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통일 25년 만에 서독서 사회주의 주지사 집권

사회주의 좌파당, “실제 정치적 대안 보여줄 것”

2달 넘게 지속된 연정 협상 끝에 독일 중부 튀링엔 주에 사회주의 좌파당이 이끄는 적적녹 연립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년 만에 서독에 사회주의 주지사가 집권하게 된 셈이다.

독일 튀링엔 주 좌파당, 사민당과 녹색당은 19일(현지시각) 향후 5년 간 튀링엔 주에서 적적녹 연정을 꾸리기로 합의했다고 독일 좌파 <노이에스도이칠란트>가 보도했다. 3개 정당이 주정부 운영 방침에 합의한 연정 협상문은 20일 제출된다. 주지사는 보도 라멜로브 튀링엔 좌파당 전 원내 대표가 맡을 예정이다. 연정 협상 내용은 내달 초 각 정당 표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보도 라멜로브 튀링엔 좌파당 전 원내 대표이자 주지사 내정자 [출처: 타츠 화면캡처]

독일 통일 후 좌파당이 주정부를 이끌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좌파당은 베를린 시에서 이전에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주에서 연정에 참가하고 있지만 이는 사민당이 주도하고 있다. 튀링엔 주에서 집권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3개 정당의 연정 협상은 지난 9월 중순 튀링엔 주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이 사민당을 제치고 2위로 부상하면서 시작됐다. 튀링엔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은 연립정부를 꾸려왔지만 지난 선거에서 각 정당은 기민당 33%, 좌파당 28.2%, 사민당 12.4%, 녹색당 5.7%를 얻었다. 사민당의 득표율은 반토박이 났고 이 표는 고스란히 좌파당에게 돌아갔다.

사민당 내 많은 이들은 득표율이 떨어지자 기민당과 계속 연정을 꾸릴 경우 지지율은 더 추락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좌파당의 연정 제안을 받아들였다.

좌파 주도하자 악마화 기승

좌파당이 연정 협상을 주도하자 그 동안 좌파당과 구동독을 싸잡아 비난해왔던 주류의 히스테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선거 전부터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튀링엔 유권자들에게 “칼 맑스가 주사무실에 돌아오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동독 출신인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국영티비에서 좌파당은 믿을 수 없는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9일에는 튀링엔 기민당, 사민당, 우익과 네오나치를 비롯한 4천여 명이 좌파당 퇴출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벌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한 연방의회 초청 공연에서 구동독의 저항가수로 유명했던 한 가수는 좌파당을 ‘반동잔당’이라면서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근 튀링엔 좌파당 의원들의 자가용 타이어는 펑크 나고 느슨해지는가 하면 위협하는 편지와 전화 세례가 이어지고 있다.

또 사민당과 녹색당은 연정 협상의 전제로 좌파당에게 구동독이 ‘불량국가’라는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지난 2009년에도 이 때문에 적적녹 연정 협상이 성사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보도 라멜로브는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낸 후 조건부로 연정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인가했다. 구동독에 대한 평가는 좌파당 내 논란으로 번졌고 보수 정치인들은 ‘진술서’에 반대하는 좌파당 정치인들을 또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주류언론도 좌파당을 매도하기에 바빴다. 독일 중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19일 연정이 성사된 날까지 “베를린 장벽 붕괴 4반세기만에 동독에서 실패했던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이 튀링엔에서 재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혹독한 아이러니”지만 “이들(좌파당)이 사민당과 녹색당과 긴밀히 일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아이러니도 아니고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매도했다.

좌파당, “실제 정치적 대안 보여줄 것”

그러나 좌파당은 튀링엔에서의 실험을 기반으로 연방정부까지 압박해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카트야 키핑 좌파당 당수는 19일 연정 협상이 끝난 뒤“튀링엔 적적녹 연정은 다른 주의 모델이 될 수 있다”며 “2017년 총선까지 가능한 많은 정부들이 기민당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 목표는 기민당 총리를 밀어내는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실제로 튀링엔 적적녹 연정이 성공할 경우, 사민당은 연방 수준에서의 좌파당과의 연정을 현재까지는 거부하고 있지만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레고르 기지 좌파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보도 라멜로프가 5일 주지사로 선출된다면 이는 역사적인 진보”라며 “적적녹 연정은 튀링엔 주민들에게 실제적인 정치적 대안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독일 진보주의자들도 튀링엔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진보 언론 <타츠>는 19일 “현실사회주의의 복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논평을 싣고 튀링엔 적적녹 연정을 반겼다.

튀링엔 적적녹 연정은 앞으로 무상보육 도입 및 비공립학교에 대한 지원 확대, 저렴한 주택 공급 확대,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일자리 제공 등의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한편, 적적녹 연정이 1석만 우위이라는 불안정한 지위라는 점, 52.7%라는 낮은 투표율, 기민당에 봉사했던 관료 사회의 저항, 부족한 재원 등은 우려되고 있다. 각 정당 간 차이, 즉 좌파당은 나치범죄에 관여돼 있다는 이유로 주안전기획부 폐지를 요구하지만 사민당은 거절하는 한편, 좌파당은 공교육을, 녹색당은 사립학교 지원에 방점을 두는 차이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좌파당(Die Linke)은 2007년 민주사회당(PDS, 동독 SED 후신)과 사민당 내 좌파가 결성한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 급진 좌파세력과 노동자들이 함께 결성했다.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당원은 약 64,000명, 연방의회에는 631석 중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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