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도 RO불인정, 아이 뛰놀던 이석기 강연에 징역 9년 내린 셈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내란 음모 무죄, 선동죄 유죄

대법원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이른바 RO(혁명조직) 회합 주도자들에게 원심대로 내란선동 유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대법도 RO의 실체가 없다고 인정해 사실상 2013년 5월 12일 합정동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진행된 이석기 전 의원의 강연과 토론 내용만 가지고 징역 9년을 내린 셈이 됐다. 검찰이 RO회합으로 규정한 당시 강연과 토론에는 참석자들의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22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항소심 판결대로 이석기 전 의원과 관련한 RO의 실체와 내란음모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란선동죄는 인정했다. 이석기 의원 변호인단은 “유신시대 대법원 판례에서 전혀 내용적 진전이 없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대법 판결 직후 대법정 앞

애초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의 존재와 사전 준비회의, 내란음모 제안과 그 합의가 검찰의 공소 요지를 떠받치는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RO가 존재한다는 검찰 주장을 두고 “RO의 구성원 및 조직체계 관련 제보자의 진술은 상당 부분 추측이나 의견이라 증명력이 높다고 볼 수 없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마리스타 강연) 참석자 130여 명이 RO에 언제 가입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사정에 비춰 볼 때,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하고 참석자가 RO 구성원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RO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도 “범죄 실행을 막연하게 합의한 경우나 단순히 의견을 교환한 경우도 모든 범죄실행의 합의로 보고 음모죄가 성립한다고 본다면, 음모죄 성립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죄형법정주의를 형해화 할 수 있다. 폭동행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공격 대상과 목표, 시기, 실행방법이 어떤지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내란에 해당하는 음모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내란음모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격대상과 목표, 주요사항의 윤곽을 인식할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또 내란 실행 행위로 나아간다는 확정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내란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단순 내란 범죄 결심을 외부에 표시하고 전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은 특히 “회합 참석자들이 권역을 대표해 토론한 결과를 발표한 참석자 발언은 요약을 한 것뿐이며, 토론 결과를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한 것이라 볼 수 없다”며 “남부 권역 토론에 있어서도 여러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로 갖가지 폭력적 행위에 관해 논의를 했지만, 합의라 볼만한 것이 없고 심지어 (폭력적 행위에) 회의적 반응도 가끔 나타났다”고도 했다.

이렇게 RO실체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문제가 된 강연과 토론에서 내란을 위한 합의라 볼만한 것이 없다고 결정 내리고서도 내란선동죄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내란선동죄 구성요건 해석에 있어 표현의 자유 위축이나 본질을 침해하지 않도록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 내란을 실행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해도 특정한 정치적 사상이나 추상적 원리의 옹호나 교시로 선동될 수 없다”면서도 “이석기 등의 발언은 참석자들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실제 참석자들은 피고인 발언에 호응해 체제를 전복할 물리적, 기술적 준비 방안과 구체적 장소를 거론하고, 국가 기관시설 타결과 국가 기관의 기능정지 방법 등을 거론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한반도 전쟁 발발 상황을 전제했을 뿐이라 해도 한반도 전쟁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상태도 아니고 특정 정세에서 전쟁 상황을 인식하고 가까운 장래에 내란 충동을 격려한 행위 그 자체로 위험성이 있는 선동행위”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소수 의견으로 “내란선동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동의 중요 부분인 시기와 대상, 수단 및 방법, 실행 준비, 역할 부분의 윤곽이 어느 정도 특정돼야 하는데 너무 추상적”이라며 “내란 행위의 중요 윤곽을 개략적으로 특정하지 않아 국토참징이나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실질적 위험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의견을 냈다.
대법원의 상고 기각에 변호인단은 판결 직후 “대법원 결정은 공안 통치를 부활시키는 데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라며 “종북 매카시즘의 쓰나미가 헌법재판소를 집어삼키더니 대법원마저도 무너뜨렸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인권사회단체 인사들과 전 통합진보당 당원과 지도부 등 150여 명은 대법 판결 직후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법판결을 규탄했다.

규탄 집회에서 권오헌 내란조작 공안탄압 대책위 상임대표는 “어떻게 강연에서 5분 동안 이야기 한 사람이 내란선동죄가 되느냐”며 “내란음모는 무죄인데, 선동은 유죄인 법논리에 이해가 안 된다”고 비난했다.

김칠준 변호사도 “논리적으로 법리적으로 내란선동죄는 유지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단지 평화를 얘기하고 분쟁의 종국적 해결을 위해 고민하자고 한 것이 어떻게 내란선동일 수 있으며, 다양한 의견 표출이 어떻게 선동일 수 있나. 무기하나 준비하지 않고, 내란을 위해 종이 쪽지 하나 만들지 않았는데 무슨 선동이냐”고 반박했다.

또, “이제 종북 매카시즘의 쓰나미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없는 사람들의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모든 노력이 위축되고 주눅들 것이다. 모순 덩어리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과 모든 시도에 종북 딱지를 붙이려 할 것이다. 이 거대한 쓰나미를 중단시키고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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