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과 연대의 긴 호흡으로 민주노조를 지키는 싸움

[오늘, 우리의 투쟁] 세종호텔노동조합(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고용불안으로 빚어내는 관광한국의 장밋빛 미래

도어맨, 룸어텐던트, 바리스타, 소믈리에, 쉐프, 컨시어지, 호텔에서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에게 붙여진 화려한 듯 보이는 이름은 호텔노동자의 고단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려버린다. 근무시간 내내 리무진버스와 택시가 내뿜는 매연을 맡으며 호텔 입구를 지켜야 한다거나, 고객을 맞이하고 안내하기 위해 온종일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꼿꼿이 서있어야 한다거나, 침대커버를 갈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무거운 매트리스와 씨름해야 한다거나 하는 노동의 실상은, 호텔을 상상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호텔 역시 노동자가 없다면 한시도 유지될 수 없는 공간이다. 호텔의 주요기능인 숙박을 위한 객실서비스를 비롯해 식음료와 연회 및 각종 편의제공 기능에는 매우 다양한 서비스노동이 집약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 등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한 호텔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관광산업 육성정책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전략 속에 ‘노동’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산업 발전에 따른 기계화와 자동화의 한계가 명백한 호텔산업에서 노동자의 존재는 소위 ‘서비스의 질’을 판가름하는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오히려 비용 절감의 걸림돌로만 치부되어왔다. 호텔업계는 일찍부터 실습생‧수습제도 등을 활용해 장기간 계약직‧비정규직을 사용하며 정규직이 담당하던 주요업무를 대체하고, 선별적 정규직 전환을 입직경로로 안착시켜왔다. 이러한 호텔업계의 노동력 관리 방식은 현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부문업무의 분사와 용역‧외주화를 진행하는 데에도 용이한 조건을 만들었다.

1990년대 말에는 민주노총 창립 이전에 설립된 호텔노조들이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전신인 민주관광노련에 대거 가입하며 조합원 수가 5,000명을 상회하고, 2000년에는 롯데·스위스그랜드·서울힐튼 등 3사 호텔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적정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파업은 노조의 역량에 따라 일정 기간 경과 후 정규직화를 약속하는 형태로 마무리되었고, 실질적으로 정규직 동일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짧게는 40여일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이어진 장기파업이었음에도, 외환위기 이후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비정규직화 흐름을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후 호텔업계는 경쟁적이고 전면적인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진행해왔고 이에 비례해 민주노조는 세력을 잃어갔다. 호텔 현장에는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상시적 고용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2013년 9월 27일, 제40회 관광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화려한 호텔! 초라한 비정규직! 비정규직 철폐하라! 외주화 철회하라!” 한국방문의 해, 내방 관광객 1,000만 명 달성 등 ‘관광한국’을 자찬하는 정부에, 관광산업 성장에 기여해온 호텔 노동자의 현실 개선을 촉구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각종 국제대회 유치와 지속적인 한류 열풍의 효과 등으로 관광산업은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고 서울 도심에는 금융사‧항공사까지 나서는 특급호텔 건설 붐이 일고 있지만, 소수의 관리자를 제외한 전 부문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운 신규호텔이 등장하는 등 호텔 현장은 노동의 무덤, 노동권의 불모지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한가운데에, 명동 한복판에서 싸우는 세종호텔노동조합이 있다.

  2013.9.27. 제40회 관광의날 관광호텔노동자 기자회견 [출처: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주님의 호텔’, 인사권과 어용노조로 길들여진 현장

지난해 ‘주님의 학교’라는 독립영화가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사학비리에 맞서는 유쾌한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이 영화는 2013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되고 대한문을 비롯한 곳곳에서 공동체상영으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초청부문 '새로운선택' 상을 수상하고 올해 봄에는 경기도와 DMZ 영화제에서 우수다큐멘터리로 선정됐다. 전상진 감독은 2002년 세종대학교에 입학해 비리재단에 맞서왔고 비리 이사장 주명건의 복귀를 막기 위해 싸우다가, 갖은 중징계와 고소‧고발 끝에 2011년 강제졸업을 당했다. 그는 ‘주님’과 맞섰던 10년간의 사학비리 퇴출운동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주님’은 세종호텔 투쟁에서도 빛나는 이름, 사학비리의 대명사, 바로 주명건이다.

세종호텔은 세종대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지분을 100% 보유한 수익사업체 세종투자개발이 운영주체다. 세종대학교 설립자의 장남인 주명건은 1978년 경영학과 교수직을 시작으로 학내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며 각종 분규의 최대 원인제공자로 명성을 날렸다. 1980년대 말 민주화에 합의한 학내 구성원들에 의해 퇴출됐지만 청와대 비서실 등 정관계 인사들과의 관계를 이용해 1996년 이사장으로 복귀한 후 각종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다가 급기야 부모의 폭로가 부른 사회적 파장으로 2004년 교육부 감사를 받고 2005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시기 동안 주명건은 겸직이 금지된 이사장의 신분으로 재단 산하 모든 계열사 회장으로 취임했고, 세종호텔 역시 각종 횡령과 불법 그리고 사유화 음모로 얼룩졌다.

