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기획2] 사라진 사람들...일상의 참사, 산재사망

[편집자주] 울산지역 조선 사업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올들어 7월까지 8명이다. 한 달에 한 명 꼴이다. 이 중 6명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서 사망했고,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사고는 이어지는데 대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올해에 발생한 사망사고만 봐도 고용노동부는 사고 이후에야 미비한 안전시설을 갖추도록 행정지시 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3월에 안전시설을 갖추면 다음 달엔 안전시설이 없는 다른 곳에서 사고가 났다. 사후약방문이 따로 없었다.


“피곤할테니 쉬라”는 통화가 마지막
5년만 고생하자며 울산 간 남편


  김희정 씨가 숨진 남편을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용석록 기자 [출처: 울산저널]

남편 홀로 울산으로 내려간 지 보름 가량이 지났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남편과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시댁 조카가 결혼한다. 금요일 저녁 8시 무렵, 동생에게서 결혼식에 입고 갈 한복을 빌려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작업이 일찍 끝났다고 남편은 말했다. 매일 밤 11시나 되어야 끝나는 작업이었다. “피곤 할 텐데 쉬어”

김희정(46)은 다음 날 오전 청소를 끝내고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전날은 두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먹고 사는데 치여 기념일도 깜빡해버렸다. 점심시간에 남편에게 기념일을 일깨워줄 참이었다.

남편은 10여 년전 부산 구포시장에서 이불 점포를 하던 이모(강애숙, 54)가 소개 시켜줬다. 남편은 이모의 점포 위층에서 생활용품을 팔았다. 애숙은 누구보다 착실하게 일하는 목포 총각을 눈여겨봤다.

부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큰 아들(17)은 이제 엄마가 의지할 수 있을 만큼 컸고, 작은 딸은 14살이 됐다. 남편은 딸을 낳고 얼마 안 되서 마트 일을 접었다. 그리곤 큰 형님을 따라서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남편은 샌딩(블라스팅)공이 됐다. 샌딩은 건조 중인 선박 표면 흠집을 제거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서 연마재를 사용해 도장이 용이하게 하는 작업이다.

남편이 하는 일은 어느 한 업체에 고정되지 않았다. 규모가 큰 조선업체는 샌딩공을 굳이 정규직으로 뽑지 않았다. 업체들은 필요할 때마다 하청업체나 팀으로 움직이는 작업자들에게 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맡겼다.

남편은 일 따라 조선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떠돌아다녔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는 어머니가 있는 목포에서 일했다.

목포에서 일은 몸은 고되고 임금은 박했다. 그래서 남편은 5월부터 아는 형님을 따라 해남에서 ‘특도(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작업량을 처리하는 일)’ 일을 하기로 했다. 특도 일을 하면 한달 만 해도 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남편은 특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4월 한 달 동안 쉬면서 몸 관리를 할 생각이었다. 작업 현장이 거칠어서 크고 작게 다치는 일이 잦았고, 작업할 때 사용하는 샌딩기에서 분사되는 모래는 자주 눈에 들어갔다.

4월초, 쉬고 있는 남편에게 친한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울산에서 현장을 맡게 됐다는 친구는 남편에게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다. 고민 끝에 남편은 특도 일을 하는 대신 울산에 가기로 했다.

울산에 내려가며 남편은 “5년만 열심히 돈 벌어서 가족끼리 모여서 살자”고 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버리고 딸과 아내만 남아 있게 될 걸 미리 걱정한 말이었다. 남편은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감기라도 걸릴라 치면 다 큰 딸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내달리는 남편이었다.

울산에서 남편은 좋아하는 술도 줄이고, 주말도 없이 일했다. 다음 주 조카 결혼식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오후 12시 무렵 남편에게 전화를 걸기도 전에 희정이 쥐고 있던 휴대폰이 먼저 울었다. “정범식(43)씨가 사고를 당했어요” 회사 직원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일 잘하던 동료는 ‘리모컨이 말썽’이라 했다

(1면에서 계속) 송기마스크(작업자를 가스, 증기, 공기 중 부유물 또는 산소결핍 공기 흡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마스크)를 벗고, 두건과 마스크만 착용한 정범식과 눈이 마주쳤다. “샌딩기 리모컨이 말을 안듣는다”

첫 작업 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범식이 말했다. “리모컨을 통째로 바꾸지 그러냐”, “한 타임만 더 해보지 뭐”

박진국(45, 가명)은 ‘리모컨이 계속 말썽을 부리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작업에 열중했다.

진국은 7, 8년 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에서 특도를 하면서 범식을 만났다. 단단한 체구의 범식은 일을 깔끔하게 잘했다. 작업장에서는 묵묵히 일에만 집중했고, 특별한 불만도 표출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처리해냈다. 특도 일을 하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작업량을 맞춰나갔다.

