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자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

[오늘, 우리의 투쟁]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최일배 위원장 인터뷰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2005년 2월 21일 정리해고 이후 10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가 8월 18일부터 다시 코오롱스포츠 전국 매장 앞 1인시위로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집중 불매투쟁에 나섰다. 2012년 5월 11일, 끝장투쟁을 선언하고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친 후 열 번 넘게 계절이 바뀌었다.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을 만나 긴 투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3.5.10. 천막농성 1년·코오롱투쟁 3,000일 투쟁대회 [출처: 뉴스셀]

2004년도 64일 파업부터 2005년 2월 정리해고까지,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준비 안 된 전면파업을 하고 현장의 패배감과 상실감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8월에 임단협 마무리하면서 구조조정하지 않는다고 합의하고서, 현장이 무너진 게 보이니까 11월부터 슬슬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조가 거기에 대해서 전혀 대응을 못했었다. 당시에 이게 아닌데 싶고 속이 너무 답답했었다. 몰랐었다면 넘어가겠지만 나름 노조간부 했었다고, 알고도 뭘 안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회사가 인원 감축이며 노조 힘 빼기를 다 했는데도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으니까, 거기서라도 저지선을 치고 싸워야 된다는 판단이었다. 유인물 써서 소위원들한테 제안해서 같이 뿌리기도 하고, 두 번째는 부담스러워들 해서 내 이름으로 뿌리기도 했다. 현장이 완전히 몸 사리는 분위기였지만, 회사가 얻을 거 다 얻었기 때문에 굳이 정리해고라는 무리수까지 둘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회사는 계속 밀어붙이고, 노조 간부들이 흉내내기 철농하고 위원장 단식하고 하더니 2월 1일에 509명 인적 구조조정 합의서를 쓴 거다. 2월 17일에 정리해고 통지서가 도착했는데, 굉장히 충격이었다. 딱 받았을 때, 화가 났다. 겁나고 두렵고 이런 것보다 분노가 더 컸다. 사람들이 그만큼 나가고 노동조합이 임금까지 다 양보하고, 회사가 얻고자 하는 모든 걸 다 얻어놓고도 이렇게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이. 정리해고일인 2월 21일에 50명이 모여서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코오롱정투위를 구성하고 노동조합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 과정과 이후 활동은 어떠했는가.

사실 당선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그런데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울분이 있었다. 유세는 부서별 교대 조회시간을 할애 받아서 다른 거 얘기 안 하고 딱 두 가지. 회사가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냐, 싸움은 우리가 하겠다, 감정에 호소했다. 회사가 이미 현장을 다 장악한 상태였고 당선은 사실 있을 수 없는 결과여서, 우리조차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기쁜 건 순간이었고 엄청 부담스러웠다. 만약에라도 당선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아예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다.

8개월 동안 회사가 인정 안 하는 무늬만 위원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준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선되고 회사가 인정해주지 않았을 때 집행부로서 어떤 싸움을 만들어갈지 계획이 전혀 없었던 거다. 회사가 엉뚱한 거 핑계 삼아서 당선을 인정 안 하니까,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게 거기에 말려버렸다. 시청에 가서 왜 등록필증 안 내주냐고 하고, 굉장히 소모적인 거다. 가을엔가 나왔지만 별 의미가 없었던 건데. 어차피 얘들은 끝까지 인정해주지 않을 건데.

더 아쉬웠던 건 노조위원장 이‧취임식을 공장 정문 앞에서 했다는 거다. 원래 노조의 중요한 행사는 보통 공장 안 민주광장에서 하는데, 회사가 막을 거라는 생각에 전혀 부딪쳐볼 생각도 못하고. 막으면 싸우면 되고 그런 거였는데, 당시에는 어떻게든 인정받기 위한 수세적인 싸움들을 한 거다. 용역하고 맨날 싸우고 부딪히고 막히고, 조합원들이 보기에 용역도 못 뚫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는 것 같은 피해의식이 자꾸 커지다보니까 위축이 된 거다. 정말 한 번 붙어볼 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일 아쉽다.

정리해고 이후 1~2년은 극한투쟁의 연속이었다. 회장 집까지 들어갔다가 다치고 구속되는 유례없는 투쟁도 했다. 그렇게까지 싸운 이유가 무엇인가.

