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조차 ‘정치적’인데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검은 장갑 시위’ 미 육상선수 존 카를로스의 충고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200m 시상식장, 1위 토미 스미스(미국), 3위 존 카를로스(미국)가 시상대에서 미국에서 자행되던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성조기를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흑인을 상징하는 검은색 장갑 낀 손을 치켜들었다. 이후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생명도 끝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아는 얘기다.

이 사진은 더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2위 피터 노먼(호주)까지 시상대 위의 세 사람 모두 왼쪽 가슴에 인종차별과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흑인권리단체(OCHR)가 만든 흰색의 동그란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엔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이란 글자를 새겼다.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미국 선수 2명의 시상식 퍼포먼스를 사전에 안 노먼은 관중석으로 달려가 배지를 구해 달았다. 백인우월주의의 나라 호주 출신 백인 육상선수 노먼은 연대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노먼은 정작 자신의 조국인 호주에서는 손가락질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IOC는 두 미국 흑인의 선수 자격을 영구 박탈했다. 미국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쫓겨났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흑인의 인권이 신장한 후에 이 사건은 흑인 인권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그들의 명예는 회복됐다. 그러나 노먼은 호주의 200m 기록 보유자였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호주도 반 인종차별 운동도 활발했다. 그러나 노먼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의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명예의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초대받았지만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1968년의 사건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조국 호주에서 따돌림 당하는 그를 미국 육상 대표팀은 잊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흑인으로 이뤄진 미국 육상 대표팀이 노먼의 용기와 수모의 세월을 보듬어주었다. 그를 초대해 환영했다. 미국 육상선수 마이클 존슨이 노먼을 자신의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호주는 노먼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먼은 여러 팀을 전전하며 코치로 활동하다가 1985년 아킬레스건에 치명적 부상을 입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다가 2006년 10월 9일 64살에 쓸쓸히 죽었다.


노먼의 장례식에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시상대에 함께 섰던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직접 관을 들어 노먼 옆을 지켰다. 미국 육상연맹은 노먼이 숨진 10월 9일을 노먼의 날로 선포해 기념하고 있다. 영국 BBC는 노먼의 일생을 담은 (존경)라는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1968년 시상대에서 3위 자리에 올랐던 존 카를로스(69)는 같은 흑인 운동선수 출신인 찰스 바클리(51) 전 미국프로농구 선수가 최근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흑인 시위대를 ‘쓰레기’라고 부르자 “사안을 잘 모르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일침했다. (조선일보 6일자 16면)

한국 언론이 1968년 멕시코 올림픽 200m 시상대 오른 세 선수 얘기를 재인용하면서 1위와 3위 선수의 이름을 바꾸거나, 2위를 한 노먼을 3위로 잘못 서술하는 등의 실수를 하기도 했다. 예로 EBS의 짧은 다큐멘터리 <지식채널e>도 ‘존경, 피터 노먼 스토리’ 편에서노먼을 3위로 잘못 표현했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정치적’인데 인권을 위한 행동을 정치로 몰아붙이는 파렴치한 정치행위가 여전히 올림픽을 3류 정치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