둘은 샌딩공 중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팀장이나 반장을 여러 번 번갈아 맡았다. 지난번에 범식이 부산에서 현장을 맡아 일 할 때 범식은 진국을 부산으로 불러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진국이 현장을 맡아 범식을 울산으로 부른 참이었다.

범식은 현장에선 과묵했지만, 현장 밖에서 술잔을 기울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곤 했다. 가끔 화상통화를 하면서 서로 자기 아내를 보여주며 어린 아이 같은 장난을 칠 수도 있는 친구였다.

4월 26일 토요일 이날 진국은 선암동 집에서 출근해 오전 6시에 작업장에 도착했다. 미리 작업장을 살펴 가(假)도면과 오더를 준비하고 동료들을 기다렸다. 범식은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다른 동료들과 7시쯤에 작업장에 들어왔다. “잘 잤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담배를 태운 뒤, 진국은 동료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렸다.

첫 타임(오전 8시~10시) 작업이 끝난 후 범식이 리모컨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샌딩 작업을 할 때는 리모컨 두 개를 들고 한다. 하나는 어두운 작업장을 밝혀주는 등불 리모컨이고, 다른 하나는 주요 작업 장비인 샌딩기 리모컨이다. 강한 모래를 분사하는 작업 특성상 리모컨은 자주 모래가 스며들어 말썽을 일으켰다.

‘깜빡, 깜빡, 깜빡’ 범식이 지나가고 10분쯤 지난 뒤 작업 중지를 알리는 신호를 누군가 보내왔다. 진국은 마무리 되어가는 작업만 완료하고 내려갈 생각으로 작업을 서둘렀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 또 다시 작업 중지 신호가 보였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진국은 서둘러 작업을 벗어났다.

윤승균(32, 가명)이 한 곳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마스크와 두건만 두른 작업자가 송기마스크에 공기를 공급하는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매달려 있었다. 진국은 서둘러 승균에게 작업자를 안아 받치도록 하고 커터 칼로 호스를 잘라냈다.

바닥에 내리고서야 확인한 작업자는 조금 전 그와 눈을 마주쳤던 범식이었다. 범식은 작업복장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손은 작업용 장갑을 꼈고, 장갑과 손목 부위에는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테이프도 감은 그대로였다. 당장이라도 일 하러 가자고 할 것만 같은 모습으로 범식은 누워있었다.

남편이 죽었다
경찰은 자살 이랬다


희정은 울산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 있었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전화기 넘어 직원이라는 사람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범식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도착만 하면 신랑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희정의 요청에 직원은 알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병원 관계자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제 그만하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안 된다고, 내가 갈 때까지 제발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어요. 정말 이렇게 갈 사람은 아니라구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울산으로 내려가는 택시 안에서 희정은 또 다른 전화를 한통 받았다. “언니, 이상해. 인터넷에 형부가 자살했다고 나오는데…” 희정은 무슨 말이냐며 그럴 리 없다고 인터넷을 확인했다. 언론은 경찰이 자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찰 초동 수사 후 3시간쯤 흐른 뒤였고 아직 사체 검안을 하기도 전에 나온 소식이었다.

장례를 치룰 수 없었다. 경찰과 언론은 자살 가능성을 계속 언급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사내하청 노조는 사고사라고 했다. 목격자는 없고, 범식은 말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희정은 눈물만 흘렸다.

일주일이 흘렀다. 남편이 몸담았던 하청업체 사장은 알아서 사고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지금 합의하지 않으면 합의금은 줄 수 없다고도 했다. “시간 더 끌면 힘들어진다”, “범식이가 꿈에 나와서 보내달라고 하더라” 시댁 어른들의 말에 희정은 합의서에 서명했다. 희정은 남편을 화장해 집 가까운 납골당에 안치했다.

장례를 치룬 이후 경찰은 범식의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경찰 수사 결과는 ‘자살’이었다.

  정범식 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 ⓒ현대중공업 노조

40년째 끊이지 않는 조선소 사망사고
올들어 조선소 8명 사망...‘사후약방문’식 대처만


울산지역 조선 사업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7월 현재까지 8명이다. 한 달에 한 명 꼴이다. 이 중 6명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서 사망했고,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는 "죽음의 조선소"라고 불릴 만큼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울산지역노동자건강대책위원회는 5월 13일부터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앞에 거리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산재사망사고의 책임을 이재성 현대중 대표이사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에서는 옛날부터 사망사고가 잦았다. 1974년부터 10년 동안 현대중에서 근무했던 한 노동자는 "이틀에 세 명이 죽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했다"며 "숙련공이 없었고, 공정 이해도도 떨어져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집계하고 있는 연도별 사망자현황을 보면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1년 동안 매년 최대 23명, 최소 12명이 죽었다(과로사 추정 포함). 올해 5월까지 집계된 전체 사망자는 388명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숫자가 정확하다고 믿지 않는다.