정리해고 되고 1년쯤 싸우면서 해를 넘기는데도 해결 기미가 안 보이니까 정투위 내부에 불안과 조급증이 생겼다. 선거에 당선돼도 안 되는데 이게 뭐 되겠나? 흔들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구미시청 앞에서 단식 시작하고, 17일째에 세 동지가 공장 안 송전탑에 올라갔다. 공단 지역에서 중요한 송전탑이고 전류도 흐르니까 길게 갈 싸움이라고 생각 안 했는데 길어지니까 또 조급해지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그냥 내려올 수는 없고, 뭔가 만들어야 하겠어서 3월초에 과천 본사 로비 점거를 했다. 우리는 점거한다고 했는데 직원들은 출근 다 하고 업무 정상적으로 다 보고 그렇게 쪽팔리게 3일 있다가 면담하자고 올라가다가 막혔다. 위에 올라간 동지들 내리기 위해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생각한 게 회장집이었다. 회장하고 담판을 지어야겠다, 본사 면담투쟁은 실패했고, 그러면 집으로 가자. 회장집이 어딘지도 어떤 조건인지도 몰랐고, 가서 마찰 안 생기게 놀라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그렇게 하면서 넘어가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갔더니 공사를 하고 있는 바람에 펜스 틈이 있어서 그리로 들어간 거다. 들어가서 회장은 만나지도 못하고 다 연행되고. 나는 진짜 그때 정말 절박했었다. 이거 외에는, 다른 거는 전혀 뭐. 회장집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들어가서는 어떡할까 뭐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고.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거니까.

  2014.3.25. 코오롱정투위, 코오롱 투쟁승리 결의대회 [출처: 철폐연대]

2012년 5월 11일 ‘끝장투쟁’을 선언하고 시작한 과천 천막농성도 오래 됐다. 올라올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을 싸가지고 과천으로 올라올 때는, 당연히 이 짐은 싸움이 끝나야만 풀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이미 8년 이렇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천막 쳐보고 안 되면 내려갔다가 다음에 또 치지 이렇게 할 게 아니었고, 이 천막이 마지막 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관도 그런 의미였고, 끝이 나지 않으면 여기서 뼈를 묻겠다, 이런 마음. 오래 가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더 길게 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사실 제일 답답한 게, 명확하게 어떤 택을 쓰면 끝낼 수 있겠다 하는 게 이제는 없다. 예전에는 통했던 투쟁들이 지금은 별로 효과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래도 그런 고민들은 늘 갖고 있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싸움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실천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싸움을 끝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

정작 2012년에는 공투단 활동에 매진했다. 코오롱투쟁 못지않게 연대투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어떠한가.

과천에 올라온 계기가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것과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하다 보니까 같은 투쟁사업장인데도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알려야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사실 있었다. 구미에서 계속 투쟁하는 게 코오롱에 제대로 전달도 안 되고, 본사 앞에 천막을 치는 게 우리 투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굳이 천막 지키는 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서울에서 투쟁사업장 동지들이랑 공동투쟁하면서 이 국면을 개별사업장의 싸움만으로는 절대 돌파할 수 없다는 걸 또 다시 느끼고 깨달은 것도 있다. 나만이 아니라 동지들도 느꼈을 거고 공동투쟁의 의미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7월에 공투단이 구성될 수 있었다.

물론 내 투쟁도 급하지만, 공투단이랑 같이 싸우고 대한문 분향소 지키는 싸움하면서는 그게 또 내 투쟁이 되는 거다. 그렇게 투쟁하면서 코오롱투쟁도 더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과천에서 천막치고 내 것만 하고 있다면 우리 투쟁을 몰랐을 동지들도 알게 되고. 그리고 만약 내가 머리로 학습을 했으면 흉내내기 연대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싸우면서 그것이 맞다는 걸 나름 몸으로 학습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이해관계라든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는 거다. 사실 오래 싸운 사람들, 정말 동지적인 싸움을 통해서 그것이 몸에 배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거다. 그러면서 다른 사업장의 작은 승리 속에서 자기가 더 희열을 느끼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구성된 공투단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거였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코오롱스포츠 불매운동을 전면화하고 있다. 불매투쟁을 고민한 이유,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질적으로 자본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자본에 타격이 되어야 하는데, 다양한 투쟁 전술이 있겠지만 지금 현재의 코오롱정투위의 조건에서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뭐가 있을까 고민했던 것이고. 인원이 되면 물리적으로라도 자본에 부담을 줘서 교섭의 물꼬를 틀 수 있겠지만, 주체들의 동력도 안 되고 연대 단위로만은 불가능한 거니까 불매 투쟁을 고민하게 됐다. 아웃도어 제품시장이 팽창하고, 코오롱스포츠가 공격적 마케팅을 하면서 매출이 계속 신장되고 이런 점도 고려해서 판단한 거다. 2005년 정리해고 이후 코오롱 불매를 했었는데 몇 달 만에 실패했던 이유가,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였다. 이번에는 아예 코오롱스포츠 하나만 집중해보자, 주요고객은 등산객이니까 산에 가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그래서 작년 4월 불매투쟁 시작하면서 불매등반도 조직했고, 그게 굉장히 호응이나 반응이 높았던 거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을 했었던 것이다.

