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위기, 부르주아 헤게모니로의 포섭-우경화 반영”

‘민주노총 정치활동 20년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토론회(1)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민주노동당 분당, 진보대통합-진보신당 분리-통합진보당 합당, 통합진보당 비례경선 부정 사태까지 이어지며 진보정치가 바닥에 가라앉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모색에 들어섰다. 모색의 시작은 1995년 민주노총 창립과 함께 20년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달려온 민주노총이 반성할 지점과 오류는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이었다.

혹자는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정당 내부에 스며든 부르주아 헤게모니라는 본질적 문제를 짚었고, 혹자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역할을 분리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진보정당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게 한 당-노조 양날개론적인 전개양상을 깊게 돌아봤다.

어떤 이는 민주노총 정치세력화가 한국 사회전반의 변혁 전략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운동 전반에 조합주의와 의회주의가 확산되면서 등장한 야권연대 노선이 심각한 위기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이는 배타적 지지방침으로부터 이어진 당-노조관계의 대리주의, 상호위임, 왜곡된 노동중심성에 기인한 노동할당제, 지역개입 전략의 부재 등을 조목조목 짚기도 했다.

반면 민주노총 정치활동 20년을 반성하기에 앞서 성과부터 돌아봐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성과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민주노총 정치세력화는 옳은 방침이었고 앞으로도 밀고나가야 할 노동운동의 중요한 좌표라고 했다.


80만 조합원과 다양한 노선의 정파가 존재하는 민주노총이 20년 세월동안 추진한 정치세력화 전략은 이렇게 다양한 평가 지점이 존재했다. 진보정당 운동의 한 시기가 마감됐다고 평가받는 지금 민주노총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향한 제2기 노동자 정치세력화 길 찾기를 위한 연속토론회-‘민주노총 정치활동 20년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를 23일 민주노총 건물 15층 교육원에서 개최했다.

노중기, “단순 주체의 잘못만이 아닌 부르주아 헤게모니가 진보정치마저 포섭한 결과”

‘민주노조, 새로운 노동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란 주제로 발표한 노중기 교수(한신대, 비판사회학회)는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와 올해 두 차례선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노중기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왜곡, 국정원 선거부정과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여러 정치공작의 확인,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탄압,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정치공작 진행, 철도파업, 민주노총 침탈이 계속됐고, 4월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숨 쉴 틈 없이 드러났다”며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 1년 반이 채 안된 시점에서 중간 평가 성격의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하지 않았다는 게 초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7.30 재보궐 선거결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를 분석해야한다”고 설명했다.

노중기 교수는 “어떤 정파의 잘못이나 각 정당 지도부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전략노선을 바꾸고 오류를 청산하면 될 것 같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의 질문”이라며 “주체는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주체도 대체로 중한 오류, 경한 오류가 있었지만 근본 조건을 봐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분석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중기 교수는 분석틀로 노동정치-노동체제,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지배세력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세력관계를 반영하는 국민대중적 프로그램인 헤게모니 프로젝트(hegemony project)를 추진했다”며 “국가는 동시에 제도적 총체와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의 물질적 양보와 상징적 보상을 포함하는 국가프로젝트(state project)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노중기 교수에 따르면 ‘1987년 노동체제’는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결과로 형성된 과도기적 노동체제로 1997년 겨울 총파업과 외환위기를 거쳐 해체되기 시작했고 1998년 이후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로 대체됐다. 지배블록은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응하는 헤게모니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하다 9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선진화라는 두 개의 새로운 국가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했다. 이렇게 민주화-선진화 국가프로젝트에 의해 추동된 헤게모니 프로젝트인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는 ‘두 국민전략’(two nation strategy)이 노동정치에서 물질화된 구조라는 설명이다.