사망자는 직영 노동자를 대상으로만 집계됐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는 확인할 수 없다. 하청 노동자의 죽음이 처음 집계된 건 1993년부터다. 언론도 이들의 죽음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초기 조선소는 안전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 의료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금은 현대중공업 바로 앞에 대학 병원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가장 큰 병원까지 가는데 1시간이 걸렸다.

40년이 흘렀다. 안전 의식도 강화되고 의료시설도 보강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망사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마다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는 것은 사망사고는 항상 한 가정의 가장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기둥을 잃은 유족이 억울한 죽음과 문제점을 밝혀내기에 상대는 너무 큰 기업이다.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관계기관은 무력하다.

올해에 발생한 사망사고만 봐도 고용노동부는 사고 이후에야 미비한 안전시설을 갖추도록 행정지시 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3월에 안전시설을 갖추면 다음 달엔 안전시설이 없는 다른 곳에서 사고가 났다. 사후약방문이 따로 없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근로감독관은 "사망사고에 대한 기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조선소에서만 20년째 일하는 한 노동자는 "힘없는 서민이 어쩌겠나. 결국은 자기가 안 다치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관계기관의 무력함과 작업자들의 체념 속에서 사망사고는 '재수 없는' 개별적 죽음으로 치부된다. 사업주는 개별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주는 것으로 문제를 마무리 짓고, 죽음은 계속 일어난다.

정동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기본적으로 작업자들 사이에 사고는 당사자 부주의나 실수 때문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며 "몇 십 년 동안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소 산재사고 특성...사고 대부분 비정규직에 몰리고
안전시설 미흡해 추락사 많아


올해 들어 발생한 조선소 사망사고의 피해자는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사고 유형은 추락 사고가 많았다. 정규직 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많이 쓰고, 10층 높이 고층 건물 보다 큰 선박을 건조하는 사업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3, 4월 두 달 간 발생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사망자 6명 중 2명(화재)을 제외하곤 모두 추락으로 숨졌다(정범식 씨의 사고는 경찰은 자살, 유족은 추락 사고사로 주장한다). 7월 발생한 세진중공업의 사망사고도 추락 사고였다.

추락 사고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바다에 추락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지면에 추락하는 경우다. 추락 즉시 중상을 입고 사망할 위험이 높은 지면 추락에 비해 바다에 추락하는 경우 빠른 구조 작업이 이뤄지면 생존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재해자가 무거운 작업화, 작업 장비, 헬멧 등을 착용한 상태기 때문에 사고 즉시 구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익사할 위험성도 크다. 지난 3월 25일, 4월 28일에 발생한 사망사고는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다.

3월 25일 현대중공업 14안벽 드릴쉽 건조현장에서 족장 하선 작업 중 바다에 추락한 김종현 씨(52)는 사고 발생 1시간 만에 인양됐다. 사고 발생 이후 40분이 넘도록 119에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작업자들은 사내 잠수부가 현장에 도착하기만 기다렸다.

김백선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국장은 “119 신고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하청업체에는 사고는 사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암묵적 묵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백선 사무국장은 “심지어는 사내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것도 싫어하는 하청업주가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재해를 입고 사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업주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4월 28일에 발생한 사망사고는 구조로프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으면 구조 할 수 있는 사고였다. 트랜스포터 신호수 김정식 씨(38, 가명)는 신호 작업 중에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이는 그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구조로프를 구하러 간 사이 김씨는 가라앉아버렸다. 중공업은 이 사고 이후에 안벽마다 구조로프를 정비했다.

지면 추락 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 난관대가 없어서 발생한다. 4월 7일 현대미포조선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난관대가 없어 발생했다. 하지만 회사는 작업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라는 주장을 펼치다가 나중에야 안전설비 미흡을 시인했다.

부산고용노동청은 현대중공업에서 잇따른 사망사고가 일어나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특별근로감독에서 현대중공업은 추락위험, 전기재해, 화재 폭발, 미끄러짐, 끼임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는 사안 562건을 지적받았다. 이중 83건에 대해서는 과태료 10억원을 부과했다.

앞서 2013년에도 현대중공업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182건을 지적받고 과태료 2,871만원을 부과 받았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노동자 8명이 산업재해 및 과로사로 사망했다.
덧붙이는 말

이상원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