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 눈 돌린 사적연금시장, 새로운 먹잇감 찾기

“정부가 취약계층 사적연금에 재정 지원해야”, ‘빈곤비지니스’ 활성화

보험업계가 사적연금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취약계층’이라는 타깃을 발견했다. 정부가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금융자본 배불리기라는 질타를 받자, 사적연금을 ‘취약계층의 안전망’으로 활용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보험업계의 사적연금 확대 방안이 정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보험업계들도 취약계층의 노후를 위해 정부가 사적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결국 정부 재정을 통해 이뤄져야 할 공적연금의 영역을 사적연금시장이 넘겨받는 꼴이어서 ‘금융자본 배불리기’라는 논란은 불식되지 않을 전망이다.

‘취약계층’에 눈 돌린 사적연금시장, 새로운 먹잇감 찾기

‘보험연구원’과 정치권은 3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적연금 취약계층을 위한 연금정책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지 약 한 달 만이다.


이날 토론회는 보험연구원과 여야 정치권이 공동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야당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여당에서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 측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사적연금 취약계층을 위한 연금정책방향’을 주제발표 한 ‘보험연구원’은 43개의 민간 보험회사들이 출자한 연구기관이다.

발표에 나선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향후 중위소득 이하 계층의 노후소득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 우려하며, 취약계층에 대한 사적연금 혜택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득 1분위의 연금상품 보유율은 1.6%, 소득 2분위의 보유율은 13.3%에 불과해, 사적연금 취약계층이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류건식 연구실장이 ‘사적연금 취약계층’으로 꼽은 유형은 소득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저소득 노동자, 저소득 자영업자, 저소득 베이비 부머 등이고, 미가입자 기준으로는 전업주부와 대학생, 군인 등이다. 그는 정부가 취약계층에 대한 개인연금을 지원해, 이들의 사적연금 가입을 유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류 실장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소득 2분위 저소득계층이 개인연금에 가입할 때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면, 소득 2분의의 31.2%가 소득 3분위로 상향 이동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적연금을 통해 40%까지 인하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보전하자는 의미다.

아울러 현재 10민 미만 영세사업장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11.1%에 불과하다며, 영세 사업장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경우 정부가 최소한의 운용수익률을 보증하고, 재정지원이 지속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비자발적 사적연금 미가입 층인 전업주부나 대학생 등도 퇴직연금 가입을 허용해, 대학생의 경우 부모가 보험료를 대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조했다.

“OECD국가의 추세, 한국정부도 취약계층 사적연금에 재정 지원해야”

보험연구원은 현재 OECD국가들의 연금개혁 트랜드를 △공적연금 급여수준 인하 △공적연금 일부/전부 대체 민영화, 적용제외 △강제사적연금 도입 △사적연금 활성화, 과감한 세제혜택 부여 등 4가지로 분석했다. OECD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류 실장은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저소득계층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사적연금 가입을 유도했다”며 정부차원의 지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도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방안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토론자로는 강도 높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박사와, 오영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이석란 금융위원회 보험과 연금팀장, 손필훈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과 과장이 참석했다. 애초 한국연금학회장인 김용하 교수도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관련 논란으로 연금학회장을 사임하면서 이번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석란 팀장은 “취약계층이 연금을 통해 스스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을 통한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으며, 오영수 고문은 “오늘 발표 내용을 통해 사적연금 취약계층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사적연금이 영업성 뿐 아니라 공공성을 담보해 나가는 방향성이 제기된 것 아니냐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윤석명 박사도 류 실장의 발표 내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최근 들어 복지예산이 급증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먹고 살만 한 사람한테 간다. 문제는 국민연금 적용 대상자 중 취약계층이 빠져 있다는 것”이라며 “다만 취약계층에 대한 사적연금 정책 방향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어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환영사에 나선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적연금 정책 방향을 ‘보험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라고 표현하며 “공교육을 아무리 정상화해도 엄마들 사교육을 무슨 수로 당하나. (사적연금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보다는 실상을 알려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시스템의 빈 구석을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적연금 투입해야 할 재정을 사적연금에 투입?
취약계층 사적연금 활성화는 ‘빈곤비지니스’의 일환”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며 대대적인 공무원연금 손보기에 나섰고, 지난 8월 27일에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정부가 공적연금 축소 및 사적연금시장 확대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정부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2016년까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비롯해 2022년까지 10인 미만 모든 사업장에 기존 퇴직금 대신 퇴직연금을 전면 의무화 한다는 계획이다. 퇴직연금 가입률을 높이고, 이를 통해 확충된 퇴직연금자산으로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즉시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금융시장 배불리기’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적연금 취약계층을 위한 연금정책’은 여론의 비판을 상쇄하는 동시에 정부 정책의 명분을 가져다 줄 묘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보험업계 입장에서는, 고리대금업으로 전락한 학자금 대출 사례와 같이 새로운 ‘빈곤비지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다. 강동진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현재 학자금 대출은 저소득층에 대한 실질적 정부 지원이 아닌 대출을 쉽게 하는 제도다. 이자율을 높여 금융기관의 배만 불리는 빈곤비지니스다. 사회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사적연금 활성화도 빈곤비지니스의 일환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강동진 집행위원장은 “결국에는 사회취약계층의 사적연금 가입을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 국민연금에 지원해야 할 재원을 왜 사적연금 시장에 지원하나”며 “이는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도입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OECD국가들이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있는 추세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OECD국가들은 공적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적연금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30%가 넘는다”며 “국민연금 급여율이 낮아 신뢰도가 떨어진 만큼,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지 이를 핑계로 사적연금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OECD평균 공적연금 지출율은 8.4%이지만 한국은 0.9%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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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트맨

    공무원연금 개혁은 사적연금 민간 금융사 도와주려는 시작이었나보다. 이럴수가 국가가 당연 공적연금을 늘려서 국민노후를 책임져야지...배가 산으로 가려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