른 채권자에 대해 오는 30일이 만기인 10억 달러를 상환하기 위해 미국 2개 은행에 공탁한 5억3900만 달러도 동결시켰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입장에 대해 서구 언론은 아르헨티나 경제의 신뢰도 추락, 경제에 대한 악영향, 협상에 성실하지 못한 정부의 문제 등을 내세우며 아르헨티나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 판결 후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아르헨티나 국가신용등급을 ‘CCC-’로 기존보다 두 계단 낮췄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위기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마저 아르헨티나가 판결에 따르지 않으면 국제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논평을 내면서 우려를 확대시켜 왔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는 미국 대법원이 명령한 것처럼 헤지펀드에 대해 채무 100%를 상환해야 할까?

군사정권이 낳은 부실채권 사들여 1300%의 수익 요구하는 벌처펀드

우선 아르헨티나가 2001-2년 디폴트 당시 가지게 된 부채는 850억 달러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채권자와 2005년과 2010년 2차례에 걸친 채무 조정을 통해 원금의 70-80%를 탕감하는 협약을 체결했고, 그 협약에 93%의 채권자가 참여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헤지펀드는 이 조정안을 거부한 나머지 7%의 채권자다. 이들은 2001년 부채의 원금과 13년 동안 불어난 이자를 합해 모두 13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당시 ‘벌처 펀드(부실 자산을 싼 값에 사서 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신탁 기금)’들은 1달러 당 단 몇 페니로 아르헨티나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이에 93%의 다른 채권자들은 부채 원금 탕감에 합의했지만 미국 헤지펀드는 지금 1300%를 초과하는 수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미 아르헨티나 대사 세실리아 나혼은 <포브스> 기고문에서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 디폴트로 아르헨티나가 이익을 본 것처럼 말하지만 “아르헨티나 민중은 디폴트의 수혜자가 아닌 희생자”라며 “불운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잠재적인 수익을 본 이들은 투기꾼들”이라고 고발한다.

부채탕감위원회(CADTM)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디폴트 전 벌처펀드가 사들인 아르헨티나의 채권은 3만 명이 실종된 폭력 정치를 벌인 군사 독재정권(76-83년)과 이들을 지원한 IMF, 세계은행, 파리클럽 등 국제기구/단체의 공모 아래 90년대 형성된 것이다. 이후 계속된 부채 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 공공자산은 사유화됐으며 결국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당시 부채는 GDP의 166%로 치솟았고 실업률은 21%에 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간적 자본주의’ 원한 아르헨티나에 자본주의 속성 드러낸 미국 대법원

아르헨티나 정부는 사실 이 같은 부채에 대해서도 국제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성실하게 상환해왔다. <타츠>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분석가들도 이 때문에 지난 10년 간 아르헨티나는 월스트리트의 주요 고객이라고 평가해왔다. 2002년 GDP 대비 166%였던 아르헨티나의 부채는 2012년에는 45%로 약 4분의 1로 줄어들었고 국가기관이 진 외채는 GDP의 14%, 외화공채도 9%일 뿐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래서 이번에도 “아르헨티나는 지불불능도 아니며 지불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미국 대법원이 정기적인 채무 상환마저 가로막았다”고 비판하며 미국 헤지펀드가 양보할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준 미국 대법원 판결은 결국 디폴트를 무기로 이러한 아르헨티나 정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해 미국 헤지펀드 뿐 아니라 다른 채권자와의 조정안도 재협상하도록 한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헤지펀드에 부채의 100%를 갚을 경우 채무조정안에 포함된 ‘채무자 동등조항(RUFO)’ 때문에 부채 원금을 탕감해주었던 채권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부채 전액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채탕감위원회는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보다 인간적인’ 자본주의에 베팅하고 있지만 그러나 (미국 법원은) 탐욕적이며 약탈적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지적한다.

부당한 부채 거부해야...“유일한 진짜 채권자는 민중”

그러면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에 처할 경우 어떤 결과가 따를까?

25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의 판결 전 달러 대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가치는 이미 11.65에서 12.60으로 올라갔다. 분석가들은 디폴트가 현실화되면 50센트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기침체, 인플레이션과 부족한 외환고도 악화될 수 있으며 경제 악화가 계속될 경우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25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미국 헤지펀드에 대한 지불을 거부해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다른 채권자에 지불하는 방법으로 미국에서의 법적인 문제를 회피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아르헨티나가 부분적인 디폴트에 처하더라도 국제자본시장에서의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군사독재 정권 시절 초국적 자본의 공모 속에 형성된 더러운 부채의 피해자는 결국 아르헨티나 민중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부채를 계속 상환해야 하는가는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부채탕감위원회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1983년 독재 정권의 몰락 후 이미 지난 30년 간 4000억 달러(약 410조원) 이상, 지난 10년 동안에만 1740억 달러를 부채 상환을 위해 지급해 왔다.

부채탕감위원회는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 후, 부채 지불에 대한 부분적인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회복하게 됐다”며 이는 “빚지지도 않은 채무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제기한다. “유일한 진짜 채권자는 민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따로 진행하고 있는 외채에 대한 심사는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은 2000년 7월 군사독재 정권 아래 형성된 부채에 대해 사기이며 임의적인 것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의 법원은 현재에도 이 부채의 부당성에 대해 계속 심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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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코프스키

    '인간적 자본주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