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50주년...30년은 ‘공순이’로, 20년은 ‘비정규직’으로 살아

박근혜 대통령도 기념식 참석, 노동자들은 행사장 앞 피켓시위

구로공단 노동자 강명자 씨는 30년 차를 넘긴 미싱사다. 쉰 살이 넘은 그녀는 꽃다운 스무 살 적에 공단에 흘러들어와 청춘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녀를 ‘노동자’가 아닌 ‘공순이’라고 불렀다. 마음대로 일을 부리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도 보장하지 않았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공순이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1985년. 구로공단의 노동조합의 연대파업이었던 ‘구로동맹파업’은 당시 70~80년대 산업 성장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함을 알린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구로동맹파업을 경험한 강명자 씨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강 씨의 이름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도 느닷없이 등장했다.

그동안 회사에 직접고용돼 일해 왔던 강 씨는 약 20년 전부터, ‘공순이’가 아닌 ‘비정규직’이라는 또 다른 차별적인 이름을 갖게 됐다. 그녀는 “세상이 변할수록 우리 같은 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땅 밑까지 추락하고 있다. 직접고용이라는 원칙을 없애고 소사장제라는 형태를 도입해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으며, 노동시간, 노동조건, 임금은 30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구로공단 50주년...30년은 ‘공순이’로, 20년은 ‘비정규직’으로 살아

수십 년간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았던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17일 오전 9시, 구로의 한국산업단지공단 앞으로 모여들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한국 최초의 산업단지인 구로공단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리는 까닭이다. 이날 행사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수십 년간 공단에서 일을 해 온 노동자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산업화의 주역에서 창조경제 거점으로’라는 행사 캐치프레이즈 앞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은 구로공단을 창조경제의 거점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구로공단은 파괴경제의 거점”이라며 “젊음을 파괴하는 비정규직 공단, 인생을 파괴하는 하청공단”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구로공단에는 1만 1,911개의 회사에서 16만 2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한 업체당 13명꼴이다. 공장을 소사장으로, 외주화로 쪼개고 쪼갠 탓”이라며 “장시간 노동은 주 50시간에 달하고, 평균임금은 196만 원 정도다. 200만 원도 안 된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의 거점이냐”며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는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을 변경하고, 제조업 공단에서 디지털 단지로 탈바꿈시켰다. 아파트형 공장이 세워졌고 영세사업장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 지역은 용역 업체를 통한 파견 노동자들로 채워졌으며,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2002년부터 7년간 공단 내 성호전자에서 일해 온 정찬무 씨는 “성호전자같은 회사는 엘지, 삼성 자본의 하청회사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만들어야 할 생산품을 하청을 통해 만든다. 모든 이윤은 대자본에 빨려 들어가고 대기업들은 매년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대기업 일자리는 늘지 않은 채,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퇴사한 동료들의 삶의 궤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행사에서 성호기업 대표는 서울디지털 산업단지 첨단화에 기여한 공로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80년대 구로공단의 여공이었던 이기문 씨는 “그 때 사람들은 우리를 공돌이, 공순이, 근로자라고 불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그나마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았지만, ‘노동자’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의심받았다”며 “90년대에는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기륭전자 싸움을 보며 가슴을 쳤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는 너무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 앞에는 70~80년 구로공단에서 일해 온 선배노동자와, 현재 공단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 50명은 ‘50명 선언’을 발표하고 공단 노동자로서의 작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구로공단 50년 부모 시대의 가난이 자녀에게 되물림되고 있다. 구로공단 공돌이 공순이는 최첨단 디지털단지의 떠돌이 비정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밑바닥 인생을 후배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구로공단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안정된 일자리가 되도록 모든 힘을 다해 싸워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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