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쿠데타

[기고] 1973년 칠레에서 벌어진 그 우익테러

1973년 9월 11일. 이번엔 미국 뉴욕이 아니라 칠레 산티아고다.
아옌데 칠레 정부가 이 날 실각했다. 아니 참수 당했다. 아니 칠레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그가 머물던 모네다 대통령궁이 군인들로 에워싸여 박격포가 날아오고 기관총이 비 오듯 쏟아지고.... 아옌데 대통령은 총을 들고 항거하다가 결국 머리가 짓이겨지는 총상을 입고 죽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한 것으로 공식 발표됐다.

  모네다 대통령궁 앞에서 연설하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그 날 바로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라는 암호명으로 시작된 쿠데타는 선거로 집권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미국 정부와 칠레의 우익 군부, 그리고 칠레의 국내 자본들의 협공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서방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는 그를 추인해줬다. 그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작전을 배후 조종한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닉슨 정부 하에서 미국 외교정책을 거의 입안하다시피 한 헨리 키신저였다.

1970년 3월 25일, 그러니까 칠레 쿠데타가 있기 바로 3년 전, 그리고 선거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려는 초유의 순간, 워싱턴에서는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위원장이었던 '40인 위원회'가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의 주 안건은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 저지, 그리고 집권 저지에 실패할 경우 아옌데 정권의 전복을 위한 행동 계획 수립 등이었다. 이후 40인 위원회는 인민연합과 아옌데 정부에 대한 흑색선전 지원을 위해 총 800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했고, 백색테러를 지원했으며, 칠레 내 우파 언론을 배양했다. 그들의 최후 목표는 아옌데 정부 전복이었다.

1973년 9월 11일 그 날 모네다 궁전뿐 아니라, 시내 도처에서 검거선풍이 벌어지고, 거리에서 가두전투가 벌어지고, 3만 명이 죽었다. 그 쿠데타가 죽인 민간인이 3만 명이었다. 그 죽음가운데에는 민중가수이자 '누에바 깐시오네'의 기수였던 빅토르 하라도 있었다. 정말 이런 쿠데타도 전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쿠데타는 군인들 자기네들끼리 죽고 죽이는 약간의 인명 살상 끝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게 바로 아담 쉐보르스키가 말하는 '권력 엘리트'내의 강온 충돌이다. 근데 그 충돌이, 가끔은 온건파의 선 공격으로 시작되어 온건파가 권력을 잡으면, 갑자기 '민주주의'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모네다궁엔 화염이 타올랐다. 바로 28년 후인 2001년 뉴욕 맨해튼이 '외부'의 테러로 폭격을 당한 그 날처럼. 단지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히면서 내는 매캐한 연기와 분진은, 대포와 총탄의 쇳내나는 내음과 폭발음으로 바뀌었지만.

  1973년 9월11일 모네다 궁을 포위한 쿠데타 군인들
하지만 누가 과연 테러리즘의 정수였을까.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비행기와 함께 날아간 2001년의 9/11 테러리스트들? 아니면 칠레의 아옌데 정부 실각을 배후 조종하며 국가테러의 시대를 열게 한 미국의 닉슨정부와 국가안전보좌관으로 당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던 키신저? 그리고 미국이 배후에 있던 전미 전신전화(AT&T)- 즉 미국 국적 기업으로 칠레 내 전기통신사업을 독점하던 기업 중 하나였고, 미국의 우익테러 자금 송금을 위한 통로였다고 이후 폭로됐고, 쿠데타 때 칠레 내 전신전화 소통을 의도적으로 교란시켰다고 알려진 그 회사는 테러리스트 조직 알카에다와 뭐가 달랐을까. 그들은 한 몸에서 나온 자식들이 아니었을까. 음모론적 시각에서 나온 많은 폭로들에 따르면 그리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테러 중에 최고의, 그리고 최악의 테러는 바로 국가테러(state terrorism)일 것이다. 버젓이 민주주의 국가들이라는 곳의 한편에선 '테러'가 기획 수출되고, 다른 편에선 수입됐고, 칠레에선 민주주의가 사망했다.

