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ICC 심사 앞두고 토론회 열었지만 ‘썰렁’

‘요식행위’에 불과한 토론회, 시민단체 ‘불참’ 선언

“인권위 추락, 현 위원장이 자초” 토론회에서도 비판 쏟아져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올해 3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등급 심사를 앞두고 권고사항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으나, 대다수 시민사회단체가 ‘진정성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토론회에 불참했다. 토론회엔 시민사회단체뿐만이 아니라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원들도 전원 불참해 황량함을 더했다.

  인권위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가 주최한 ICC 권고사항 이행 토론회에 불참했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토론회장 앞에서 인권위를 규탄하는 모습.

시민사회단체, ‘A등급 알리바이 위한 토론회’ 비판

지난 26일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아래 인권위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에 시민사회단체를 매도한 현병철 위원장의 사과와 전원위원회 회의록 실명 공개 등을 요구하며,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는 토론회에 불참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인권위는 28일 공문을 통해 현 위원장의 발언이 “시민사회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위원들의 이견에 대해 이해를 돕는 과정에서 다소 강하게 설명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전원위 회의록 실명 공개에 대해서는 “전원위 회의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에 인권위 공동행동 등은 진정성 있는 답변이 아니라며 토론회 불참을 선언했다. 토론자로 섭외됐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 김병주 변호사 등도 이날 토론회 참가를 거부했다.

인권위 공동행동 등은 29일 오후 1시 인권위 앞에서 토론회 불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가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을 경시하고, 투명성 있고 민주적인 인권위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는 출범 이후 회의록에 인권위원 실명을 기재해왔으나, 현 위원장 선임 후에는 모두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렇게 투명하지 않고 밀실 운영되는 인권위에서 시민사회단체를 비난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라고 꼬집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김동현 변호사는 “등급 하락을 시민사회단체 탓으로 돌리고, ICC 권고 취지를 어기고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배제해 왔으면서 인권위는 ‘유감’이라고만 한다”라면서 “이는 인권위가 시민사회단체에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장서연 변호사는 “현병철 위원장은 그동안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를 독단적으로 무시해왔다. 동성애를 차별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최이우 인권위원 선임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도 인권위는 거부했다.”라며 “ICC 등급소위 심사를 앞둔 지금 인권위는 이제 와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토론회는 등급소위에서 A등급을 받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라고 질타했다.

인권위에 대한 규탄 발언을 마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토론회가 열리는 프레지던트호텔(31층 슈베르트홀) 토론회장 앞 복도로 이동해 현 위원장의 사과와 인권위 운영의 투명성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퇴장했다. 이들은 이후에도 인권위의 현실을 ICC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권위 혁신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토론회 불참을 선언했다.

토론회에서도 인권위에 대한 비판 쏟아져

이에 이날 오후 2시 인권위가 서울 중구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대다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불참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긴 했으나, 인권위의 위원 선출, 시민사회단체 배제 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토론회 자리엔 현 위원장을 비롯해 인권위원 전원이 참석하지 않아 참석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새사회연대 신수경 대표는 12일 전원위원회에서 의결된 인권위원 선출.지명 가이드라인에서 인권전담기구의 위원 지명 등에 인권단체의 참여가 명기되지 않은 것에 “이는 인권단체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위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의결된 인권위법 개정안을 두고는 “인권위원에 대한 자격을 기준화(대학 혹은 연구소, 법조직역, 인권 관련 활동 10년 이상 등의 자격 요건을 추가)한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면서 “‘무자격 논란’으로 인권단체로부터 비판받았던 위원들은 모두 이 자격을 충족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 이보라 보좌관은 “작년부터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시민사회 개념은 삭제되고, 올해 일부 인권위원들의 발언에선 시민사회단체를 적대적으로 여기는 인상을 받았다”라며 “시민사회단체의 감시와 참여는 ICC의 장려사항이다. 시민사회가 외곽에서 제기하는 문제 제기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ICC 권고에 대한 실효적 이행방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 보좌관은 인권위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자료 공개를 거부한 것을 두고는 “정부와 공권력에서 독립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권위에 기능적 면책을 제기하고 있으나, 인권위는 오히려 시민 혹은 국회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인권위는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국내 인권 현안에 대해 앞장서서 해결을 막아왔다. 인권위 위상 추락은 현 위원장이 자초한 것”이라며 현 위원장 등 부적격 인권위원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2004년 가입 이후 줄곧 A등급을 유지해 오던 한국 인권위는 지난해 3월, 11월 두 차례 ICC로부터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이에 ICC는 한국 인권위에 인권위원 선출의 투명성, 구성의 다양성, 기능적 면책 및 독립성 보장, 시민사회단체 참여 등을 권고해온 바 있다. 인권위는 오는 3월 6일 ICC 등급소위를 앞두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다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불참했다. 토론회 참가자는 30여 명이었으나, 대체로 취재기자거나 인권위 직원이었다. 인권위원들도 이날 토론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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