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위안부 문제 역주행,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일본사회운동의 편지](6) 아베정권 평가① 일본 사회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편집자 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입장에 따라 내달 14일 일본에서는 새 총선이 치러진다. 세간에선 소비세 인상 반대 여론과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평화헌법 해석 변경 등에 관한 주요 법령 개정을 앞두고 실시되는 이번 조기총선이 집권 연장을 위한 명분 없는 선거라는 평이 잦다. 그러나 보수 자민당의 아베 정권은 미약한 대체 세력으로 인해 사실상 재집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 <레이버넷>의 야스다 유키히로 활동가가 3회에 걸쳐 아베 정권 아래 추동돼온 3가지 일본 사회의 주요 쟁점을 파헤치고 이의 앞날을 전망해 볼 예정이다. 첫 번째 글 “위안부 문제 역주행, 그래도 희망은 있다 - 일본 사회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먼저 소개한다.

최근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 문제가 왜 지금 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신기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내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에는 온갖 어려운 쟁점이 있다. 간단하게 일본 내 논의를 추려 소개해 본다.

계기는 지난 8월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책임에 대해 적극적인 보도를 계속해 온 아사히 신문이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을 보도한 과거 기사를 취소한다” 고 밝히면서부터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보수의 역주행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은 요시다 씨가 1943년에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 여성을 ‘잡아들였다’”고 한 것으로, 1980년대에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군을 동원해서 대량의 젊은 여성을 강제 연행하고 이들을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증언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내각 관방 장관이 위안부 모집에 관한 일본 정부의 관여를 인정하는 담화로, 1995년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이하 아시아 여성 기금)”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학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검증 작업에 의해 1990년대 후반에는 요시다 씨의 증언 내용은 허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아사히신문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2014년에야 1980년대의 기사 내용이 오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일본의 국가적인 관여를 부정하는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아사히신문의 사죄로 “역시 위안부는 돈 벌이를 위한 창녀에 지나지 않았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강하게 회피했다. 역사수정주의적 시민 단체와 학자,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우파 정치가, 그리고 산케이와 요미우리 같은 보수파 언론 등은 일제히 ‘아사히 공격’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요시다 씨의 증언이 허위인 이상, 고노 담화도 그 근거가 없고, 한국 정부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 요구에 응할 필요도 없으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압력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추구해 온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등은 역사수정주의의 무리한 공격에 반론하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요시다 씨의 증언은 일찍부터 그 신빙성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고,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의 책임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는 요시다 씨의 증언은 논의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많은 자료나 증언이 보여주는 강제 연행 사실이나 “국가적으로 운영해 온 ‘위안소’ 라는 ‘성 노예 시스템’”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역사 사실인 위안부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손으로 하늘 가리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서 위안부는 안타깝긴 하지만 여성 인권 의식이 낮았던 당시에는 정당한 제도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요시다 씨의 증언 같은 ‘위안부 사냥’이 있었다면 큰 문제이지만 ‘위안부 사냥’이 없었던 일이라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군은 위안소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교묘하게 법적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찾기에 바빴다. 예를 들면,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 많은 기업이 하청 형태를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게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공장에서 부당 노동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이것은 하청 업체 측 문제이고, 원청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이 논리와 흡사하게도 일본군은 민간 업체를 이용하여 위안부를 모집하고 노예와도 같은 성 노동을 강제했지만 불법 모집 및 강제 노동이라는 불법적인 일에 대한 책임은 민간 업체에만 해당할 뿐 일본군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반적인 성매매 시설과 비슷한 위안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일부의 광적인 역사 왜곡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중 위안부 피해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일반적 정서에 대해 좌파 시민 단체와 역사학자, 정당, 노동조합 등은 끊임없이 위안소라는 시스템의 위법성을 호소해 왔다. 1995년 아시아 여성 기금에 의한 ‘보상 사업’도 그러한 노력 속에서 실현했다. 하지만 아시아 여성 기금은 사실상 일본 정부의 관여를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 기본 협정(청구권 협정)등을 이유로 국가로서 배상 책임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넘지 못했다.

