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토론회, 보수도 '신중론'... 교육부만 '머쓱'

참석자 대부분 "국정화 반대", 보수 측도 "국정제가 정답은 아냐..."

  교육부는 2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출처: 교육희망 이창열 기자]

교육부가 머쓱해졌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교육부가 관련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지만, 참석자들 대부분이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거나 신중론을 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대강당에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국정 교과서, 역사왜곡 가능성 상존"

역사학계를 대표해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들은 대부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한국사 교과서 검정 발행제의 개선방안’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역사적”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익주 교수는 역사를 ‘선택과 해석의 학문’으로 정의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존재한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선택되고 해석된 결과물이란 얘기다.

이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결코 단일할 수 없으며 역사학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이 다양성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교육은 학문적 성과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역사 교과서 또한 단일화될 수 없고, 단일화돼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어 자국사를 교육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교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그 때문에 역사왜곡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몇몇 전체주의 국가를 제외한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정 교과서에서 검정 교과서로 바뀐 것은 민주주의 투쟁을 통한 소중한 성과물이었다”며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 못잖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는 ‘교육의 다양성’ 해친다"

최병택 공주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교과서를 국정화하게 되면 교육의 획일화, 교과서의 질 하락, 교과서 집필 제한 등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최 교수는 “검정제 도입 이후 이런 문제점들은 일부 완화됐다. 교육당국도 ‘다양한 교과서’, ‘창의성 있는 교과서’, ‘가독성 높은 교과서’ 발행에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국정제가 아니라 검정기준과 심의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한발 더 나가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교과서를 집필하는 학자와 교과서로 수업하는 교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이라며 “민주화와 세계화, 선진화의 길을 앞서 걷고 있는 선진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결코 남의 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보수 측 토론자도 "신중론"

보수 측 입장을 대표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일부 발표자들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펼친 반면, 다른 발표자는 분단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는 ‘불가피론’을 펼쳤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과서 구분 준거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보수 측의 시각을 대변했다.

홍 교수는 “국사는 이데올로기 과목이고 가장 이념적인 과목이므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교과서에 당대사를 포함하면 안 된다”며 “국정 교과서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능한 단일한 교과서로 배우는 게 좋다”고 국정 교과서를 에둘러 옹호했다.

홍 교수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교육 브레인’으로 통했다. 홍 교수는 집중이수제를 이 장관에게 직접 제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집중이수제는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교육현장의 거센 반발로 폐기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손꼽힌다.

역시 보수 성향의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 대표는 “한국사 교과서 검인정과 자유발행제에도 찬성하지만, 분단시대의 특수한 현실을 인정하면 현행 검정제의 폐해에 비해 국정제가 현실적으로 유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국정제가 정답은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다.

교육부는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교과서 발행체제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9월에 공청회를 한 차례 갖고 10월 중으로 교과서 발행체제 구분 고시를 공고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늘 토론회는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전문가의 의견과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했다”며 “토론회와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진행해 일방적으로 국정화를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시민단체들 “국정 교과서 반대” 집회

한편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은 이날 토론회에 앞서 국사편찬위원회 정문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가가 할 일은 검정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일”이라고 전제하고 “국가의 이름을 빙자해 정권이 직접 교과서를 집필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신독재의 상징과도 같던 국정 교과서로 회귀하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한상권 (덕성여대.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교수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과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정동익 사월혁명회 의장 등이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기사제휴=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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