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부당하지만 또 다른 계기

[기고] 진보당 해산심판 사태의 주체적 책임

헌법재판관 8인은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인가

나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후 헌법을 찾아보았다. 내가 본 헌법은 붉은 표지로 된 소책자였는데, 한 달여 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운 것이다.

그것은 꼭 70년대에 북에서 남쪽으로 뿌린 삐라같이 촌스럽게 생겼다. 나는 길바닥에서 주운 소책자를 나중에 볼 요량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그것을 꺼내 본 것이다. 길바닥에서 주운 헌법 소책자는 붉은 표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2013년 9월 헌법재판소가 발행하고 동광문화사에서 인쇄한 비매품이었는데 헌재에서 전국에 무료 배포한 모양이었다. 이미 1년 전에 전 국민들에게 “헌법에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조항이 있노라”고 알릴 목적이라도 있었던 듯이.

헌법 제1장 총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 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적시되어 있었고 정부와 헌재는 이 법대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 될 때’ 그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통합진보당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이 생긴 것이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한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이다.

물론 정부와 헌재의 8인은 진보당의 목적이 대한민국을 북한식 사회주의로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활동했다는 근거를 들어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통합진보당의 강령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진보당 강령을 찾아서 들춰 보니 그 어디에도 북한식 사회주의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만한 문장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통합진보당은 강령을 개정할 때 진보진영으로부터 강령이 내용적으로 후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향하여’라는 선언을 통해 진보당이 이 땅 노동자 민중투쟁의 역사에서 이어가야 할 정신과 나아갈 길을 밝히면서 강령본문을 통해 ‘우리가 만들 세상’을 47개 항으로 구성하여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종북’적 표현이라도 있나싶어 눈 비비며 찾아봐도 그런 문장은 찾아 볼 수 없었다. 44항에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입장이 있는데 미군철수 요구야 이미 주체사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모든 진보진영이 “양키 고 홈!”을 외치며 투쟁해 왔던 터라 이를 진보당 해산의 근거로 제시 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리하여 헌재는 목적과 활동의 근거를, 있지도 않는데 조작했다고 하는 조직 모임인 RO회합과 거기에서의 발언들을 유일한 근거로 삼았다. 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미결 상태인데도 말이다. 현재 8인이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으로 ‘맹종’하는 모습 아니고 무엇인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태의 주체적 책임은 없나

오늘날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에 대한 부당함에 대해서 공감하고 정치적으로 공동 대응해야 함을 인정하면서도 대중적 분노는 형성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과거 정치적 통합력이 강하고 대중적 신뢰가 있었던 시기에 민주노동당을 정부가 해산하려 했더라면 어땠을까?

헌법에 의한 정당 해산사유와 전혀 무관한 통합진보당의 도덕성과 내부 민주주의 문제까지 지적질 해가면서 죽이려 대드는 정부와 헌재 그리고 보수언론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니들이나 잘하라”는 것뿐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시절부터 합법적 제도정당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할 수 있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책임 차원에서는 나 또한 비켜날 수는 없다.

주체적 차원에서 가장 문제로 되는 것은 백번을 다시 말하지만 ‘패권주의’ 문제이다. 그로인해 ‘패권’에 불리한 세력으로부터 ‘패권세력’에 대해 ‘종북주의’ 딱지가 붙여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분열과 분열을 거듭해 작금의 사태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종북’이란 용어는 이제 내부 비판용어를 넘어 보수가 진보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공격 무기가 되어 버렸고 그 무기에 의해 진보당이 살해당한 것이다. 어쩌면 제 발등 제가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통합진보당은 주체들로부터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보수정권은 진보당 죽이기에 나서 당을 아예 해산시킨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새 판짜기 의미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통합진보당 대통령후보였던 이정희에 대한 박근혜의 복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복수는 복수를 넘어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질서’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은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가 깔려있음이 문제다.

또 한편으로 모두가 다 판단하듯이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정국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정치위기 국면을 슬그머니 넘기고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공통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대중적 분노는 크게 형성되고 있지 않다. 오래된 갈등과 불신이 문제이다.

하지만 대중적 분노는 언제든지 폭발처럼 일어날 수 있다. 박근혜정권이 노동자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을 무리하게 가해온다면 대중적 분노는 크게 일어날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보수진영으로부터 진보진영에 대한 공격에 맞선 공동전선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새로운 정치세력 탄생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 판짜기는 의미 있는 일이다. 과거의 패권주의 오류를 극복하고 노동자 민중 모두가 잘되게 하기 위한 활동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