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지침, 공공기관부터 지켜라!”

[오늘, 우리의 투쟁] 공공운수노조 대전일반지부 수자원공사지회 김기영 지회장 인터뷰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 이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신 독자들께 마음의 인사를 드립니다.


  김기영 지회장

노조 결성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기본적으로 업무 외적인 일이 엄청 많았다. 우리가 시설관리인데도 조경이나 행사에 동원되는 게 당연했다. 사택이나 일반 직원들 집에 가서 고장 수리를 해준다든가 하는 잡다한 일들도 많고. 시설관리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미화 쪽도 마찬가지였다. 노조 설립 전에는 원청 직원이 직접 사무실 와서 얘기하고 각 주임들한테 퇴근시키지 마라, 한 마디면 됐다. 이런 게 자꾸 중첩되고 사람은 바뀌고 그러다보니까 일은 더 힘들어지고. 내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고 다른 일에 동원되다가 또 우리 일도 해야지,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까 이래서는 정말 안 되겠다고 해서 노조를 만들게 됐다. 2010년 1월 19일에 창립을 했다. 처음에는 전체 90명 정도 중에서 미화와 시설관리에서만 36명이 가입을 했다.

노조 결성 이후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2010년 1월 19일에 창립기념식을 하고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당시까지도 마땅한 휴게공간이 없어 배관이랑 벽돌이니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데서 점심 식사하고 쉬고 그랬었는데. 마침 정부에서도 개선지침이 내려오고 원청에서도 이게 알려지면 문제가 되겠다 싶었는지 그때부터 좀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휴게실도 지금 보면, 세탁기라든가 텔레비전도 달아주고 어느 기관 못지않게 잘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상황이 좀 안 좋아졌다. 우리가 노조를 만든 이유는 부당한 업무지시가 컸고 업무 분장을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견이 있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판단하기로는, 십 수 년 동안 시키는 대로 다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제 내 일만 하겠다, 우리의 권리다, 뭐도 달라, 임금도 올려 달라 하니까 원청이나 관리직들의 반감이 컸던 것 같다. 솔직히 그전에는 너 남아, 너 그만 둬, 뭐 이런 식으로 말만 한 마디 하면 끝일 때도 많았다.

어쨌든 노조 만든 이후에 전체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임금이나 업무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상황이 됐는데, 시설관리 쪽에서는 업무 분장 관련해서 지루하게 대립이 계속됐다. 계약서에 맞게 원청과 하청의 권한 분리를 정확히 해야 하는데, 이전에 해오던 관행이 있으니까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표면적으로는 분리했지만 계속 찌꺼기가 남아 갈등이 생겼다. 시설 관리의 경우 원래 있던 기계와 전기 부서에다가 영선 부서가 새로 생겼고, 노조의 주축인 기계 부서에 대해서만 표적인원감축으로 불이익을 주는 측면도 있다. 기계 쪽만 조합원이고 전기 쪽은 비조합원이고 하니까 서로 간의 갈등도 좀 많이 있었고. 그 분들은 업무적으로 덕 보는 것도 좀 있었을 거다. 쟤네들은 안 하는데 왜 우리만 하냐, 조합 가입하겠다, 하면 원청에서 좀 보장해주는 부분도 있었고 우리 때문에 표적으로 시설 쪽 임금이 덜 오르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름대로는 있을 것이다.

2012년 여름에 파업이 있었다. 쟁점과 진행 과정, 마무리는 어떠했는가?

2012년에 임금 투쟁하면서 조정이 결렬되고 정확하게는 6월 25일에 시작해서 8월 29일까지 파업이 진행됐다. 쟁점은 임금과 노조사무실 등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부분이었고, 전면파업은 며칠 안 되고 거의 한나절 단위의 부분파업이었다. 당시엔 우리가 청소를 안 하게 되면 당연히 적체가 되고 문제가 되니까 빨리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원청 직원들이 직접 청소를 하다가 얼마 후에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원청 직원들은 우리가 대체인력 투입 감시하러 다니면 보란 듯이 휘파람 불고 노래 부르고 하면서 무시하고 자극하고,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니까 막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엔 우리가 자료 확보한 것도 있고 불법 대체인력 투입이라는 게 거의 명확했으니까 막았는데, 그런 충돌에 대해서 업무방해니 명예훼손이니 모욕죄니 해서 소송을 많이 걸었다.