국가 배상 문제는 단순히 위안부만이 아니라 한일 청구권 문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즉 위안부 배상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전시 성폭력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합법성 논의에서 시작해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 책임과 청산 문제에 있어 전후 한일 양국 관계를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큰 문제인 것이다.

아시아 여성 기금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 서 온 진보 진영의 유력한 활동가를 중심으로 여야 정치가를 납득시키고 많은 일본 국민의 공감을 얻어, 위안부 희생자에게 실질적인 사죄와 배상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으로서 민간 기금으로 출발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사업 내용은 의욕적인 것이었지만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라는 주장을 하는 일본 우익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묻는 좌익 진영에서도 비판 받아 한국을 중심으로 피해 국가에서도 기금 수령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제기됐다. 결국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는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에 최종 마무리 짓는 데 실패했고 2007년에 해산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지난 2월 일본군 위안부 및 전쟁범죄 등을 부정하는 망언을 한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 집권 후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의 압력 속에서 일본 정부의 역주행은 계속됐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스펙트럼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보는 눈은 다양하다. 위안부 존재 자체의 역사를 왜곡하는 우파의 주장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피해자의 구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나 일반 시민의 시각이 있다.

리버럴 지향의 정치가 및 시민 사이에서는 개인 청구권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좌파 정당과 시민 단체는 여성 인권,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책임 같은 방향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보고 있다.

노동 운동으론, 내셔널 센터의 연합은 위안부 문제에 강제 노동이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연합 산하인 ‘일본 교직원 조합’이나 ‘전일본 자치 단체 노동조합’ 등에 소속된 일부 단위 노동조합은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임하고 있다. 좌파 내셔널 센터의 ‘전국 노동조합 연락 협의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일본 정부의 책임을 표명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 내에서 최근 우경화 흐름과 함께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일 관계와 국제 협조라는 외교 정책적인 맥락에서 정부에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은 본질적으로 극우적인 역사 수정주의적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이 국제 사회에는 통하지 않음을 이해하는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베 정권은 당초 고노 담화를 부정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그 뒤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오해된 부분이 있다며 국제 사회에 대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배상의 국제법적 책임이 없다고 호소한다는 입장이다.

야당 제2당인 민주당은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이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이다. 당 내에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적 생각을 가진 의원도 있고, 일본 정부의 배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의원도 있다. 반면 공산당과 사민당 등 진보 정당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해 배상 책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적 시민 단체의 대부분은 일찍부터 위안부 문제에 활동해 온 시민 단체, 기독교계 단체, 그리고 한국의 시민 단체와 함께 일본 정부의 명확한 책임 인정과 위안부 피해자의 국가적 보상을 요구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각 단체의 활동 내용에 따라 다르며, 또한 활동가 가운데도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하는 중에 실질적인 사죄와 배상을 실현시키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과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 인정을 받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다.

주류 언론은 “사죄와 보상은 불필요”하다는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산케이에 대해 리버럴계의 아사히, 마이니치는 위안부 문제의 적극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학계는 “위안소는 민간 성매매 장소였다”는 설과 “위안소는 군의 관리 하에 있는 군대의 부속 시설이었다”는 설이 있으며 일본의 국가적 책임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이 있기 때문에 정설이라 할 수 있는 학설은 없다.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논의는 지금 백가쟁명의 상태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본 시민의 대다수는 한일 관계 개선 및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9월 일본의 시민 단체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 센터”가 한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의식 조사 결과 일본 학생의 64%, 한국 학생의 98%가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사죄, 보상해야 한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64%라는 숫자는 결코 압도적인 숫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이 수치는 커질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오보’를 기회로 이용한 우파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지만 좌파의 반격도 시작되었다. 요시다 씨의 증언이 허위였음이 명백해진 지금 오히려 ‘위안부 사냥’ 같은 선정적인 쟁점이 아니라, 아시아 여성 기금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식민지 지배의 책임 같은 문제를 쟁점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일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뒷받침 된다면, 일본 의회를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위안부 문제 해결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번역]벨라(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