세종호텔은 1965년에 설립된 긴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이다. 1975년 서슬 퍼렇던 유신 시절 젊은 노동자들이 객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벌인 단식투쟁 끝에 노조를 설립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군미필 상태였던 노조위원장은 사측과 병무청의 공조로 징집되고 노조는 무력화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이후 세종호텔노조 역시 여느 호텔노조와 다름없이 어용의 길을 걸어왔고, 사측의 편에 선 노조위원장은 사실상 현장의 불만을 무마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장 통제를 위해 사측이 활용하는 또 하나의 카드는 인사권이었다. 다양한 직종이 결합된 호텔의 특성상 보장되어야 할 업무의 고유성과 안정성은, 인사권이라는 이름의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훼손되고는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주명건의 입김은 호텔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상식적이지 않은 부서전환 인사발령은 사실상 고속승진이나 좌천의 의미로 행해져 위화감을 만들어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사측과 보조를 맞추는 노조와 비도덕적인 경영진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줄 세우기가 행해졌다. 2003년 호텔의 경영권 싸움이 불거지면서 2004년에는 객실‧교환‧홍보부 등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돌려 발령을 내는 일이 발생했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20~30명의 직원들이 집단 연차를 통해 업무를 거부하며 이틀간 사실상의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노조가 방어하지 않는 우발적인 집단행동으로 인사명령을 철회시킬 수 없었고, 사장으로부터 재발방지 구두약속을 받아낸 노동자들은 억울한 심정을 안은 채 일터로 복귀했다. 당시 노조에는 사측에 의해 철저히 관료화된 13년차 노조위원장이 있었다. 세종호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사권에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를 함께 지켜나갈 민주노조였다.

  2011.10.15. 민주노총 소속으로 처음 참가한 집회, 한미FTA저지 결의대회 [출처: 세종호텔노조]

민주노조 그리고 복수노조, 민주노총 전환과 38일간의 로비점거파업

사측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인사권에 속수무책인 현장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의미가 없었고 참을 만큼 참아온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과거에 어용노조를 바꾸겠다고 나서 경선을 통해 당선되었던 노조위원장은 자리보전에만 안주한 15년을 마감하고 불출마선언을 했다. 2006년 2월 노조의 민주적 운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건 김상진 후보가 새로운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장기간 쌓인 노조위원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고 노조를 노조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변화가 시작됐다. 주요사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노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조합원 교육이 시작됐다.

한편 교육부 감사에서 비리가 드러난 주명건이 쫓겨난 뒤 2005년 여름 세종호텔 역시 임시이사 체제로 경영진이 교체됐다. 노조는 2007년 교섭을 통해 5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계약직 1년 근무 후에는 면접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맺었다. 당시 시행되기 시작한 비정규직보호법이 기간제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호텔 현장의 비정규직화가 이미 급속히 확산된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정규직 없는 일터를 만드는 파격적인 합의였다. 임시이사 체제가 지속된 4년간 세종호텔은 계장급까지 실시하던 연봉제를 호봉제로 되돌렸고 외주화와 비정규직화 등 고용불안 요소를 최소화하는 합의를 유지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2009년 7월, 주명건이 돌아왔다.

주명건이 회장으로 복귀하기 직전에 체결된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은 인정하기로 했지만, 이후 사측은 부서통폐합과 조직개편 등을 반복적으로 강행하며 구조조정의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2011년 초부터는 다시 인사권을 통해 노조간부들을 공격해왔고, 단협으로 체결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약속을 외면했다. 여름이 되자 단체교섭을 연기하며 시간을 끌고, 7월 복수노조인 세종연합노조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교섭 해태와 부서장을 동원한 조합원 빼가기를 시작했다. 9월에는 판촉팀 직원들에게 지급되던 판촉수당을 비용처리 방식으로 강제 변경하며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고, 이에 반발하는 4명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에 대해 부당전보를 강행했다. 부당전보의 당사자인 조합원 중 1명은 사직서를 쓰고 3명은 인사발령을 전면 거부하며 맞섰다.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로 작심한 사측은 보란 듯이 조합원을 겨냥한 부당노동행위를 이어갔다.

