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광고는 별개?'...언론의 구조적 문제가 혐오 방관

진보 보수 언론사 예외 없이 혐오 표현 담은 의견 광고 확산

최근 수년간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의견 광고가 주요 일간지에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의견 광고의 혐오 표현을 규제할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언론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6일 토론회를 열고, 성소수자 혐오가 담긴 의견 광고의 현황과 언론의 대처 방식에 대해 짚어보고, 혐오 표현에 대응할 방안을 논의했다.

  행성련 이나라 활동가가 2010년 조선일보에 게재된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의견 광고를 소개하고 있다.

5년간 30여 건, 진보 언론사도 예외 없어...혐오 표현 담은 의견 광고 확산

의견 광고는 개인이나 기업 또는 단체가 유료 매체를 이용해서 생각을 밝히고, 특정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2010년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가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면서, 동성애 반대 단체가 의견을 내는 통로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구 동성애자인권연대, 아래 행성련)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2010년 5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를 시작으로, 5년간 동성애 반대 단체는 30여 건의 의견 광고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다.

이후 2013년 2월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면서, 동성애 반대 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의견 광고와 더불어 두 의원에 대한 항의 전화, 전자우편, 낙선 운동 등을 통해 결국 발의를 철회시켰다.

행성련 이나라 활동가는 “그동안 성소수자 단체들은 의견 광고 대응에 소극적이었으나, 차별금지법 제정 좌절은 성소수자 단체들이 반동성애 입장을 좌시하지 못하게 된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 활동가는 동성애 반대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좌초를 이끌어낸 후 더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동성애와 에이즈(AIDS)를 연관 지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동성애 혐오 논리가 개발됐고, 서울시민인권헌장과 같이 조직적인 행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기존 기독교 단체에 보수 우익 단체가 결합해 이주민 혐오를 조장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인권기구를 공격하는 쪽으로 활동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장 관련 내용을 일관되게 보도해온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동성애 반대 단체로부터 의견 광고를 받아 수차례 게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 2013년 5월부터 6월까지 한겨레, 경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동성애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묘사한 의견광고를 실은 바 있다. 또한 지난해 9월 한국, 경향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동성애 차별 금지 조항 포함을 반대하는 광고가 나갔고, 11월에는 ‘동성애 조장하는 광주인권헌장 반대한다’는 의견 광고가 한겨레 지면에 게재됐다.

이 활동가는 “(2013년 차별금지법 의견광고와 관련해) 한겨레 광고 담당자는 동성애를 찬반이 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었는데, 이는 차별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라며 “2014년에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면서, 한겨레, 경향의 혐오 세력 광고 게재는 개별 구성원의 일탈이나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혐오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자존감이 이미 훼손당하고 있으며, 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인권에 대한 합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저런 목소리가 당당히 울려 퍼진다는 것은 그동안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동성애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되는 것을 비난하는 의견 광고가 7개 일간지에 실린 바 있다. 경향, 한국 등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보도를 해온 일간지에서도 이 의견 광고를 실어 성소수자들의 반발을 샀다.

신문사의 구조적 문제...의견 광고 규제할 방안 없어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 노동조합 최원형 미디어국장은 진보와 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공격하는 의견 광고 게재가 가능한 이유로, 광고 담당자의 일탈을 넘어 언론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즉 언론 대부분이 상업 언론으로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있으며, 언론 내부적으로는 광고를 기사와 별개로 치부하는 경향과 의견 광고를 표현의 자유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이나 인권보도준칙 등에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보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는 있으나 광고에 대해서는 관련 언급이 없다.

신문광고윤리실천요강에도 ‘공익을 위함이 아니면서 타인 또는 단체나 기관을 비방, 중상하여 그 명예나 신용을 훼손시키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내용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어떤 내용이 규정 위반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실제 적용은 어렵다.

예컨대 지난해 9월 경향, 동아, 조선 등 7개 언론사의 의견 광고를 두고 한 성소수자가 인권 침해,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변론 과정에서 언론사들은 ‘광고와 기사는 별개다’, ‘의견 광고의 내용은 광고주가 책임져야 한다’, ‘원한다면 반론 광고를 실어줄 수 있다’ 등으로 해명했다. 이에 12월 법원에서는 앞으로 언론사가 원고 등에 대한 인격 침해를 주의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된 바 있다.

최 미디어국장은 “언론사가 광고 수입에 의존하고 미디어시장 변화로 생존 경쟁에 내몰려 광고 수익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진보 언론을 자처하는 한겨레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며 “신문 지면을 살 재력을 갖춘 것은 기득권인데, 이들의 광고를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는가가 딜레마다. 광고 영업자들도 한겨레의 논조를 해치지 않으면서 수익을 최대한 내려고 하면서 ‘광고는 광고고 기사는 기사다’로 여기게 된 듯싶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미디어국장은 “최근 추세로는 혐오 발화를 표현의 자유로 탈바꿈시키는 부분이 함께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라며 “(의견 광고는) 혐오,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게 화려한 수사들이 동원되고 마치 동성애 반대가 의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도록 포장됐다. 언론사에서 내부적으로 잘 포착해 정리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던 것이 부끄럽다”라고 반성했다.

최 미디어국장은 “편집인이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고 중요한 결정 시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민감한 광고는 위원회 형태로 검토하도록 고민하겠다.”라며 “내부적으로 한겨레에서도 자정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 것과 함께, 외부 여론이 신문사 안으로 들어왔으면 한다. 신문사가 ‘이런 건 절대 안 되는구나’ 할 정도로 외부 활동이 더 커져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노동조합 최원형 미디어국장이 혐오 표현이 담긴 의견 광고가 게재되는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혐오 표현에 대해 성소수자, 언론인 함께 대응해야

이에 동성애 반대 단체의 의견 광고에 대응할 방안으로 언론 내부의 자정 노력과 더불어 성소수자 단체에서 적극적인 언론 대책에 나서는 등 다각적인 제안이 나왔다. 아울러 성소수자와 언론인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의견 광고가 급하게 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편집국과 광고국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외부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도 가이드라인을 고민해왔으나, 이와 더불어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겠다. 성소수자 단체에서 언론과 관계 맺기를 잘해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터네트워크 정혜실 대표는 “광고 수익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의견 광고로 외피를 입은 혐오 발언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언론의 선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인권위 등 국가 기관의 문제 제기가 필요할 것”이라며 “우리는 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혐오가 표현의 자유가 아님을 일깨워 줄 포괄적 의미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면 한다”라고 제안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신문광고를 자율적 규제에 맡기는 건 민주공화국 존립에 위협을 주기에, 폭력을 부추기는 선동적인 의견 광고는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라며 “아울러 (의견 광고 문제를) 성소수자 단체뿐 아니라 언론단체로 확장해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논의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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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

    한겨레신문....작은 기득권에 안주하면 안될 것이다.

  • 조합원

    초기 언론민주화 운동으로 출발한 한겨레

    그러나 지금은 출입처 제도에 안주한 느낌이다.

    광고에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다.

    구독자 매출 비율이 50%이하로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부터는 신문사가 자기 생존을 위해 광고에 의존하게 되는 듯 하다.

    초기에는 독자비율이 거의 100%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광고매출 비중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게 보수화된 배경이 아닐까 싶다.

    한겨레의 초기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광고수익 비중을 전체 수익의 30%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경영원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광고에 의존하면서 편집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 이정호

    한겨레신문 3월6일자 2면을 털어 보도한 <"아름답다, 갤럭시S6">기사도 아름더러웠습니다.
    지금 한겨레신문에 창간정신이란게 남아 있을거라는 착각이 얼마나 나이브한지.....