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연금삭감’은 ‘임금삭감’...‘저임금 나쁜 일자리’ 만들기

[공무원연금③] “국민 노후 보장 없이 ‘공무원’ 연금만 깎으려 들어”

공무원 A씨는 최근 기분이 뒤숭숭하다.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으로 ‘연금 20% 삭감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보도가 들리면서부터다. A씨는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하고 있다. 1980년 9급으로 입직했으니 햇수로만 35년 차다. 초봉 10만 원 정도를 받으며 9급 공무원 생활을 했고 지금은 6급으로 승진했다. 작년 봉급은 세전 5,6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국민 노후 보장할 생각 없이 ‘공무원’ 연금만 깎으려 들어”

A씨는 현재 약 1억 5천만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집을 마련하고,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끌어다 쓴 빚이었다. 큰 아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 아들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가 둘이라 7~8천만 원 무이자 학자금 융자를 받았다. 매달 47만 원씩 갚아야 하는 돈이다.

다른 동료들도 이 정도의 빚은 통상적으로 갖고 있다. 1천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도 동료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특별히 생활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넉넉치도 않다. 그래서 동료들도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주변 동료 남성 직원들의 부인들은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A씨가 퇴직을 할 경우, 현재 기준으로 약 240만 원 정도의 공무원연금이 나온다. 하지만 20% 삭감안이 현실화될 경우 190만 원 남짓한 연금을 받게 된다. 얼마 전 퇴직한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배들은 ‘퇴직 후에도 아파트 관리비, 경조사비, 자녀 출가비 등 쓸 돈이 너무 많다. 250만 원 정도의 연금으로도 살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연금 삭감 보도와 함께 인근 구청 공무원들의 퇴직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변 동료들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A씨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1위다. 최근 기사를 보니 65세 이상 노인들이 월 250만 원 정도가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퇴직 후 월 250만 원이 가능한 직업은 유일하게 공무원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전 국민을 공무원 수준으로 보장해 줘야지 되려 공무원 연금을 깎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공무원들을 ‘철밥통’이라며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억울하다. A씨는 지금도 매번 토요일, 일요일 근무를 한다. 주5일 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규정상 초과근로수당은 4시간 치밖에 지급받지 못한다.

A씨는 “자치단체에서 주민을 위한 행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말에 행사준비 및 진행, 마무리작업까지 8시간 이상 일을 할 때가 빈번하다. 하지만 수당은 4시간 치밖에 받지 못한다”며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민원인들이 막무가내로 폭언을 일삼기도 하지만 공무원은 대민친절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나의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연금삭감’은 ‘임금삭감’...정부의 ‘저임금 나쁜 일자리’만들기

퇴직 후 공무원들이 지급받는 ‘공무원연금’은 ‘후불임금’의 성격이 강하다. 재직 시 낮은 임금과 퇴직수당, 각종 제약 등을 연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이다. 공무원 퇴직수당의 경우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 퇴직금의 9~39% 수준이다. 때문에 공무원들은 정부의 ‘공무원연금’ 삭감안을 사실상 공무원 임금삭감 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민간부분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공무원들의 저임금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2012년 기준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는 27세 평균임금은 275만 원 가량이다. 반면 27세의 9급 공무원 평균임금은 200만 원으로 민간기업보다 약 75만 원을 적게 받는다. 민간기업과의 임금수준 격차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욱 심화된다.

36세의 민간기업 노동자 평균임금은 426만 원인데 반해, 같은 나이 9급 공무원의 평균임금은 326만 원으로 100만 원 가량의 격차가 벌어진다. 49세를 전후해서는 약 140만 원 정도까지 격차가 발생한다.

지난해 12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공무원보수체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30세부터 60세 정년퇴직 때까지 받게 될 9급 입직 공무원의 생애임금은 15억 5,183만 원이다. 5급 입직은 22억 6,454만 원, 7급 입직은 17억 9,927만 원 정도다. 반면 민간부문의 생애임금은 19억 5,661만 원이다. 결과적으로 9급 입직 공무원은 민간부분 생애임금보다 4억 478만 원(20.7%)을, 5급 입직 공무원은 3억 793만 원(15,7%)을 적게 받는 셈이다.

9급 공무원의 실태생계비 평균은 대졸이상 사무관리직의 평균보다도 낮다. 2012년 기준 30대 초반 대졸이상 사무관리직의 월평균 실태생계비는 278만 원이며, 9급 입직 공무원의 월평균 보수는 268만 원이다. 30대 초반에는 10만 원 가량의 차이가 나지만 30대 후반에는 21만 원, 40대 초반에는 46만 원,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는 70~74만 원으로 격차가 확대된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재직 중 영리행위 금지 및 취업제한, 정치활동 금지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 임금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민간의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은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하지만, 공무원들의 보수는 법령에 의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공무원노조는 지난 2007년 정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보수교섭을 추진한다는 합의를 이뤄낸 바 있으나, 현재까지 단 한 차례의 보수 관련 교섭이 이뤄진 바 없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삭감’ 정책은 결국 공무원들의 임금삭감과 ‘나쁜 일자리’ 굳히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용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공무원들은 낮은 임금 뿐 아니라 시간외 근로수당도 보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권의 제약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선결 조건 해결 없이 무조건 공무원연금을 축소시켜 경제 활성화를 하겠다는 것은 농간에 불과하다”며 “공무원노조는 사실상의 임금삭감인 공무원연금 삭감에 맞서 생존권 쟁취를 위한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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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라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