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탄소배출권거래제 첫 도입국 둔갑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맞으면서도 틀리고, 틀리면서도 맞는 한국경제신문의 놀라운 말장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한 나라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중심으로 31개 국가에 이른다. 유럽 밖에선 뉴질랜드와 카자흐스탄 등이 운영 중이다. 전 세계 38개 나라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이나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미리 정하고 배출량을 초과하거나 남은 부분을 다른 기업이나 국가와 거래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을 사실상 주도해온 EU는 지난 2005년 이 제도를 도입해 2008년부터 소속 회원국 27개국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비회원 4개국을 합쳐 31개국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약 1만2,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과 일본은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주 정부나 또는 지자체 단위로 거래제를 운영하고 있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면서 감축에 가장 크게 저항하던 중국은 시범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전국 단위로 시행할 예정이며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도 도입 준비작업 중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처음 감축 목표를 세워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8일자 1면 기사에서 내년부터 도입 예정인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 기사 제목은 <타이밍도 방향도 잘못 잡은 기업규제 법안>이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한국은 내년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는 유일한 나라다”라고 시작한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 ‘경제용어사전’에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전 세계 38개 나라에서 시행중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해서 첫 문장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더니, 꼼수가 드러났다.

“한국은 내년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첫 문장을 읽은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우리나라가 이 제도를 세계에서 처음 시행하는 나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경은 교묘하게 이미 38개 나라가 시행하는 이 제도를 일반 독자에겐 마치 우리나라가 첫 시행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쓰면서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이 제도 시행 39번째 나라라는 객관적 사실도 훼손하지 않았다.

한경은 이미 38개 나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내년’에 우리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한경의 이날 기사 첫 문장은 엄격하게 살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누가 봐도 말장난이다.

더 엄격하게 따지면 한경이 말한대로 내년에 우리나라만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지난 6월 선전시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를 개설했고, 2015년까지 전국 7개 도시에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를 운영하면서 전국 실시를 예고했다. 따라서 중국도 내년에 전국 단위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나라다.

문제는 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에 별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는 거다.

업체별로 정해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할당량)보다 덜 내거나 더 내는 온실가스를 사고파는 이 제도는 돈 만 내면 얼마든지 온실가스를 더 배출해도 된다. 또 정부에 이런저런 로비해서 처음부터 할당량을 많이 받으면 남은 배출권을 중소기업에 팔아 지금보다 돈을 더 챙길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 525곳에 허용량을 부여했지만 그 허용량이 적정한지는 제대로 된 검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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