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엔 순서가 있더라” 홈리스 추모제 열려

한 해 300~325명에 이르는 노숙인 숨져...“‘빈곤의 잔혹사’ 멈춰야” 촉구

죽음이 발 빠르게 찾아오는 동네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거리, 쪽방, 고시원 등에서 죽어간 홈리스를 기리는 추모제가 올겨울 동짓날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21일 저녁 6시 서울역 광장, 사람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는 영정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통계에 따르면 1998년 5명에서 시작했던 노숙인(거리, 시설 포함) 사망자 수는 2003년에 300명대에 이르렀고, 그 후에는 300명~325명의 노숙인이 매년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과거에는 다쳐서 사망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으나 점차 만성질환, 간질환, 감염성 질환 등에 의한 사망이 늘고 있다. 사고사가 아닌 질병 누적에 의한 죽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14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공동기획단)은 “홈리스 사망은 비단 의료 정책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홈리스 질병 치료엔 약보다 집이 중요하다 말하듯 열악한 홈리스 복지체계의 요소요소가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 질병의 심화와 사망과 같은 연쇄 반응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공동기획단은 죽음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빈곤의 잔혹사’를 멈추기 위해 홈리스 주거, 의료지원, 급식 지원 등을 요구하며 이번 추모제를 꾸려왔다.

특히 올 한 해엔 서울역 등지에서 술과 담배, 또는 지병을 치료해준다는 말로 노숙인을 불법 유인해 입원시킨 뒤 건강보험 급여를 부당하게 받아 챙긴 요양병원이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인천의 베스트병원을 통해 알려졌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여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홈리스들이 아플 때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다면 요양병원에 왜 갔겠나”라며 “열 달 동안 베스트요양병원에 복지부 예산 14억 원이 들어간 반면 서울시가 노숙인 임시주거 예산에 들인 돈은 고작 3억 5000만 원이다. 복지부 장관이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썼겠나.”라고 질타했다.


동자동 사랑방 조승화 활동가는 “사는 동네에 따라 죽음에도 순서가 있다”라고 지적하며 쪽방에서 ‘고독사’한 이들의 죽음을 추모했다. 동자동 사랑방은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에 있는 주민공동체로 한 방당 크기가 1.5평~2평 남짓한 방을 쪽방이라 일컫는다.

조 활동가는 “지난 9, 10월 동안 동자동에서 주민들이 직접 치른 장례만 3차례며, 동자동 사랑방이 확인한 것만 주민 8명이 두 달 사이 돌아가셨다”라며 “죽음에 동네 순서가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잦은 죽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나”라고 밝혔다.

조 활동가는 “한겨울 거리에서 나와 쪽방에 들어와도 만만치 않다”라며 “난방이 안 되어 전기장판이라도 쓰면 쪽방 주인은 전기장판을 쓰는지 날마다 감시한다. 세면장은 계단 밑에 있는데 온수도 안 나오고 문이 없으니 당연히 샤워도 안 된다.”라고 전했다.

조 활동가는 “노숙하다가 몸이 상해 쪽방에 들어오게 되면 쪽방에서 병을 더 키우다 쪽방에서 돌아가신다”라면서 “올봄엔 6명이 돌아가셨는데 3명은 병원에서 3명은 방안에서 고독사했다. 삶이 외로운 만큼 죽음의 순간도 외롭다. 시신이 썩어갈 때까지 이웃도 알지 못한 채 결국 무연고 처리된다.”라고 참담함을 비췄다.

추모제를 마친 이들은 영정을 들고 서울역 지하도 등 홈리스들이 기거하는 장소를 돌며 추모행진을 이어나갔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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