파업은 길어지고 임금협상은 뜻대로 안 되고 하면서 급하게 정리된 측면이 있다. 2012년 파업의 성과라고 하면 지금 여기, 노조사무실을 얻은 거다. 수자원공사 정문 맞은편에 번듯하게 사무실 내주겠다고도 하고, 어떻게든 이 안에 노조사무실 안 내주려고 엄청 애를 썼는데 우리는 임금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거만큼은 지키자고 해서 얻어낸 것이다. 원청에서 민방위훈련이나 그런 걸 하면 여기 지하로 내려와서 우리 사무실을 보게 된다. 민주노총 현판 보이는 것 자체를 엄청 싫어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노조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고수한 부분이다. 결국 노조사무실만 딱 얻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 합의는 하되 소송 취하는 절대 못해준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고, 다섯 명에 대해 지금 깎인 벌금만도 900만 원 정도 된다.

2014년 1월 1일, 용역업체 변경과 함께 10명이 해고되었다.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가?

노조 만들고 나서는 거의 1년 단위 계약이었고, 5년 중에 2년만 장기계약이었다. 업체는 계속 바뀌었지만 고용승계가 안 되는 일은 없었다. 특수임무유공자회는 지난해에 수자원공사 각 건물 시수탱크 청소를 맡으면서 들어와서 접근을 시작했다. 우리는 줄 거 다 준다, 지회장이랑 한 번 만나자는 둥 하면서 얘기를 걸어오기도 하고, 불평불만 사항이나 임금에 대해서 얘기하면 줄 거 다 준다 그 대신 시키는 일은 다 해야 된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기도 했다. 곤란한 업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갑자기 원청이랑 수의계약을 맺었다. 나름대로 현장으로 들어오려고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두레비즈는 입찰로 들어왔는데, 투쟁하면서 이전에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탄압하고 그랬던 업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2013년 12월에 얼굴 익히는 정도로 생각하고 면접을 봤는데 그 잠깐 사이에 판단을 해서 10명을 해고했다. 1명 빼고는 다 조합원이었고 당시 지회장부터 노조 간부 대다수가 다 해고됐다.

  수자원공사지회 농성천막 [출처: 수자원공사지회]

이후 투쟁과 협상 등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이런 식의 비정규직 집단해고는 지역에서도 처음이다. 1월 초에 바로 천막치고 삭발식하고 노숙하면서 싸웠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참 쉽지 않다. 연초부터 국회도 찾아가고 지역에 있는 새누리당, 민주당 의원실 점거도 하면서 답변을 요구했었지만 오히려 2012년 파업 때의 다 지난 노노갈등을 핑계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 있었다. 할 의지가 없다는 걸 그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고, 우리 나름대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한다. 5월 초까지 천막농성을 했고, 이후에는 화요일에 중식집회하고 평일에는 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잡힌 결의대회나 기자회견이 있으면 하고, 10월 국정감사 기간에는 좀 더 집중해서 선전전하는 식이었다. 미화 쪽이랑 시설 쪽이 일하는 시간이 다르니까 각자 가능한 시간을 할애해 담당하는 식이다.

4월에는 비정규직 고용개선 정부지침 관련해서 수자원공사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를 했었다. 법령 위반 정도는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막상 9월 말에 나온 결과는 관리감독 현지주의 처분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온다는 건 아직도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이 정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고 말이 비정규직 간접고용 보호지침이지 정부가 실제로 책임과 의무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7월에는 을지로위원회 의원들이 내려와서 간담회를 하고 원청과도 만났다. 사실 그때 거의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이후에 국회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와 노조, 을지로위원회 3자가 만나서 합의안도 마련했는데 업체에서 계속 미루다가 8월에 부결시켰다. 이후에 우리는 국감 대비하고 하면서 소강상태였고 11월 5일에 다시 교섭을 재개했다. 몇 달 만에 만나서 갑자기 꺼내는 얘기가 선별복직과 노동시간 줄였으니 임금 깎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회에 위로금 500만 원을 주겠다는 거였다.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을 가지고 온 것이고 사실상 별 의미 없는 협상이었다.

해고자와 생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해고된 10명 중 1명은 전기 쪽의 비조합원이었고 바로 포기했다. 9명 중에 자연 포기자 2명이 생기고 3월에 또 한 명이 포기해서 마지막에 6명이 남았다. 지금 공공운수노조 대전일반지부장으로 활동하는 전지회장 빼고 나머지 5명은 생계투쟁을 하고 계신데 모두 미화 쪽이다. 예전에 있던 해고자지원금이 없어졌다가 올해 다시 생겼다면서 6월인가 7월 이후부터 30만 원씩 받고 있다. 5월에 후원주점 열어서 모은 투쟁기금이랑 해고자지원금 더해서 한 달에 60만 원씩 지급하고 있는데 부족한 금액이다. 정규직 같으면 보너스도 있고 하니까 조합원들이 모아서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한 달에 120~30만 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몇 만 원씩 낸다는 게 사실 쉬운 건 아니다. 나 홀로 가정도 많고, 주말에 알바 하시는 분들도 많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투쟁한 것만 봐도 상당히 힘든 부분이 있는 건데, 거기에 또 고통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좀 서운하시더라도 생계투쟁 나가시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나간 분들에게는 못 드리고 안 나간 분들에게는, 따로 집에 계시면서 요양보호사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께는 조금씩 지원하고 있다.

