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불법 채증 카메라 속에는...시민 ‘몰카’ 8개월간 저장

채증자료 관리 허술...‘경찰내부 사진’까지 들어 있어

무분별한 경찰의 불법 채증으로 시민들의 일상이 감시, 통제되고 있다. 신고된 집회나 1인 시위 현장에도 불법 채증이 이뤄지고 있으며, 채증자료에 대한 관리 부실로 시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달 20일, 채증활동규칙 개정에 나섰지만 오히려 경찰이 규칙 개정을 통해 무분별한 채증을 더욱 노골화하려한다는 비난만 커지게 됐다.

경찰 카메라에 저장된 채증 사진, 세월호 집회부터 오체투지까지
채증자료 관리 허술...8개월간 삭제 없이 ‘경찰내부 사진’과 같이 저장돼


지난달 7일, 쌍용차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 채증 활동이 발각됐다. 당시 구로경찰서 정보과 직원 최 모 씨는 DSLR카메라로 오체투지 행진과정을 수차례 촬영했고, 신분을 묻는 참가자들에게 ‘오마이뉴스 기자’라며 사칭하기도 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은 4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최 씨의 카메라에서 입수한 채증 사진들을 사진전 형태로 공개하고 경찰의 불법채증을 규탄하고 나섰다.


최 씨의 카메라에는 지난해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약 8개 월 가량의 촬영분인 323장의 사진이 저장돼 있다. 작년 5월 17일 안국동 현대사옥 앞에서 벌어진 세월호 집회 현장 채증자료와, 8월 11일 한국노총 집회, 구로지역 내 세월호 1인 시위, 올 1월 7일 오체투지를 채증한 사진이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에는 경찰 내부의 풍경사진까지 저장돼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이날 공개한 24장의 사진을 살펴보면 세월호 집회 당시 시민 다수의 얼굴이 드러난 스케치 사진을 비롯해,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의 얼굴을 포커싱한 채증자료도 들어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 현장에서도 시민 다수를 채증했다. 채증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먼 거리에서 채증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채증은 무려 7시간동안 이어졌다. 올 1월 7일 오체투지 행진 당시 권영국 변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얼굴을 포커싱한 채증자료도 다수 발견됐다.

  지난해 5월 안국동 세월호 집회 당시, 경찰이 인도 위에 올라가 있는 시민들을 채증카메라로 찍고 있다.

  경찰은 1인시위 등을 하는 시민들도 채증해 왔다.

오체투지에 참가했던 유흥희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늘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합법적 집회에서도 몰래 감시카메라가 돌고 미행이 붙는다”며 “오늘 공개한 사진 중에는 구로금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을 몰래 채증했던 자료가 들어 있다. 신고된 집회에서조차 얼마나 일상적으로 채증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채증자료에는 경찰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내부 사진과 경찰 관계자의 단독 컷 등도 포함돼 있다. 채증장비가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되고 있을 뿐더러, 채증자료도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이 사복을 입고 집회참가자들에 섞여 불법채증을 해 왔던 의혹과 심증이 이번 사진전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은 채증활동예규에 따라 사진들을 삭제했어야 하지만, 무려 8개월이 지난 사진들을 버젓이 보관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입수된 메모리카드에는 경찰 내부에서 찍은 사진들도 섞여 보관돼 있다.

  경찰은 오체투지 당시 권영국 변호사와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을 포커싱해 연속 촬영하여 채증했다.

이어서 “경찰은 채증사진에 관해 수사목적으로 사용한 후에 폐기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결국 경찰의 일방적인 주장이었을 뿐 채증 된 사진자료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었다”며 “채증된 사진관리 뿐 아니라, 공적 비품인 채증카메라 사용에 관한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채증활동규칙 개정? “무분별한 채증 강화하려는 의도”

불법채증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달 20일, 인권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경찰이 채증규칙을 오히려 후퇴시켜, 무분별한 채증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채증요건을 보면 종래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규정했던 요건을 ‘불법행위 또는 이와 밀접한 행위’로 개정해 채증요건의 모호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채증규칙 개정을 통해 ‘의무경찰’도 채증요원에 포함시켰고, 긴급한 경우 채증계획 없이도 구두 지시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채증장비와 관련해 ‘부득이한 경우 개인소유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채증요원이 개인 스마트폰 등을 통해 채증을 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또한 채증자료 관리 및 조회권자에 제한을 두었던 종래 규칙을 개정해, 의무경찰도 프로그램 관리 및 조회권자로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신훈민 변호사는 “경찰은 그간 논란이 된 부분은 채증규칙에 규정을 신설하는 방법으로 경찰에 유리하도록 채증규칙을 개정했고, 이전 채증규칙에서 경찰에 조금이라도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규정에는 단서를 신설해 유리하도록 정리했다”며 “개정 채증규칙은 무분별한 채증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경찰의, 경찰에 의한, 경찰을 위한 채증규칙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이 법적근거 없이 무분별한 채증활동을 벌여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경찰의 채증활동규칙은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하지만 경찰은 불법적 채증으로 국민의 초상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나라 어떤 법에도 경찰의 채증에 대한 요건, 절차, 근거를 정해놓은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경찰청이 마련한 규칙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법적근거도 없이 경찰이 자체 내부 규정으로 채증을 하다 보니 어디서 얼마나 찍히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사진을 관리하는지 알 길이 없다. 마구잡이식 채증에 시민들이 통제할 방법이 없고, 현장에서 시민이 항의를 하면 경찰은 항의를 한다고 또 채증을 하는 식”이라며 “합법적인 집회에서 비밀채증, 몰카를 찍는 것은 사찰이다. 경찰은 법적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반 법치주의적 작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영장 없는 채증은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경찰의 채증요원 및 채증장비에 대한 엄격한 관리 및 통제 △채증자료에 대한 엄격하고 투명한 관리체계 마련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단도 “경찰의 마구잡이 채증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경찰의 채증을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하도록 제한하고 채증장비와 채증자를 통제해야 한다”며 “어디까지 촬영할 수 있고 촬영할 수 없는지 법적으로 규정돼야 하며, 채증자료에 대한 관리 또한 법률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유흥희 분회장은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3차 오체투지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행진에서도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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