노중기 교수는 “이런 지배전략으로 98년 이후 민주화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지형이 만들어졌으나 운동진영은 민주화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근본적 운동위기를 불러왔다”며 “98년 이후 반신자유주의 대항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필요했는데 전략적 대응을 통일되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04년 총선에서 제도정치 진입이 가능한 두 가지 이유는 민주화 프로젝트와 민주노조운동 합법화였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결합하고 노동운동이 정치활동 할 수 있게 한 국가의 전략변화가 있었다”며 “이 두 가지가 힘을 받게 된 근본조건은 98년 외환위기”라고 소개했다. 외환위기 상황 속에서 개별노조의 경제투쟁으로는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대중적 각성이 있었고, 가장 힘 센 노조인 현대차노조가 98년 정리해고 파업투쟁에서 패배하자 노조의 경제투쟁으로는 정리해고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한 결과 정치적인 싸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진보정당 건설 운동이 2004년 민주노동당의 화려한 원내 진입으로 성과를 냈지만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붕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중기 교수는 97년 이후 노동체제의 변동에 대응해 노동조합운동이 발본적인 전략적 전환을 하지 못 한데서 원인을 찾았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운동의 활동양식이 본질적으로 노동조합의 조합주의 운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노중기 교수는 “진보정치 몰락의 원인은 본질적로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며 “민주노조 운동의 최근 위기와 진보정치 붕괴는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헤게모니가 진보정치 운동을 포섭한 결과다. 흔히 민주대연합 전략. 비판적지지 전략이 진보정치운동을 옥좼다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부르주아 헤게모니가 진보정치마저 포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 교수는 “2011-12년 민주노총의 무원칙한 후보단일화 진행 전술은 민주대연합이었고, 민주노총은 공동정부의 전망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하며 1, 10, 100전술을 제안했다”며 “배타적 지지에 문제가 있는데도 민주대연합을 통한 노동법 개정이 민주노총 입장이었으며,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최대목표였고 그것은 통합진보당으로 대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정치세력화 실패의 3가지 전략적 오류로 △산별노조운동실패 △노조-정당 관계의 왜곡 △진보정당의 운동 전략과 북한문제를 들었다.

노 교수는 “정치운동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노동계급정치 실패의 구조적 원인은 산별노조운동 실패에 있다”며 “산별노조운동의 핵심은 기업단위로 제한된 노동자 계급의식을 돌파하고, 자연스레 비정규직 노동자와 계급적 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으나, 조직 형식만 산별이고 미조직 비정규직과 연대할 수 있는 조합원의 의식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전략적 오류인 노조-정당관계 왜곡의 핵심 배경으로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꼽았다.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 갈등이 배타적 지지를 통해 당으로 이전되고, 반대로 당 내의 정치적 갈등은 노동대중을 균열시키고 활동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정치는 당이, 단체교섭이나 경제투쟁은 노조가 맡는다는 ‘당-노조 양날개론’도 경제주의 노동운동을 야기한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노 교수는 “배타적지지로 당-노조의 건강한 견제와 대립, 협력과 연대라는 긴장관계가 없었다”며 “08년 이후라도 배타적지지를 폐기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세 번째 오류인 운동전략과 북한문제를 두고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이 문제이지 종북주의가 문제가 아니라는 평가가 있는데 패권도 심각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종북주의 문제”라며 “2012년 이후 문제의 초점이었던 일부 자주파 민족주의는 이미 심하게 퇴행된 보수적 민족주의이며, 군부파시즘 하 남-북한의 적대적 상호의존은 남한사회 내부에서 자주파 민족주의와 극우파 민족주의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진보정당이 그 조직적 매개체가 되는 현실을 탈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중기 교수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민주대연합에 기초한 공동정부 전략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 분단체제 속에서 직접적 좌파 계급정당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을 재생산해 왔다”며 “새로운 운동은 민족문제에 대해 보다 진보적인 전략적 노선을 제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노중기 교수는 이런 분석틀에 따라 결론적으로“진보정치의 위기는 정당 주체들의 오류보다 거시적인 구조변동과 전체 노동운동 세력의 전략적 실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구체적으로는 선진화 국가프로젝트와 두 국민전략의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다수의 노동대중과 시민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고, 현재 진보정치의 수세는 진보정당의 우경화, 부르주아 헤게모니로의 포섭 같은 헤게모니 변동의 반영”이라고 요약했다. 이어 2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진보정치의 이념과 노선의 재구성 △산별노조 건설과 비정규 미조직 연대 △노조-정당관계의 혁신과 재구성이라는 3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새로운 이념과 노선 재구성을 위해선 “민주노동당, 통진당 경험으로 최소한의 합의는 가능하다”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북한문제와 이에 연계되 있는 민주대연합에 대한 입장으로 이에 대해서는 반신자유주의 대항헤게모니 운동노선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별노조 건설과 비정규 미조직 연대를 위해서는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와의 계급적 연대 확장을 강조했다. 노조-정당관계의 혁신과 재구성을 위해선 “배타적지지의 폐기와 대안 정치방침의 정립이 급하다”며 “노조-정당의 조직적 분리 정립. 노조운동과 정당운동의 구조적 차별성, 그 독자성에 대한 쌍방 승인. 그 이후 조직 간 대등한 연대관계의 제도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근원, "변혁전략보다는 정규직 조합원중심의 당 활동을 전개하도록 한 책임 커"