노조 할동을 하면서 아쉽거나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예전엔 정규직 욕을 많이 했었는데, 사실상 비정규직들의 투쟁 심리가 좀 기회주의적이고 힘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이면에는 이룰 거 다 이루고 나면 조합비 내는 것도 좀 아깝고 이런 마음들도 있다. 또 상실감이 큰 게 비조합원들이 있으면서, 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 약이 오르는 거다. 이걸 또 하청업체나 원청은 이용하는 거고. 미화 쪽에도 가입하려다가 해고투쟁 벌어지면서 안 한 비조합원도 있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분들도 몇 분 있고 그렇다. 이번에 집행부하고 열성조합원 9명을 자르고 대체인력 투입되고 하니까 비조합원 수가 늘어나서 이제는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아직은 없지만 복수노조에 대한 우려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노동자 투쟁을 보면서 나름 회의감이 드는 것은 자본가들이나 경찰이나 정부는 투쟁에 대한 대책이나 제재방안이 해마다 쭉 나오는데, 민주노총이나 노동단체들이 쌓아놓은 건 십 년이나 이십 년 전이나 똑같지 않나 하는 것이다. 변화가 전혀 없고 전략 전술이 사실상 거의 없다. 싸움은 기본적으로 주체의 결의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비정규직 주체들이 스스로 감당하면서 자립심을 가지고 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전략이나 전술에 대한 상호협조적인 관계가 미흡하지 않나 생각하고, 투쟁에 대한 매뉴얼이라든가 하다못해 비정규직 탄압하고 해고하는 용역업체 명단이라도 만들어서 공유를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관료화된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고, 변해야 하는 것 같다. 십 년 전부터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만 변한 것이 뭐가 있는지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대안이 뭐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좀 많이 든다.

노조 활동을 통해 느끼는 점이나 새롭게 인식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이전과 지금이 달라진 점은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권리를 찾게 되니까 그런 성취감이나 노조 결성으로 얻게 된 권리 부분,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던가 하는 데 대한 성취감이나 자부심은 나름대로 많이 있다. 노조 차원에서도 보면 그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당했던 거 생각하면서 노동조합만큼은 꼭 지키겠다고 하는 분들,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은 모두 처음의 그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있는 거고 노조에 대해 끈끈한 게 있다. 비정규직 투쟁이 힘들고 희망은 없지만, 조합원들이 예전에 당했던 그 느낌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1년 투쟁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합의 단결이나 신뢰는 그 어느 지회 못지않게 굳건하다는 걸 많이 느끼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조합원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노동자투쟁,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길은, 노동자가 정치에 정확히 개입은 못하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외면하는 소외되는 순간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에게도 얘기하는데, 얘기를 해도 너무 먼 일이라고 느끼고, 그런데 이게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는 게 내 목표고, 노동자가 정치에 무관심하면 투쟁 자체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수자원공사지회 선전전 [출처: 수자원공사지회]

이후 투쟁의 계획과 전망은 어떠한가?

일단 일관되게 주장하는 우리의 요구안은 간명하다. ‘1월 1일 전원 원직복직’이다. 특수임무유공자회가 얘기하는 선별복직은 당연히 받을 수 없고, 대체인력 문제는 다른 데로 전출을 보내든지 그런 방안을 강구하고 업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원직복직 합의에 사인하면서 대체인력 문제까지 노조가 해결할 부분은 아니다. 우리는 출구전략이 따로 없다, 무조건 원직복직이다. 노조가 힘이 있었으면 달랐겠지만, 밀린 임금이나 그런 부분은 따로 요구도 하지 않았었고 적어도 서로 감수할 건 하고 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런 요구안을 낸 거다.

지금 생계 나가신 분들은, 노조 결성 시기부터 함께하신 분들이고 원직복직에 대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7월에 정말 해결됐다고 생각했다가 상실감이 컸던 것 같고, 생계 때문에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십 수 년을 다니던 직장에서 잘렸다는, 내가 잘못해서 해고됐다는 오명만큼은 벗고 가겠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다. 12월까지는 현재까지 하는 투쟁을 그대로 이어가고 이후 재계약이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또 그거와 상관 없이라도 이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를 하고 결단을 내릴 시기는 그때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정규직 사업장이 전국적으로 너무나도 많고, 비정규직 보호지침이 있지만 공공기관이 나서서 잘 지켜줘야 하는데 노조 가입했다고 악의적으로 이용해서 공공기관 자체가 보호지침을 지키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서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넓게 생각해서 많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