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장애인 가족 자살, “복지제도 안내 부족 탓”?

연합뉴스, 지적장애인 언니 둔 20대 여성 자살 '쟁점 비틀기'

문제는 안내부족, 무상복지 아닌 구조적 ‘빈곤층 밀어내기'

지적장애인 언니를 둔 20대 여성의 자살 소식이 또다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낳고 있다. 지난 24일 대구에 거주하는 A씨(28)가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막 퇴소한 언니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다수의 언론에서도 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며 열악한 복지제도의 실상을 분석했다. 그런데 연합뉴스의 27일 보도는 유독 문제의 원인을 복지서비스에 대한 ‘안내부족’과 '무상복지' 탓으로 돌리며 쟁점 비틀기에 나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A씨와 지적장애 1급인 A씨의 언니 B씨(31)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연락이 끊기자 광주 친척집에서 자랐다. 이들은 이후 대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B씨는 2012년 1월 대구 동구의 한 장애인시설에 입소했다. 3년간 시설 생활 끝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B씨는 결국 지난 14일 시설에서 퇴소했다.

하지만 A씨는 언니 B씨의 생계까지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던 A씨는 최근 두 달 치 월세(한 달 36만 원)를 내지 못했고, 도시가스 요금과 카드 할부 값 30여만 원이 밀려 있었으며, 최근 시가 40만 원 승용차에 대한 자동차보험 만기도 돌아온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비관한 A씨는 지난 20일 집안에 연탄불을 피워 언니 B씨와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B씨가 살고 싶다며 소리를 질러 자살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4일 후인 24일, A씨는 대구 수성구 들안길의 한 식당 주차장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A씨는 유서에 "할 만큼 했는데 지쳤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주세요. 장기는 다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랍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시설에서 퇴소한 지적장애인 언니에 대한 부양 부담으로 자살한 A씨에 대한 사건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 캡쳐 화면.

복지제도 알았어도 제대로 된 지원 가능성 ‘거의 없다’

이 사건에 대해 연합뉴스는 27일 <'장애인 돌봄 서비스' 알았다면 자살 안했을 수도...>라는 기사를 통해 “홀로 장애 1급인 언니를 돌봐야 하는 데다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서 돌봄 서비스를 알았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한 안내가 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구청은 A씨에게 언니가 이미 2000년부터 받고 있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과 관련한 부분 이외에 별다른 안내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청이 복지제도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대구지역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등 각종 복지제도가 이미 너무 부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안내받았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지원이 될 리 없었다는 것이다.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조민제 사무국장은 “실제로 지적장애를 가진 언니 B씨가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정조사등급 2급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그래 봐야 한 달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은 (복지부 지원 기준) 9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만 가능한 시 추가지원 등이 더해진다고 해도 하루 돌봄의 많은 부분을 함께 살고 있는 동생 A씨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A씨 입장에선 B씨를 돌보는 데만 신경 쓰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기초생활보장이 언니 B씨만이 아니라 A씨를 포함한 2인 가구에 지원된다면 여지가 생길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A씨가 ‘근로능력 없음’ 또는 ‘근로할 수 없는 사유’가 인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A씨는 목숨을 끊기 직전까지 마트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근로능력 없음’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언니 돌봄을 이유로 ‘근로할 수 없는 사유’가 인정되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지역공동체가 시청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2인 가구 최대 현금급여인 85만 원을 받기 위해서는 B씨가 활동보조서비스 등의 돌봄서비스를 월 20일 1일 4시간 이하로만 지원받고, A씨가 돌봄을 책임지고 근로를 하지 않아야만 한다. 즉, A씨가 일하지 않고 하루 20시간이상 언니를 돌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설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었던 B씨가 시설 퇴소 시 받을 수 있었던 자립정착금 500만 원을 해당 시설에서 신청하지 않았고, 퇴소 후 긴급지원 형태로 제공될 수 있던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한 안내를 관련 기관이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민제 사무국장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상세한 안내와 연계가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언니 B씨가 퇴소한 지 10일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복지제도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을 직감한 게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송파 세모녀 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모습.

정말 무상복지가 문제인가?

‘복지제도를 알았다면 지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연합뉴스의 이러한 논조는 지난해 3월 송파 세모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빈곤 사안에 대해 취해온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런 기조 아래 대대적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실제 발굴된 빈곤층 중 지원받은 사례는 70%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고작 30%만 국가 지원일 뿐 나머지는 민간지원이었다.

즉, 문제는 정부의 복지제도에 대한 안내 부족과 이에 따른 빈곤층의 정보 부족이 아니라 광범위한 빈곤층을 포괄하는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협소한 복지제도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빈곤층은 복지 신청을 할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한 빈곤정책 구조를 가진 일본에선 이를 ‘물가작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원래 상륙해오는 적이 육지에 닿기 전에 섬멸하는 작전을 일컫는데, 복지제도에도 복지신청을 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청을 하지 못하게 막는 구조적 장벽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합뉴스는 같은 날 발행된 <정말 도움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부터 챙겨야>라는 제목의 ‘연합시론’을 통해 “전반적인 복지는 이제 나라의 재정 문제가 걱정될 정도까지 확대됐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처럼 모두에게 혜택이 가는 '무상 시리즈' 복지정책이 시행되고 이를 증세 없이 하려다 보니 최근 연말정산 파문 같은 일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며 이번 사건의 원인을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과연 A씨의 죽음이 보편적 복지의 확대 탓인가? 복지재정 위기에 대한 불만을 기왕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복지제도 탓으로 돌려, 빈곤층을 점점 복지로부터 밀어내는 진입 장벽만을 세우고 있는 정부 정책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송파 세모녀 사건에 이어 빈곤층의 죽음으로 맞이한 2015년, 우리 사회가 진짜 문제 삼아야 하는 빈곤정책의 ‘적폐’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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