두 번째 발표에 나선 이근원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세력화 20년은 실패로 귀결됐다”며 “민주노총은 지속적으로‘진보정당운동에 대하여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선에 머무르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이근원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 민주노총당’이라는 말이 긍정의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이 광범한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고, 조직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노조 중심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영세중소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여전히 전략적 과제로 되고 있으며,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이를 실현하는 전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조직화에 있어 상호 보완되었어야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은 당원을 만들거나 조합원에 대한 교육 선전 정도에 멈췄고, 진보정당의 노동위원회 사업은 민주노총과의 연대사업 정도로 전락했다”며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위기는 진보정당의 위기로 전이되었고, 후에는 진보정당의 위기가 민주노총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동운동의 발전을 가져올 국회입성이 거꾸로 국회에 기대는 모습으로 이후 활동이 전개됐고, 이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올바른 성장보다 소수의 명망가에 의해 진보정치운동 자체가 좌우되는‘자영업자’식 정치운동으로 변질되게 만들었다”며 “노동대중을 스스로 노동정치의 중심으로 참가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진보정당은 정치투쟁으로, 노동자는 현장의 경제투쟁으로 스스로 이분화 시키며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었던 점, 진보정당의 실질적인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당 사업을 집행부에 맡겨놓고 돈 내고 표 찍는 것을 그 역할로 한정시킨 점, 사회에 대한 변혁전략보다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정규직 조합원중심의 당 활동을 전개하도록 한 책임이 크다”고도 덧붙였다.

이근원 위원장은 “민주노총 정치세력화는 한국 사회 전반의 변혁을 위한 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실천과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채 좌절했다”며 “새로운 진보정당의 한국형 모델은 노동운동 전반의 혁신, 산별노조 운동의 재정립, 지역 활동에 대한 총체적 전략마련 등 전체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는 각자 다른 정치적 노선과 활동 공간에 몸담고 있는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치위원장, 양동규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심재옥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이 토론자로 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정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민주노총 정치활동 20년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토론회(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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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실패는 정파연합당의 실패다. 물론 단일정파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파연합정당이 잘 기능하려면 적어도 정파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반대하는지 대략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또 반민주대연합 반신자유주의로 정치세력화한다? 또 실패

  • 보스코프스키

    실패를 극복할 방법으로 실패를 품은 방법/실품방 - 이거 해를 품은 달/해품달 아닙니다! -을 제시한닷?? 성공할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산자들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려는 음모!!!
    그리고 질문 정파연합정당은 잘 되어야 하는데 연합내용이 반민주대연합 반신자유주의만 아니면 잘 되는지 궁금...
    오히려 이런 정파연합정당이 실패를 품은 것이고 사상, 주의의 통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 모든 당건설은 시간문제만 있을 뿐 실패를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단일정파당을 만들수있습니다. 아마 한 백명에서 이백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을 당이라고 부르는 그런 정당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집권은 고사하고 제도정치권내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일부 분들은 제도밖 정당을 지향하시는데 그런 건 논외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