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한국 5위...공공연한 비밀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세계은행 조사 발표하자 괜한 난리 보수언론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엉터리 여론조사가 없는 여론을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계기사는 늘 작은 것에 목숨 거는 기자들에게 유용한 침소봉대 자료가 된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과 국제경영개발원(IMD) 등 사설단체가 해마다 세계 여러나라를 대상으로 국가경쟁력을 발표하면 한국 언론은 이를 앞 다투어 보도한다. 한국의 경쟁력 순위가 오르면 간단하게 보도하고 그만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순위가 떨어지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문화일보는 지난 2009년 5월 20일자 1면에 이어 3면 머릿기사로 <‘노사 相爭’ 국가경쟁력 다 갉아먹는다>는 제목을 아래와 같이 요란하게 보도했다. IMD의 그 해 한국 국가경쟁력 순위는 4계단이나 상승했는데도 문화일보는 세부 항목 중 ‘노사관계’를 놓고 시비를 걸었다. 당시 우리나라 노사관계 순위가 조사 대상 57개 나라 가운데 56위로 꼴지 수준이라는 거다. 노사 관계는 노와 사 양쪽의 문제가 겹쳐서 일어나는 문제인데도 문화일보는 노동자의 투쟁 일변도만 문제 삼았다. 그래놓고 문화일보는 “노조의 투쟁 일변도가 선진국 도약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자평했다.


이런 국가경쟁력 조사는 조사기관의 객관성 여부는 물론이고 조사 방식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예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국가경쟁력 순위조사는 객관적 경제지표 말고도 기업경영자의 주관적인 설문조사도 함께 곁들여 조사한다. 이 대문에 설문대상자들의 성향과 자의에 따라 통계결과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주관적인 설문항목에는 가중치를 낮게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이 때문에 국가경쟁력 조사는 늘 널뛰기 장세처럼 흔들린다. 그냥 참고자료로 보면 그만인 조사 자료를 놓고 죽자고 덤비는 우리 언론이 문제를 더 이상하게 꼬아 놓는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과 국제경영개발원(IMD) 같은 사설 민간단체가 아닌 세계은행이 최근 ‘2014년 기업환경 평가’라는 자료에서 한국이 전 세계 189개 나라 가운데 5위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전기공급 부문에서 세계 1위, 무역 통관에서 3위, 법적분쟁 해결에서 4위, 기업 퇴출에서 5위, 건축 인허가에서도 12위, 창업에서도 17위로 비교적 상위권을 차지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30일자 5면이 이 사실을 2단 기사로 간단하게 <“한국 기업하기 좋은나라 세계 5위에”>라고 썼다.


조선, 기업주들의 주관적 만족도 반영 없다고 트집

그러나 조선일보는 도저히 세계은행의 조사결과를 수긍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서울신문과 같은 날인 지난달 30일 B1면에 <한국이 기업환경 세계 5위? 한국인도 갸우뚱>이란 제목으로 이 사실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 <세계은행이 내놓은 이상한 성적표>라는 작은 제목도 달았다.

조선일보는 세계은행의 조사결과를 비판하면서 통계조사 자체에 억지를 부린다. 조선일보는 “세계은행의 평가는 각 나라가 기업 활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제도와 인프라를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만을 평가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럼 객관적인 통계조사가 객관적 지표 외에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기업주들의 주관적 평가문항이 없어서 안타깝다는 투다.


조선일보는 이런 속내를 기사 말미에 솔직히 털어놓았다. 조선일보는 “세계은행의 조사는 국제경영개발원, 세계경제포럼과 같은 국가경쟁력 평가기관들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올해 각각 26위로 평가한 것과도 차이가 난다. 이들 양 기관은 기업인의 주관적 만족도를 점수에 반영 한다”고 보도했다.

각 나라의 기업환경을 평가해 순위를 밝히는 조사분석 보고서에 기업주들의 주관적 만족도를 포함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인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고 객관적 자료만 조사해 한국이 기업하기 매우 좋은 나라라는 공공연한 비밀에 힘을 실어줬다고 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