세종호텔노조는 8월 서울중앙지법에 단체교섭응낙가처분을 신청하고, 9월말 임시대의원대회와 10월초 조합원 투표를 통해 쟁의대책위 전환과 민주노총으로의 상급단체 변경을 결정한다. 가처분 승소 법원 판결에 따라 12월에 교섭이 재개됐지만 2012년 1월 2일 최종 결렬되었다. 1월 3일, 세종호텔노조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70여명의 조합원 중 50여명이 참여한 로비점거투쟁은 노조 설립 37년만의 첫 총파업이었다. 투쟁 경험이 없는 신생 민주노조에게 두려운 선택이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부당전보 철회, 적정인원 충원과 구조조정 저지’ 요구는 싸우지 않고 얻어낼 수 없는 것이었고, 모두를 위해 승리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파업은 예상보다 길어졌지만 갈등과 고통이 깊어지는 만큼 결의와 동지애 또한 굳건해졌다. 이탈자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동지들이 기꺼이 연대했다. 38일간 이어진 투쟁은 2월 8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부당전보자 징계 양형의 전향적 검토 및 고용안정협약 준수 명문화’를 골자로 하는 노사합의로 마무리됐다.

  2012.1.13. 총파업 11일차 [출처: 세종호텔노조]

노조탄압과 고사작전에 맞서, 더디지만 함께 가기 위해

소수노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총파업이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이탈자가 생겨나고, 기대를 밑도는 파업효과와 사측의 위협은 불안을 가중시켰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마다 찾아오는 갈등과 혼란이 적지 않았고, 구사대가 된 동료와 맞서며 충돌하는 상황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함께 이겨낸 조합원들에게 파업은 분명 ‘노동자의 학교’였다. 파업을 시작할 때 구호를 외치는 팔뚝질조차 어색했던 조합원들이 한 달여의 기간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로 거듭났다. 단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겼고, 동지의 소중함을 뜨겁게 체감했다. 파업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서른 명 남짓의 조합원 대다수가 민주노조를 지키는 버팀목으로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파업 이후 2명의 부당전보자에게 정직 6개월과 3개월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졌고, 재심을 거친 후에도 1명만 1개월로 감경했다. 금과옥조 삼아 휘두르던 인사권을 다시 꺼내들어 2012년 6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했다. 계약해지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파업에 참여했던 사실이 괘씸죄로 작용했다는 것을 모두 안다. 이어 2013년 3월에는 조합원 2명과 노조간부의 아내이자 20년 넘게 경리 업무만 담당해왔던 비조합원을 부당전보했다. 노조간부의 아내는 기존 업무와 전혀 연관이 없는데다 건강상의 이유로 수행할 수 없는 인사명령이었기 때문에 거부했지만, 지노위의 구제신청이 기각되자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고했다.

장기투쟁으로 누적된 피로감과 소실된 조직력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세종호텔노조는 다시 투쟁을 결의했다.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인 상황에서 부당전보를 해결할 방법은 없고, 소송이 진행 중인 부당해고 역시 시간이 필요한 싸움이다. 하지만 투쟁의 불씨를 되살리고 민주노조를 지켜낼 현장의 근육을 단련하는 방법은 피하지 않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 세종호텔노조는 2013년 5월 20일 ‘민주노조 사수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껏 매주 목요일마다 저녁 집회를 진행하며 성실하고 뚝심 있게 일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38일간의 총파업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은 가까이의 투쟁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울산, 밀양, 아산, 옥천, 전주, 구미 등 투쟁이 있고 연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에든 달려가 함께 해왔다. “연대동지 고마워요, 내일도 또 와요!”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그대로 구호로 외치며 힘을 냈던 경험을, 파업투쟁에서 느꼈던 소중한 연대를 잊지 않고 삶으로 길어 올리며 단련되어왔다. 모든 걸 걸고 나선 절박한 싸움에서 믿을 건 ‘우리’ 뿐이라는 진실을 깨우친 동지들에게, 연대는 이제 자연스러운 생활이 되었다.

이전에 체결했던 고용안정협약은 2014년 7월로 만료됐고, 지난 8월 28일 세종연합노조는 특별격려금 100만원 지급, 임금 동결, 연봉제 확대,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폐지, 조합원 가입 범위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4년 임·단협 개정에 사측과 합의했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심각한 후퇴를 가져온 직권조인 소식에, 숨죽였던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물론 조만간 가시적인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섣불리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고용의 목줄을 쥔 사측의 눈치를 보느라 민주노조를 외면했던, 불이익과 탄압이 두려워 함께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노동자들 중에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2013.6.13. 세종호텔노조 목요집회 [출처: 세종호텔노조]

유수한 민주노조들이 투쟁으로 혹은 변질로 차례차례 깨어지고 떠나버린 호텔 현장에서, 30년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고 제대로 싸우기 위해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전환하고 무기한 총파업으로 첫 번째 투쟁의 포문을 연 세종호텔노조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그러나 시간을 거스르는 듯 보이는 세종호텔노조가 걸어온 길은, 누군가 너무 일찌감치 포기했거나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 버린 길일지도 모른다. 격렬한 극한투쟁만큼이나 끈기와 저력으로 버텨내는 투쟁도 참 어려운 시기다.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놓치지 않으며 기본을 다져가는, 단결과 연대의 긴 호흡으로 민주노조를 지키는 세종호텔노조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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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의원

    ㅅㅈㅋ민주노조추진위 끝까지 갑니다,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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