코오롱스포츠 불매등반하면서 SNS 중심으로 인증샷들도 많이 올라오고 알려지기도 하면서, 코오롱이 봤을 때도 부담이 됐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막으려고 102개 산 가처분신청을 한 거다. 말도 안 되고 황당한 가처분인데, 그런 걸 했다는 건 그만큼 부담이 됐다는 거고. 이번에 천막 치고 정문 앞에서 피케팅을 해도 사측 관계자가 전혀 아는 척도 안 했었는데, 불매투쟁 이후에 노무담당 관리자가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불매 효과가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2013.5.28. 불매투쟁에 대한 '엽기적' 가처분신청 규탄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불매운동과 관련해 느끼는 한계나 우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여전히 불매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해 봐야 소용 있나? 효과 있나? 그런 게 많고, 실은 투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냥 한 번 해보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마지 못 해 그거라도, 그 정도다. 그래서 민주노총 중집에 두 차례나 제안을 했던 것이고, 버튼이나 현수막도 만들고 불매등반도 조직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을 한 거다. 사실 시민들 대상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건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불매의 바람이 조직적으로 확산되는 거다. 실질적으로 지역의 단위노조까지 전달이 되어야 효과가 있을 텐데, 보통 중집에서 제안하면 지역별 본부장이나 산별 연맹위원장 정도까지 공유가 된다. 그러다보니까 기아차지부 같은 사태도 발생하는 거다.

또 한 가지 굉장히 아쉽고 지금도 내가 답답한 게,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결의로서 의미를 담고. 실제 지역 간부들이나 단위노조 대표자회의 자리에 가서 불매의 의미나 효과를 직접 설명하고 호소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거다. 사람이라도 한두 명 여유가 있으면 아예 순회팀을 꾸려볼 텐데. 그런 생각하면서, 과연 할 수 없는가? 내가 지금 천막에 혜란 동지랑 한두 명 있다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는 나 자신한테도 짜증이 난다. 바쁘니 뭐니 하지만, 진짜 불매가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만사 제치고 거기만 집중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한편으론, 우리의 싸움이 내 싸움이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지는 지 불매 집중해야 된다고 만사 제쳐놓고 그것만 하는 건 이율배반적인 것 아닌가? 복잡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

민주노총·화섬연맹과 함께 다시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을 선언하고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어떠한가.

지난 한 달 동안 민주노총 전체 가맹·산하 단위노조에서 조합원 선물용으로 코오롱스포츠 용품을 구입하지 않고 불매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담은 선언문 팩스 보내기를 진행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여전히 코오롱정투위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다시 시작되는 불매캠페인도 함께하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8월 18일, 청담동 코오롱스포츠 플래그십스토어 앞에서 전국 매장 앞 1인시위 및 주요도시 불매캠페인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번 투쟁을 다시 진행한다. 기존의 불매운동이 산행을 중심으로 투쟁을 알리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매장 앞 1인시위를 통해 좀더 직접적으로 코오롱에 타격을 가하는 투쟁이다. 일단 집중적으로 한 달이지만, 코오롱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도 계속될 것이다.

  2014.8.18.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 선포 기자회견, 청담플래그십스토어 [출처: 철폐연대]

2012년 끝장투쟁을 결의할 때 15명이었던 코오롱정투위에는 이제 12명이 남았다. 그 중 한 사람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8월에는 두 사람이 활동을 정리했다. 그야말로 희노애락을 함께했을 동지들이 하나씩 떠날 때 남은 이가 느끼는 마음이 어떤 것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전망 없는 싸움의 날들이 때로는 견딜 수 없는 ‘희망고문’이 되고, 그럼에도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묻어둔 채 투쟁을 이어가기 위한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죽는 것 빼고는 다 해봤다는 투쟁사업장이 한둘이 아니다. 코오롱정투위 역시 마찬가지다. 법정투쟁 패소와 무너진 현장에도 굴하지 않고 10년을 싸워온 동지들, 10년 동안 안 해 본 싸움이 없는 동지들이 정리해고 철회의 마지막 승부수로 ‘코오롱스포츠 불매’ 투쟁을 다시 선포하고 함께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무더위는 지나갔고 찬바람은 아직이다. 마음을 내고 몸을 움직이자. “정리해고자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며 쉼 없이 투쟁하는 동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기회다. 이번만은 놓치지 말고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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