미국의 2001년 9/11은 그 민주주의의 뒤늦은 복수가 아니었을까.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이후에 그들의 복수를 이어갔다. 가증스러운 제국의 치졸한 복수! 민주주의를 사망케 한 나라가 이후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어 중동의 정복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긴다. 피델 카스트로는 아옌데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무장하지 않은 이념은 대개 야만적 폭력에 무참히 짓밟혀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말과 글이 유일한 무기인 이념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야만적 폭력이 이 정도로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전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말 중 앞부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조금 바꿔 말하자면, "무장하지 않은 이념은 야만적 폭력을 막지 못 한다"
그러므로 마오쩌둥이 한 말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말도 맞다. 마지막으로 아옌데가 한 말이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나라에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제가 노동자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단 하나뿐입니다. 저는 절대 사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고귀한 의식 속에 뿌린 씨앗은 결코 영원히 묻혀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쿠데타군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박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진보를 막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범죄행위나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인민이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으로 쓰디쓴 순간을 이겨낼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히 나아갈 드넓은 거리가 열리게 될 것임을.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게 제가 남기는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최소한 제 죽음이 범죄자와 비겁자, 반역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73년 9월 11일 라 모네다 궁, 라디오 마가야네스에서의 마지막 연설 (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에서)

주1: 1973년 칠례의 선거로 집권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정부를 전복시킨 것은, 그래서 피노체트의 19년의 철권통치와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만든 시도는, 이후에 한국의 박정희 유신쿠데타를 추인케하고, 전세계의 군부 독재 쿠데타를 미국이 연이어 지지하고 나아가 적극 유발하는 시발점이 됐다. 아마 미국은 겁났을 것이다. 칠레에서처럼, 다른 나라들에서 선거로 사회주의가 집권한다면 과연 어찌하느냐고 말이다. 그게 서구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체제, 정치엘리트만의 경쟁게임으로 민주주의가 지켜지기를, 머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난 순간, 그들은 가장 악랄한 반민주주의자가 되었다. 그것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인 민낯이었다. 한국에 대입해보라!

[보론] 9/11 테러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 맨하탄..
지금쯤 모든 것이 끝난 시간이겠구나.
이 날이 오면 어김없이 각인된 기억이 떠오른다.
아침 뉴스채널 TV를 켠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 가루들.
그리고 TV 화면에선 World Trade Center 두 번째 건물이 폭삭 가라앉고 있었다.
이어 자욱하고 매캐한 분진과 연기가 맨하탄 섬 전역을 휘감았다.
미국의 국가 형성이래, 최초의 본토 침공이 부른 공포.
그리고 그 공포의 정신 상태는 말 그대로 국가적 광기였다.
미국식 '진보'세력(the progressive)도 좌파도 피해갈 수 없었던, '국가는 방위되어야한다'는 시간. 아니 '사회'는 방어되어야한다는 그 시간.
미국을 9/11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시간.
그리고 전 세계 지정학을 미국의 반 테러전쟁이란 미명하에 온갖 침략전쟁을 용인하도록 만든 시간.
그리고 붕괴해가던 전후 냉전체제가 결정적으로 망해가던 시간.
국민국가와 이른바 지구시민사회와 다보스포럼이 교차하는 가운데,
인민주권이고 인권이고 모두 죽은 문자가 되기 시작한 시간.
모든 국가들이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대안없는 야만의 자본주의로 질주하기 시작한 시간. 사회적 다윈주의가 전지구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간.
2008년의 금융위기를 부르고 이후의 진동을 계속 만들기 시작한 시간.
제국의 흥망성쇠.
주권의 해체.
그리고 인민의 전지구적 수난시대.
2001년 9/11 테러.

그리고 대한민국, 남한, 남조선의 4.16 세월호 침몰.
과연 이 땅을 4.16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을 것인가.
그것은 아직 미지수다.
태그

아옌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보스코프스키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정권 붕괴사건과 마찬가지인 사건으로 이런 유형의 국제법 위반은 저들이 이익으로 판단하면 언제든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