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거부 서울시, "진일보한 인권 실현 가로막아"

서울시, "만장일치 아니면 헌장 수용 불가"

서울시민인권헌장제정시민위원회(아래 시민위원회)가 6차 회의 끝에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확정했으나, 서울시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애초에 시민의 뜻으로 인권헌장을 제정하겠다며 시민위원회에 권한을 일임했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 등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에 대해 반발하자 사실상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위원 150명, 전문위원 35명, 서울시의원 3명 등 190명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는 수차례 회의와 토론회 등을 거쳐 전문, 일반원칙 등 7개 장, 50개 조의 인권헌장 초안을 도출한 바 있다. 애초 시민위원회는 11월 28일 6차 회의에서 최종안을 확정하고,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선포할 계획이었다.

이에 28일 회의에서는 합의와 표결을 통해 서울시민인권헌장 원안이 최종 통과됐다. 시민위원회에 의하면 인권헌장 45개 조에 대해서는 참가 인원 전원이 합의했다. 나머지 5개 조는 표결에 부치기로 했으며, 표결 결과 원안대로 통과됐다.

구체적으로 헌장 이행과 관련된 3개 조(헌장의 이행 주체와 책임 1조, 헌장이행의 방법 1조, 2조)는 73명 찬성, 10명 반대로 원안이 통과됐다. 성소수자를 조항에 명시해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혔던 일반원칙 4조, 안전에 대한 권리 4조 또한 원안 찬성 60명, 반대 17명으로 가결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의 최종안이 시민위원의 전원 합의를 통해 나온 결과가 아니라며 수용을 거부했다. 이날 시민위원회에서 합의되지 않은 5개 조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려 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권헌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수차례 밝혔다. 시민의원들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시민위원회 문경란 부위원장의 마이크를 빼앗는 등 회의 진행을 방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서울시는 지난 11월 30일 기자 브리핑에서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최선의 합의를 촉구한 서울시로서는 헌장의 표결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했다”라며 사실상 시민위원회가 내놓은 인권헌장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서울시는 차후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시민위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전했으나, 인권헌장 제정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시민위원회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시민위원회는 이제까지 사상 초유로 여섯 차례나 되는 토론을 통해 최대한 시민합의를 이끌어 내려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이 그렇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후의 수단으로, 몇 가지 안건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표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입장을 두고 시민위원회는 “시민의 의결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합의가 반드시 만장일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최대한 합의를 한다 해도 반인권적 폭력에 굴복하거나 반차별적 가치에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2월 1일 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헌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서울시를 규탄하고, 인권헌장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 6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도 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이러한 태도를 강하게 규탄하며 인권헌장의 수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회, 시의회, 교육청까지 인권을 제도적으로 정착, 실행하려는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갈등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내세워 인권 그 자체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려는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졌다”라며 “이에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커밍아웃하여 다른 시민들 앞에 서고 있으며, 인권헌장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의 용기에 대한 연대의 응답으로 제정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사회단체들은 “‘혐오도 권리’라 하며 혐오의 발자국들이 인권 현장 곳곳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것을 번번이 목격하면서도, 서울시는 인권에 대한 어떤 입장도 밝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는 진일보한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라며 서울시의 행보를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시는 ‘일부 미합의 사항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의 확산’을 이유로 시민위원회의 결정을 뒤엎으려 하고 있다”라며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서울시가 보인 책임 회피, 시민위원회 결정을 무시한 처사에 대해 보다 성실히 해명하고, 인권헌장을 조속히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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